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혼자’가 되고 싶은 사람
알아보지 않아 자주 찾았는데, 동네에 자주 들른 식당이나 카페에서 주인이 반갑다며 먼저 알아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이 가게에 다시는 발을 들이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은 부담스럽다. 인식은 역설적으로 익명성을 요구하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 초 출생자)에게는 부담이자 불필요한 겉치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부여된 ‘마스크 착용’은 이 같은 익명성의 동의를 부채질한다.
중·장년층에게 아는 체하는 사회적 인사는 공동체의 기본으로 통한다. 지금 세대는 그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어떤 개인은 인사를 원하지만, 또 어떤 이는 ‘모르는 체’ 지나가기를 바라고, 또 누군가는 염화시중(拈華示衆)하듯 마음만으로 통하길 기대한다.
공동체에서는 일관적 가치로 ‘상식’을 얘기하지만, 개인의 취향이 너무 미세하게 쪼개진 지금의 개인화에서는 다변적 가치를 ‘포용’하는 식으로 이해해야 한다.
누군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고, 때로는 달라서 다른 시각의 일환으로 수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극단적으로 배척하기도 한다. 이렇게 한국 사회가 극도로 미세한 단위로 분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나노 사회’로 명명된다.
코로나19 시국에서 열렬히 환호받던 국내 콘텐츠 「오징어 게임」은 이런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단합보다 단일이 중요한 나노 사회에서 개인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삶을 모색할 수밖에 없고, 일단 흩어져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 뒤 취향이 맞는 사람끼리 다시 모여 ‘세계관’을 찾아 그들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식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1인 가구 수는 664만3,354가구로 전체 가구의 31.7%를 차지한다. 이를 증명하듯 집밥은 편의점 간편식으로 대체되고, 경조사비 역시 스마트폰으로 쉽게 해결된다. 코로나19로 달라진 학교 수업 방식에서 학생들이 얻은 건 교류가 아닌 지식이다.
‘함께’라는 단어가 점점 멀어지는 시대에, ‘혼자’라는 개념조차 ‘혼자의 혼자’ 식으로 미분화하고 있다.
잘 쪼개진 트렌드, 폐쇄적 취향에 빠지다
이런 모래알 흐름 속에 끼리끼리 관계를 맺는 아이러니한 풍경도 낯설지 않다. 성균관대학교 최재봉 교수가 지적한 ‘앱형 인간’처럼 밀레니얼 세대는 스마트폰에서 원하는 앱을 깔고 필요에 따라 켜고 끄듯 얇고 넓은 인간관계를 추구한다.
결속력보다 개인적 취향이 중요해진 셈이다. 그러다 보니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같은 TMI(Too Much Information : 쓸데없이 자세한 정보) 취향 중심으로 모이는 사례가 적지 않다.
민트 초코를 좋아하는지, 딱딱한 복숭아를 좋아하는지(딱복-물복), 퍽퍽한 밤고구마인지 촉촉한 호박고구마인지(밤고-호고) 등이 대표적이다.
다양한 취향이 트렌드가 되면서 혈연·지연·학연이라는 전통적 결속은 약해지는 반면, 취향과 욕구가 비슷한 사람들의 연결성은 강화되는 것이다. 이는 자신과 취향이 비슷한 패션, 라이프 스타일, 뷰티, 음악 등으로 뻗어나가면서 산업 전반에 영향을 준다.
취향으로 뭉친 집단은 다른 의미의 ‘결속’을 강화하는 듯 보이지만 확증적 성향이 강조되기 쉽다. 서로 선호하는 정보만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전달되던’ 정보가 ‘선택하는’ 정보만 살아남는 방향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견의 메아리 속에서 사람들은 자기 생각이 옳고 주변 사람들도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믿게 되는데, 이를 에코 체임버효과(Echo Chamber Effect)라고 한다.
닫힌 공간(chamber)에서 메아리(echo)를 들을 때처럼 선호하는 관점만 수용해 계속 반복적으로 듣고 보는 것이다. 에코 체임버 효과는 양자택일 상황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결국 나노 사회는 트렌드를 잘게 쪼개 분산화된 수많은 정보와 취향을 모두 포용할 수 있다고 과대 포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한쪽에 대해 귀를 막는 ‘폐쇄적’ 특징을 유지하고 있다.
조용필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 노래가 전파한 ‘국민적인’ 인지는 나노 사회에서 이제 발견하기 힘들다.
임영웅의 광팬은 BTS의 노래 한 소절 부르기 힘들고, 웹 드라마에 익숙한 MZ세대는 일일연속극 출연진에게 관심이 없다. 집단은 다양해졌는데 다른 집단과의 소통은 단절된 셈이다.
고립된 서로를 살피는 ‘공감력’의 힘
나노 사회는 또 노동의 파편화를 불러왔다. 공동체 역할이 가족에서 개인으로 좁혀지면서 개인들의 생존 전략이 더 치열해진 것이다.
마이클 샌델이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밝혔듯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는지” 에 대한 의문은 계속되고 있다.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은 나노 사회는 우리를 때론 치열하게, 때론 무기력하게 만든다. 그 때문에 나노 사회의 현대인에게 직장은 고정된 ‘장기 아파트’가 아닌 ‘단기 여관’으로 변하고 있다.
2020년 한국 노동자의 평균 근속 연수는 6.8년으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짧은 편에 속한다. 초단기 노동을 제공하는 근로자를 일컫는 ‘긱 워커(Gig Worker)’의 출현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도보 배달이 증가하고 본업과 함께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 하루를 3등분으로 쪼개 일하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
다양한 1인 직업의 출현은 소통의 장을 약화시킨다. 1인 노동이 많아지면 그 이해관계가 사람 수만큼 늘어나고 서로의 욕구도 달라 구성원 간 갈등이 격화하고 사회적 결속력 또한 약해지는 현상이 늘어날 수 있다. 일의 파편화는 결국 자기 책임을 가중시키면서 고립된 고독한 개인을 양산할 수 있는 것이다.
나노 사회 진입으로 우리나라 자살자 수도 일평균 37.8명으로 OECD 국가 중 1위다.
나노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해결할 방안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공감력’ 회복을 첫손에 꼽는다. 김난도 교수는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가치관 차이를 서로 인정하는 것이 공감력 회복의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 ‘우연한 발견’ 역시 중요한 해결 도구다. AI와 빅데이터로 익숙해진 삶의 ‘추천 기능’을 배제해야 에코 체임버 효과에서 탈출할 수 있다. 자신에게 맞는 추천 뉴스 대신 다양한 매체를 접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정면에서 응시하는 메시지 외에 주변에서 나오는 약한 신호를 해석하는 ‘주변 시력’을 통해 세상을 더 폭넓은 시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것이야말로 상대방 심장이 뛰고 있는 박동수를 제대로 확인하는 나노 사회에 걸맞은 유일한 방법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