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대화와 타협이 어려워지는 사회, 이 지점을 주목한 서바이벌 예능이 있다. 웨이브 오리지널
콘텐츠 ‘사상검증구역: 더 커뮤니티’(이하 ‘더 커뮤니티’)다. ‘더 커뮤니티’는 각기 다른 성향의
남녀 13명이 9일간 한 공간에서 살며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이 상금을 가져가도록 설계됐다.
성향은 정치, 젠더, 계급, 개방성을 기준으로 나뉜다.
예능을 표방하지만 사회 실험에 가깝다. 참가자들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당직자,
유튜버와 남성 잡지 모델, 뉴욕대학교 출신 래퍼와 논픽션 작가이자 전 여성단체 활동가,
특수부대 출신과 홍콩대학교 출신의 직장인, 서울대학교 로스쿨 출신 변호사와 경호원 출신
배우 등 다양한 배경의 실존 인물들이다.
‘정치란 권력을 이용해 자원을 분배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이다.’
‘더 커뮤니티’는 이렇게 정치 예능임을 선언하고 시작한다. 참가자들은 강력한 리더를 뽑고
리더는 어떻게 세금을 걷고, 어떻게 돈을 벌고, 어떻게 지출할지를 결정한다. 이 사회에는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정보를 전달하는 ‘기자’와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불순분자’도 있다.
참가자들은 과연 불순분자로부터 사회를 지켜내고 상금을 탈 수 있을까.
*사진 출처: 웨이브
이들은 시작부터 갈등 상황에 놓인다. 공금을 어떻게 쓰느냐, 세금은 어떻게 걷느냐를
두고 첨예하게 부딪힌다. 공동체 전체의 안녕을 위해 공공의 역할을 강조하는 쪽과
개인의 자유의지와 경쟁에 더 큰 가치를 두는 쪽은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한다.
개개인은 좋은 사람이지만 자신의 이익이 걸린 문제에서 균열이 시작된다. 돈과
탈락면제권, 호감도의 차이는 공동체 내에서도 약자와 강자를 만든다.
공동체에 불순분자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동요는 본격화된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상황, 탈락자마저 생기면서 살아남기 위한 합종연횡(合從連橫)이 난무한다. 선거를 통해
선출된 리더와 공동체의 알권리를 위해 글을 써야 하는 기자도 사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더 커뮤니티’는 한국 사회가 마주한 수많은 갈등의 민낯을 보여준다. 감세와 증세, 성장과
분배, 능력주의, 이민자 문제 등이 가감 없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갈등의 기저에는
‘공동체’와 ‘개인’이 있다.
이러한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정치라고 할 때, 2024년 한국의 정치는 그 역할을 잘하고
있는 것일까.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 삶의 질 2023’ 보고서를 보면 정치적 역량감은 2022년
15.2%로 전년보다 6%p 급락했으며, 이는 2013년 조사 이후 최저치다. 정치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의미다. 정치에 대한 실망감은 공공
시스템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졌다. 사회 주요 기관과 제도에 대한 신뢰 비율은 2022년
52.8%로 전년보다 2.6%p 감소했다. 국민 2명 중 1명은 정부, 국회, 언론 등을 믿지 않는다는
얘기다. 정치와 공공에 대한 불신은 개인에 대한 불신으로 전이된다. 대인 신뢰도는 2022년
54.6%로 전년 대비 4.7%p 감소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갈등을 조정할 능력을 이미 상실해 버린 것일까. 시대정신이 사라진
자리에 우후죽순 돋아나는 개인주의를 질서 있게 조정해 줄 기회는 없는 것일까.
‘더 커뮤니티’의 마지막 게임은 ‘죄수의 딜레마’다. 내가 ‘독점’을 선택하고 상대가 ‘분배’를
선택하면 나는 모든 상금을 가져간다. 내가 ‘독점’을 선택하고 상대도 ‘독점’을 선택하면
둘 다 가져가지 못한다. 내가 ‘분배’를 선택하고 상대도 ‘분배’를 선택하면 상금은 반반씩
가져간다.
보수정당의 ‘슈퍼맨’과 진보정당의 ‘백곰’이 맞닥뜨렸다. 두 사람은 정치, 젠더, 개방성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대립각을 세운다. 불순분자는 이 점을 노렸다. 만약 두 사람이 ‘독점’을
선택한다면 두 사람은 한 푼도 못 받고, 상금은 전액 불순분자의 몫이 된다. 두 사람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이 선택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