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캡슐로 이어진 초임 교사 시절 아이들과의 추억
20대 초임 교사 시절엔 열정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이들과 좌충우돌하면서도 온 마음을 반 아이들에게 쏟아부었다.
주말에도 체험 활동에 데리고 다니고, 방학식을 하는 날에는 항상 집으로 데리고 가 떡볶이와 카레 라이스를 만들어주며 함께 놀았다. 연수를 받으면 바로 교실에 적용하면서 이상적인 교육을 꿈꾸기도 했다.
모든 아이가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도록 격려했다.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모두가 다르다는 것이 신기했고, 서로가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는 그것을 발견할 때마다 감동하며 모든 아이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세상에 나누며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헤쳐나가는 용기와 의지를 키우기를 진심으로 희망했다.
아이들의 생일이면 진심을 담아 쓴 손 편지를 선물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나 혼자만의 즐거움과 행복이 아닌 세상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해 함께 만들어가자!”
아이들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함께 공부하고 생활하는 모든 시간이 나의 삶을 새롭게 했다. 아이들의 사랑이 교사인 나를 살아가게 했다. 현실은 교실도 아이들도 내가 생각한 모습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것조차 아이들과 나에게는 행복이고 즐거움이었다.
한번은 아이들과 타임캡슐을 만들어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했다. 세월이 흘러 첫 발령에서 만난 6학년 아이들을 7년 후, 아이들이 스무 살이 되던 해에 학교에서 다시 만났다. 타임캡슐을 묻었던 운동장은 체육관으로 바뀌어 있었다. 당시 구름사다리 아래 병을 숨겨두었던 아이들은 찾을 수 없었지만,
운 좋게 찾기 쉬운 곳에 병을 묻었던 아이들은 타임캡슐을 직접 꺼내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때마침 군대에 가 있던 반장 녀석은 전화를 걸어와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굴착기를 불러 운동장을 다 파봤을 거라며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만난 아이들은 장난꾸러기였든 아니든 모두 의젓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았다며 밥과 술을 사주더니, 갓 태어난 나의 아기를 위해 아기보다 더 큰 곰 인형을 선물로 안겨주기도 했다.
모든 공부의 근원은 ‘인간에 대한 사랑’
30대 시절에는 내 아이를 낳으면서 교육 철학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되돌아보니 이때부터 백화점식 학급 경영이 아닌 진짜 교육에 대한 고민을 한 것 같다.
내 아이가 살아갈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며 혁신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근본적인 교육 철학에 대해 생각했다.
3년간 육아휴직을 하고 돌아오니 나이스(NEIS) 시스템이 학교에 도입되어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며 수업하기보다 컴퓨터 앞에 앉아 TV로 소통하는 수업 문화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이후에는 컴퓨터와 휴대폰 등 IT 기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아이들의 삶이 온통 매체로 둘러싸이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해가 갈수록 정서적 치유가 필요한 아이들이 늘어나고 문해력은 더욱 낮아지는 현상이 생겼다. 학교와 교사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는 것도 느꼈다.
이때 철학의 중요성을 더욱 깊이 깨달았고,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그 어떤 공부도 근본은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양한 수업 기법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것이다.
40대가 되니 갈수록 공부하는 재미가 들었다. 공부에는 때가 없다는 말을 새삼 실감했다. 용기를 내 스위스에 있는 예술학교에도 다녀왔다.
예술학교에서 예술교육 역시 인간에 대한 사랑이 바탕임을 깨달았다. 현대 물질문명이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더 많아져 치유가 필요한데 그것이 예술의 역할이고, 그래서 학교 예술교육이 더욱 필요하다.
내가 다닌 예술학교는 흙 작업을 중심으로 내면 치유와 의지를 키워주는 활동을 하며 자신과 만나는 명상 작업을 하는 곳이다.
물론 흙으로 하는 조소 외에 돌·나무·금속 작업, 수채화, 음악, 미술사, 이론 등도 공부했지만 모든 학년 아이들이 공통으로 할 수 있으면서 치유 효과가 큰 것은 흙을 만지는 것이었다.
그 당시 교수님께서 입시 위주의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 대해 알고 계셨기에 교육 현실에 좌절하지 말고 힘내서 꼭 아이의 성장을 돕는 교육을 하라고 당부하신 마지막 말씀을 아직까지 기억한다.
예술교육과 함께했을 때 아이들의 감성은 물론 의지가 솟아나 지식 교육에 더욱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실제 교실에서 체험하면서 예술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스스로 정말 뿌듯했다.
성찰의 시간, 함께 연대하는 삶의 방향을 세우다
50대를 맞아 나는 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 학교에서 연장자라며 뒤로 물러나고 싶지는 않다. 학교를 민주적으로 만드는 것, 구성원 모두 함께 협력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꿈이다.
교사 교육과정에 기반해 학교 자율 과정을 만들어가며 관리자, 동료 교사, 교직원과의 연대감을 맛보고 싶다. 여전히 많은 공부에 귀를 열고 공부 모임에 참여하면서 배움의 즐거움을 느낀다.
그래서 수업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고 다른 교사들과 함께 이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 교사가 수업을 즐기면 아이들이 그것을 느끼고 따라온다. 학부모 역시 협력하게 된다.
지금까지 만난 학생, 학부모 중 나와의 수업이 의미 있었다는 이들이 많기에 보람차다.
코로나19 상황처럼 혼란스러운 가운데에도 성찰의 시간을 가지며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고심해 중심을 잡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 활동을 할 것이다.
최근 SF 재난 영화 「Don’t look up」을 보았다.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고 당장 눈앞의 것만 좇으며 사는 현대인, 기후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브레이크 없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의미심장한 제목부터 영화와 비견되는 상황에 부닥친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영화였다. 지구와 인류는 앞으로 어떤 운명을 겪을까? 우리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교사인 내가, 우리는 어떤 교육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50대를 맞는 나 역시 정신없이 바쁘게 마무리한 지난 한 해를 지나 2022년 새 학년을 맞이하기 위해 나의 교사 시절을 돌아보며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세워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