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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thly Magazine
December 2022 Vol.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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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학교

함께 나누는 것의 가치
지역사회와 아이들을
같이
연결하는 학교 밖 교육

경문고등학교 박범철 교사
많은 사람이 ‘공부’하면 ‘입시’를 떠올린다. 특히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입시 준비의 비중은 커지다 못해 절대적으로 여겨진다. 학생들이 하루 대부분을 보내는 학교에서 과연 모든 프로그램이 오직 입시만을 위해 돌아가야 할까? 이 근본적인 물음 앞에서, 박범철 교사는 ‘학교 밖 교 육’이라는 돌파구를 찾았다.

정라희 / 사진 이용기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입시에 ‘대한’ 교육에 의미있는 ‘대안’을 찾다

박범철 교사가 경문고등학교에서 처음 교편을 잡은 때는 2006년이다. 국어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입시에 대비한다는 이유로 EBS 교재를 풀이하고, 서울대 논술 기출문제 풀이를 반복하는 일도 병행했다. 하지만 의욕적으로 시작한 교직 생활이 문제 풀이로 점철되자, 어느 순간 위기감이 들었다.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좁은 책상 앞에 앉아 입시 공부에 매진하는 일이 과연 모든 청소년에게 좋은 일인지 의문이 든 까닭이다. 300명의 청소년이 학교에 들어와도 그중 입시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보는 학생은 대개 100명 남짓. 높은 성적을 내는 학생의 능력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는 수월성 교육은 200명이 넘는 대다수 청소년을 제도에서 배제하는 형태의 교육이었다. 대안을 고민하다 2012년에 비교과 프로그램인 ‘인문학 아카데미’를 개설했다.
“청소년들이 하루 14시간을 학교에 있어야 하는데, 모든 프로그램이 입시 하나를 위해 가는 게 맞을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수월성 교육에 참여하지 않는 몇몇 청소년에게 권유해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비교과 프로그램을 진행했습니다.”
비교과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청소년들은 수업 시간에 접하기 힘든 인문학 본연의 의미를 탐구하고, 박물관과 역사관 등지를 찾아다녔다. 참여 학생들의 반응은 당연히 좋았지만, 주변에서 ‘학생들이 공부할 시간을 뺏는다’라며 탐탁지 않아 하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이듬해 프로그램은 학교를 넘어 지역으로 확장되었다. 2013년부터는 ‘따봉, 따듯한 봉사 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지역사회 이웃과 함께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사회적 소수자, 약자와 교류하며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혔다. 동작가족지원센터와 연계해 동작구에 사는 결혼 이주여성들을 만나면서 학부모들도 프로그램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2008년 대학원에 다닐 때 한국어 교육을 전공하면서 결혼 이민자들을 만났어요. 지금은 역사를 가르치고 있지만 당시에는 국어 교사이기도 했고, 박사과정 연구자이다 보니 처음에는 그들의 고민도 언어 학습에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분들의 진짜 고민은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초등학생 자녀들의 가정통신문을 해석해 주거나 은행에 같이 가줄 ‘언니’들이 더 절실했던 거죠. 그래서 ‘친정 언니 프로젝트’를 만들었고, 당시 학부모님들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함께한 학부모들은 자녀들이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활동가로 남아 프로그램마다 든든하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도서관 작은 모임이 쑥쑥 자라 학교 대표 프로그램으로

처음에는 10명 남짓한 청소년이 참여했지만, 프로그램에 대한 호평이 알음알음 퍼지면서 나중에는 ‘문과 1등’, ‘이과 1등’ 하는 청소년도 비교과 프로그램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2017년에는 동작구 구민봉사단, 이주민 자조모임 등과 손잡고 봉사 단체인 ‘동작 다다름단’을 만들었다. 이즈음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의 죽음이 미디어를 통해 공개되면서, 난민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고자 난민과도 만났다. 2019년에는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민주시민 캠페인, 2022년에는 성대골에너지협동조합과 기후위기 대응활동, 동작역사문화연구소와 현충원 역사탐방 등 마을과 연계한 다양한 민주시민 캠페인 활동을 진행했다. 10년 전, 학교 도서관에서 시작한 비교과 프로그램은 어느덧 전교생이 참여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확장되었다. 현재는 서울시교육청을 포함한 전국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사회현안수업’을 비롯해 청소년의 민주시민 실천 동아리 ‘키비처(Kibizer)’, 주말 동작 다다름단 봉사 활동 등 크게 세 영역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사회 현안 수업은 1학년과 2학년 16개 반이 모두 참여하며, 학급별로 주제를 선정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올해 핵심 주제는 ‘전쟁과 평화’다. 또 혁신교육지구 사업 ‘꽃을 든 청소년 프로젝트’ 를 통해 학도의용병 현충비 옆에 평화의 조형물을 설치할 수 있도록 교육감 청원 활동을 펼쳤다.
“경문고등학교가 있는 동작구에는 현충원, 보라매공원, 흑석동 학도의용병 현충비 등 전쟁과 관련한 장소가 많습니다. 6·25전쟁 당시 한강 다리가 끊어진 것도, 한강 방어선 전투 등도 동작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지하철역인 동작역도 현충원이 생기면서 들어섰고요. 청소년들도 각자의 활동으로 자신이 사는 지역을 변화시키는 일에 동참할 수 있죠.” 실제로 몇몇 학생은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직접 제안서를 쓰고, 교육감에게 서명을 받으며, 예산을 받아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전 과정을 주도했다. 올해는 그에게도 도전의 시기였다. 창체부장이 되면서 교사로서 입시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부담은 줄었지만, 2주에 한 번씩 16개 학급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할 강사를 섭외하는 일은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모든 학급이 일괄적으로 수업을 받기보다 주체적으로 주제를 정하고 지역사회 활동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동작 FM 팟캐스트 ‘동작구에 난민이 살고 있어요’에 출연한 모습 기후 위기를 알리는 ‘꽃을 든 청소년 프로젝트’ 활동 동작관악교육청 주관 청소년 한마당 참여 모습 성남고 학생회 학생들과 만나 함께한 ‘꽃을 든 청소년’ 활동

