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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 스푼

한국 추상미술의 개척자

유영국 화백
역사한스푼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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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미술이라는 장르가 생소하던 시절, 과감하게 그 길에 발을 들여놓은 화가가 있습니다. 바로 유영국 화백입니다. 그는 다양한 산의 모습에서 선과 면, 색채의 특성을 추려내 화폭에 담은 화가로 김환기 화백과 함께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힙니다.

글 황인희 역사 칼럼니스트

대학교 졸업 후 줄곧 출판계에서 일하다가 월간 「샘터」 편집장을 끝으로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다수의 책을 저술했고, 현재 역사 칼럼니스트, 인문여행 작가로서 집필과 강의에 전념하고 있다.

*사진 및 자료 제공처: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사진 및 자료 제공처: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추상’을 시도하다

유영국 화백은 1916년 강원도(現 경북) 울진에서 태어났습니다. 경성 제2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선생은 1935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도쿄문화학원 유화과에 진학했는데, 당시 도쿄문화학원에서 그는 자유로운 화풍을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유영국 선생을 비롯해 김환기, 장욱진, 이중섭 등 함께 공부하던 화가들의 개성 넘치는 작품도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예술성을 싹 틔울 수 있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유영국 선생은 가장 전위적인 ‘추상’을 시도하며 남들이 걷지 않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1938년 일본의 대표적 전위미술가 단체전인 ‘자유미술가협회전’에서 유영국 선생은 자유미술가협회상*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재능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1943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며 일본에서의 작품 활동이 어려워졌습니다. 선생은 귀국했지만, 식민지 조국의 상황은 여유롭지 않았습니다. 그는 생계를 유지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했기 때문에 잠시 붓을 내려놓고 어부로 일했습니다. 1945년 해방 후에도 여건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유영국 선생은 고향 울진에 있는 동안 어선을 몰거나 양조장을 운영하며 가족을 부양했고, 덕분에 그림 작업에 몰두할 경제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6·25 전쟁이 끝난 1955년에야 비로소 유영국 선생은 안정적으로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본격적인 미술 활동을 재개한 선생은 신사실파(新寫實派)**, 모던아트협회 창립 멤버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위적인 미술 단체를 이끌며 모더니즘 미술이 이 땅에 뿌리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출처: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연보
**신사실파: 1947년 김환기, 유영국, 이규상 등이 결성한 화가 단체

역사한스푼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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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색과 기하학적 패턴으로 표현한 한국의 산

유영국 선생 작품의 모티브는 ‘산’이었습니다. 선생은 선, 면, 색으로 구성된 비구상적 형태로서 산을 탐구했습니다. 그는 ‘넓은 색면에 강렬하고 단순한 색채로 표현하는’ 표현주의의 한 흐름인 ‘색면 추상’을 작품으로 구현했습니다. 원색과 기하학적 패턴에 의한 면 분할, 절제된 구성이 특징인 선생의 작품에는 자연의 장엄한 풍경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습니다. 특히 색을 빼고 생각할 수 없는 선생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그의 말이 저절로 이해됩니다.
“색채란 써보면 참 재미있는 거요. 옆에 어떤 색을 가져와야 이 색도 살고, 또 이 색도 살고… 심포니를 들으면 멜로디가 흐르다가 갑자기 ‘자자 잔’ 하지요. 그림도 이렇게 보는 사람에게 자극을 줄 필요가 있어요. 그림은 시각예술이니까 입하고 귀하고는 상관없고 그러니까 색은 필요한 겁니다. 색채는 균형과 하모니를 이루도록 구성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의 예술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설립된 유영국미술문화재단의 표현을 빌려 그의 작품 세계와 색에 대한 해석을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점, 선, 면, 형, 색 등 기본적인 조형 요소가 주체가 되어 서로 긴장하며 대결하고, 균형감각을 유지함으로써, 그 자체로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중략) 색채는 빨강, 노랑, 파랑 등의 삼원색을 기반으로 하되 유영국 특유의 보라, 초록 등 다양한 변주(variation)가 구사된다. 심지어 같은 빨강 계열의 작품에서도 조금 더 밝은 빨강, 진한 빨강, 탁한 빨강, 깊이감 있는 빨강 등 미묘한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긴장감을 제공하며, 동시에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이로써 회화적 아름다움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해 간다.”
***출처: 조선일보(2021. 02. 19.)

역사한스푼03

▲ 1956~1957년경 작은아들(유건)과 함께

역사한스푼04

▲ 유영국 생가, 경상북도 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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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 6월 제3회 모던아트협회전(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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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6~1957년경 작은아들(유건)과 함께

역사한스푼04

유영국 생가, 경상북도 울진

역사한스푼05

1958년 6월 제3회 모던아트협회전(가운데)

‘자신 안에 있는’ 산을 형상화하다

산은 늘 같은 자리에 있지만 그 모습은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시간에 따라, 계절이나 기후에 따라, 보는 사람의 심경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보입니다. 때로는 산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 난관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거센 바람을 막아주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것을 내어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자연의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선생의 작품은 인종이나 국경을 넘어 인류에게 위안과 평안함을 전파합니다. 그것은 자연의 힘이며 색과 안정된 면 분할의 힘이기도 합니다. 유영국 선생은 산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산은 자연이 부여한 하나의 물리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추상의 빈 그릇일 수도 있다. (중략) 바라볼 때마다 변하는 것이 산이다. 결국 산은 내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것이다.” 유영국 선생은 ‘자신 안에 있는’ 산의 모습에 자신만의 색을 입히고 자신만의 해석으로 형상화해 작품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추상이라는 현대미술에 더욱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선생의 작품 속 산이 ‘우리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들어왔을 때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케이 로고 이미지

역사한스푼06

▲ 1979년 6월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왼쪽에서 두 번째)

역사한스푼07

1992년 방배동 작업실

역사한스푼06

1979년 6월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왼쪽에서 두 번째)

역사한스푼07

1992년 방배동 작업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