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맞춰 몸으로 참여해보는 경험을 해보면 음악의 참맛을 더 많은 사람이 느끼고 향유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무대 밖으로 나온 모두의 음악을 찾으며
‘음악이 사람을 치유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들면 고개가 갸웃해지다가도 일단 음악을 들으면 그 멜로디와 리듬에 몸과 마음이 반응하는 것을 경험하고는 한다.
신나면 신나는 대로, 차분하면 차분한 대로 마치 음악이 자신과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논리를 뛰어넘는 음악의 힘을 신뢰하게 된다.
정은주 교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음악이 지닌 치유 효과를 단순히 강조하는 것을 넘어 실제 임상에서 얻은 구체적 데이터를 분석하고 신경과학에 근거를 둔 음악치료를 연구한다.
“학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면서 다양한 클래식 음악을 공부했습니다. 사실 국내에서 ‘클래식’ 하면 자생 음악이 아닌 외국에서 들어온 음악을 가리키잖아요.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조성음악 역시 서양 고전음악의 문법을 기반으로 하고요. 그러다 보니음악이 어렵게 느껴지죠. 그런데 실제 곡을 연주해보면 일상에서 쉽게 경험하지 못하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가 많아요.
그때 이런 몰입의 기회가 공연장에 올 수 있는 일부 사람에게 한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악을 쉽게 누릴 수 있는 일부를 넘어 모두에게 열린 음악적 경험이 무엇일지 고민하다 대학원에서 음악치료를 공부하게 되었다는 정은주 교수.
알고 보면 음악치료의 역사는 깊다. 정은주 교수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질병의 원인을 심신의 부조화 상태라 믿고 육체와 영혼 간 균형을 복원하는 데 치료의 초점을 두었다”라고 전한다.
르네상스 시대에도 의학과 음악을 연결하는 과학적 시도가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자 엠페도클레스(Empedocles)도 네 가지 체액설(four humor theory)과 네 가지 기질, 신체 기관과 음악 사이의 관계를 정립했습니다. 이후에 이러한 관계를 치료적으로 적용했고요.”
미국에서는 세계대전 이후 1940년대부터 병원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를 가진 군인들의 치료를 위해 현장에 음악치료를 도입했다.
2019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의 연구지원 과제에 선정되어 발표하는 모습
음악, 마음의 지도를 그려가는 출발점
음악치료는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음악치료 기법의 하나인 심상유도와 음악(Guided Imagery and Music)은 음악을 사용하여 무의식적 감정을 자극하고 심상을 유도하여,
내담자의 내면 세계를 탐색하게 하는 심리치료 기법이다.
“저에게 음악은 ‘거울’과도 같습니다. 음악을 들으면서 드는 여러 가지 느낌을 ‘심상’이라고 하는데요, 심상은 시각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느낌으로 전해오기도 합니다.
그런 심상의 스펙트럼을 깊고 넓게 탐색하고 탐구하다 보면 스스로 통찰하는 순간에 이르게 됩니다. 그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되지요.”
정은주 교수 역시 상담자가 아닌 ‘인간 정은주’로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그렇게 그 자신도 음악을 통해 자신을 반영하고 인식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아직 국내에는 ‘치료’라는 말에 거부감을 가진 분도 있어요. 특히 자녀 문제를 수용하기 어려워하는 부모님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언어 발달이 지연되면 ‘말이 좀 늦는 것’이라고 믿고 싶어 합니다.
언어는 아이가 사회적 환경에 참여하는데 중개 역할을 하며 이후 인지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음악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소리정보이며, 의사소통 도구입니다.
두 가지 모두 음높이와 선율, 리듬의 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언어 발달의 모든 단계에서 음악은 인지 및 사회성 발달 등을 수반해주어 궁극적으로 언어 발달에 매우 큰 도움을 줍니다.”
정은주 교수는 석사와 박사과정에서 뇌과학에 바당을 둔 신경학적 음악치료(Neurologic Music Therapy)를 전공하면서,
음악을 경험하면서 발생하는 변화를 순간의 ‘느낌’이 아닌 ‘객관적 데이터’로 풀어냄으로써 음악이 가지고 있는 치유적 잠재성을 입증하려 노력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음악을 듣고 ‘감동적’이라고 말할 때 실제 자신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데이터로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행동 관찰과 생체 신호 측정(EEG, PPG, EMG, ECG 등)을 통해 음악치료 시행 전과 후의 차이점을 분석하면서 인지, 운동, 정서 등 어떠한 기능 영역에 얼마나 변화가 발생했는지 ‘객관화’ 과정을 거친다.
물론 과학이 발전한 지금도 여전히 측정되지 않는 영역이 남아 있다. 그래도 과거에 설명되지 못했던 부분들이 조금씩 밝혀지는 추세다.
연구도 일종의 사회 환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으로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요즘은 시스템과 콘텐츠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음악을 통해 세상에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싶습니다.
음악으로 행복해지는 세상
정은주 교수에게 음악은 단순히 듣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음악치료에 접목된 음악 활동은 노래와 악기 연주, 즉흥과 작곡 등 여러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기존 음악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내담자의 증상과 기능에 맞게 기존 음악을 다양하게 편곡하여 사용한다. 음악을 음색·음높이·음량·리듬·선율·화성 등의 구성 요소로 세세하게 쪼개서 치료적으로 적용한다.
이러한 음악적 요소를 다양한 활동에 녹여 내어 인지, 운동, 의사소통, 정서 및 사회성 기능의 유지, 복원 및 개선을 위하여 체계적으로 적용하는 과정이 음악치료이다.
“예를 들면, 학교에서 음악을 배울 때, 다양한 사조와 여러 장르의 음악을 배우는데요.
음악의 특징을 단순히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현실 안에서 다양한 리듬, 박자의 음악을 선택하여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과 함께 춤을 추거나 운동하는 경험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음악의 참맛을 더 많은 사람이 느끼고 누릴 수 있지 않을까요.”
제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하면서 음악은 과학과 더욱더 가까워지고 있다.
한양대학교에서도 2019년 2학기부터 산업융합학부 대학원 과정에 음악치료과학과를 개설하고 융합 연구에 나섰다.
뇌과학과 인공지능에 기반을 둔 음악 재활전문가 육성과 함께 음악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서비스 프로세스 구축도 병행한다.
정은주 교수도 아직 상용화는 되지 않았지만 최근 ‘메타버스 음악치료 콘텐츠’를 제작했다.
이러한 예술-의료 융합형 ICT 콘텐츠를 다양한 임상현장에 적용하여 인지 및 운동 개선 효과를 입증한 결과가 최근 네이처(Nature) 연계 저널에 게재되기도 하였다.
무대에서 나와 음악치료 임상 현장을 거쳐 연구의 길에 들어선 정은주 교수가 항상 마음에 되새기는 키워드는 ‘음악으로 행복해지는 세상’이다. 다만 그 세상을 만들어가는 방식은 과거의 관습과는 다를 것이다.
“연구해 보니 연구도 일종의 사회 환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으로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요즘은 시스템과 콘텐츠를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최근 음악치료과학과는 성동구와 협력하여 성동 스마트쉼터를 디자인하였는데, 이곳에서는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을 고려한 개인 맞춤형 소리가 흘러나옵니다.
또한, 신체장애를 가진 분들이 상상만으로 음악 연주에 참여할 수 있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기반 음악 연주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어요.
현재의 기술 진보를 활용하여 등장할 미래 콘텐츠는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융합적인 음악치료법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음악을 통해 세상에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