삶의 의미, ‘학교 밖 교육’에서 찾는 청소년들

어떤 학생은 스스로 사회 현안을 발굴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혁신교육지구에서 지원하는 동아리 활성화 프로젝트를자발적으로 이어 나가기도 한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학원에서 배울 수 없는 수업이라는 점이 마음에 와닿았다”라고 말한다. 더불어 “내 손으로 세상을 바꿔 나간다는 보람도 느낄 수 있다”라고 전한다.
“저에게 수업을 한 번도 안 받은 학생인데도 개인 시간을 할애해 프로젝트를 끝까지 완수한 친구도 있어요. 오히려 제가 말릴 정도로 열성적으로 하는 모습에 감명받기도 합니다.
이렇게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동기부여를 받는 청소년들이 해마다 한두 명씩 나옵니다. 11월 3일이 ‘학생의 날’인데, 청소년들도 고등학교 1학년부터는 정당에 가입해 참정권 운동을 할 수 있고, 고등학교 3학년은 피선거권도 있습니다. 아직 교복을 입고 있어 사회에서는 예비 시민으로 여기지만 이미 민주시민으로 해야 할 역할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교육은 그런 부분을 잘알려주지 않죠.”
최근에는 사회 현안 수업이 혁신교육지구 사업으로 선정되면서 주변 지역 학교들까지 동참하고 있다. 돌아오는 2023년에는 10월 마지막 주 금요일을 ‘동작 청소년 행동의 날’로 정하고 마을 전체가 참여하는 활동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다. “올해부터는 봉사 활동이 대학 입시에도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아요. 그런데도 공지를 내면 자발적으로 나오는 학생이 많습니다. 졸업하고도 찾아오는 친구도 있고, 자녀들이 학교를 졸업했음에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학부모들도 계시고요.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많은 모임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지금도 변함없이 모임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동기부여를 받는 청소년들이 해마다 한두 명씩 나옵니다. 11월 3일이 ‘학생의 날’인데, 청소년들도 고등학교 1학년부터는 정당에 가입해 참정권 운동을 할 수 있고, 고등학교 3학년은 피선거권도 있습니다. 아직 교복을 입고 있어 사회에서는 예비 시민으로 여기지만 이미 민주시민으로 해야 할 역할을 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의 교육은 그런 부분을 잘알려주지 않죠.”
최근에는 사회 현안 수업이 혁신교육지구 사업으로 선정되면서 주변 지역 학교들까지 동참하고 있다. 돌아오는 2023년에는 10월 마지막 주 금요일을 ‘동작 청소년 행동의 날’로 정하고 마을 전체가 참여하는 활동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다. “올해부터는 봉사 활동이 대학 입시에도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아요. 그런데도 공지를 내면 자발적으로 나오는 학생이 많습니다. 졸업하고도 찾아오는 친구도 있고, 자녀들이 학교를 졸업했음에도 빠지지 않고 나오는 학부모들도 계시고요.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많은 모임이 사라지는 건 아닐까 걱정했는데, 지금도 변함없이 모임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앎’과 ‘삶’으로, 지역사회 속에서 성장하는 교육

박범철 교사는 “이제는 제가 그만두고 싶다고 해서 그만둘 수 있는 프로그램이 아닙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아직 한 가지 소망이 있다. 청소년과 마을 주민 그리고 학부모들을 넘어 함께 활동하는 동료 교사들의 수가 더 늘어나는 것이다.
“학교마다 저 같은 교사들이 한 명씩은 있어요. 그 수가 더 많아진다면 현재 입시에 매몰된 고등학교 교육의 한계를 벗어나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북유럽 국가인 덴마크에서는 공공기관 가운데 학교가 문을 가장 빨리 열고 가장 늦게 닫는다고 합니다. 지역사회의 거점 역할을 학교가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요. 한국에서도 학교가 그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교육의 참모습이 “청소년들이 다양한 이웃과 어울려 살아가는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제껏 그가 이끌어온 ‘학교 밖 교육’은 결국 ‘학교와 함께하는 교육’이다. 청소년들에게 학교가 입시 지옥으로 여겨지지 않고, 시민으로 성장하는 진정한 배움터가 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그는 ‘앎’과 ‘삶’이 연결되는 교육을 고민해 나갈 것이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