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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속 세상

인류의 미래,
트랜스휴먼에게 던지는 질문
OTT 속 세상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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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건 어떤 기분일까?” 죽을 때마다 다시 프린팅되어 살아나는 사람이 있다. 몸은 재생되고 기억은 이식된다. 그는 ‘익스펜더블’, 곧 소모품이라 불린다. 죽어도 죽어도 다시 살아난다면, 과연 ‘죽는다’라는 건 어떤 느낌일까. 영화 ‘미키 17’은 반복되는 죽음과 재생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과 존재의 의미를 파고든다.

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 사진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복제인간, 죽음을 거듭하는 소모품 노동자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개봉한 영화 ‘미키 17’은 복제인간 익스펜더블(Expendable)에 대한 이야기다. 2054년, ‘미키’는 친구 ‘티모’와 함께 마카롱 가게를 열지만 사업에 실패한다. 사채업자들은 거액의 빚을 진 그들을 집요하게 추격한다. 더는 숨을 곳이 없어진 두 사람은 얼음 행성 니플하임을 개척하기 위한 탐사단에 지원한다.
하지만 별다른 재능이나 특기가 없는 미키가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죽으면 프린팅(복제)되는 익스펜더블이 되는 것이다.
영원히 죽지 않는 익스펜더블은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한 임무, 즉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일들을 수행한다. 다시 말해, ‘소모품 노동자’다. 누구나 꺼리는 일자리지만 미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익스펜더블이 된 미키는 우주 항모선 ‘드라카’의 외벽을 수리하던 중 사고로 팔이 절단되고, 온몸에 화상을 입는 등 극심한 고통을 겪는다. 죽으면 복제되지만 그 고통은 피할 수 없다.
니플하임 행성에 도착한 뒤에도 위험천만한 명령은 계속되고, 그는 헬멧을 벗고 낯선 물질을 맨손으로 다루며 임무를 수행한다. 결국 그의 반복된 희생을 통해 이 행성에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백신이 개발된다. 그렇게 수많은 죽음과 복제를 거치며 ‘미키 1’에서 마침내 ‘미키 17’에 이르게 된다.

“죽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미키 17’은 제작비만 약 1억 1,800만 달러(약 1,700억 원)로, 한국 감독이 만든 영화 중 역대 최대 규모다. 막대한 할리우드 자본을 끌어왔지만 봉준호 감독 특유의 문제의식은 여전하다. 인간의 실존적 고민, 사회적 불평등, 자본주의의 모순을 들여다보는 날카로운 시선은 변하지 않았다.
물론 ‘미키 17’에는 원작이 있다. 2022년에 출간된 에드워드 애슈턴의 소설 『미키7』이다.
아무리 정교한 과학 문명도 인간의 실수는 피할 수 없다. 미키 17이 죽은 줄 알고 미키 18이 프린팅된다. 그런데 구사일생으로 미키 17이 돌아오면서 두 개의 복제체가 동시에 존재하는 ‘멀티플’ 상황이 발생한다. 둘은 같은 유전자를 지닌 복제품이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미키 17’은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을 떠올리게 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은 과학기술을 활용해 인간의 지능, 신체 능력, 감각 등을 강화하고, 고통·질병·노화·죽음 같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고자 한다. 인공장기로 생명을 연장하고,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 인지 능력을 증강하고, 유전자 편집을 통한 질병 저항력을 강화한다.
트랜스휴먼*이 ‘인간’의 범주에 머문다면, 이보다 한 단계 진화한 존재가 있다. 바로 ‘포스트휴먼(posthuman)’이다. 포스트휴먼은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존재로, 육체와 의식이 디지털 또는 가상 공간에서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다. 예컨대 인공지능 인격체가 한 예라 할 수 있다. 신보다 기술이 우위에 있는 시대, 그 안에서 벌어지는 철학적·윤리적·종교적 갈등은 피할 수 없다.
*트랜스휴먼: 인간과 포스트휴먼 사이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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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속 세상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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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휴먼의 시대, 봉준호 감독이 던진 질문

철학자 닉 보스트롬 등은 2002년 ‘트랜스휴머니스트 선언’을 통해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능력이 기술의 도움으로 한계를 초월할 수 있으며, 이러한 진화는 인류의 활동 영역을 우주로 이끌 것이라 주장했다. AI, 로봇 기술, 생명공학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트랜스휴먼은 더 이상 먼 미래의 존재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인공관절을 삽입하고 임플란트를 심는 것이 일상화된 시대에 살고 있다. 인간의 몸은 점점 ‘기계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하나씩 부품을 교체했을 때와 한 번에 전부 갈아치웠을 때, 과연 무엇이 다른가?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 역시 10년 전과는 하나도 같지 않다. 그런데도 당신은 여전히 당신인가?”
미키의 교관 젬마가 던지는 이 질문은 트랜스휴먼 혹은 포스트휴먼의 시대를 마주한 인류가 곧 스스로 던지게 될 질문이다. 봉준호 감독이 ‘미키 17’을 통해 던지고자 한 핵심 질문이 바로 이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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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속 세상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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