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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공감(授業共感)

컬러, 교실로 들어오다

차의과대학교 미술치료대학원 김태은 교수
수업공감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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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가라앉는 날, 좋아하는 색깔의 펜으로 낙서하다 보면 기분이 풀릴 때가 있다. 무언가를 그리는 행위에서 오는 해방감, 그리고 색채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마음을 다독여주는 까닭이다. 미술치료 전문가 김태은 교수 역시 ‘컬러’의 힘을 느낄 때가 많다. 치료의 영역만이 아닌 일상이나 교실에서 색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방법은 없을까? 색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김태은 교수에게 들었다.

글 정라희 l 사진 성민하

세상에 똑같은 초록은 없다

색에는 다양성이 있다. 똑같이 ‘초록’이라고 불러도 누군가는 갓 싹튼 어린잎의 빛깔을 떠올리고, 어떤 이는 신호등의 불빛을 연상한다. 중간색으로 통하는 초록은 차가운 파랑과 따뜻한 노랑이 만나 색의 스펙트럼이 무척 다양하다.
기능적 측면에서도 초록은 다양한 장소에서 활용된다. 학교의 교실이 대표적이다. 과거 칠판이나 게시판에 짙은 초록색을 주로 사용한 것은 차분함을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병원에서도 초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붉은 피를 자주 보는 의료진은 눈의 피로를 줄이고자 빨간색의 보색인 청록색 수술복을 입는다.
“초록색은 매우 안정적인 색이에요. 색상표 안에서 보면 노랑과 파랑이 섞인 중간색이기 때문입니다. 안정적이라는 것은 고요하고 순응적인 것일 수도 있어요. 초록을 대표하는 것은 자연이잖아요. 계절의 흐름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처럼요. 그래서 초록색의 보색이면서 자극적인 느낌을 주는 자주색을 초록과 함께 활용하기도 합니다. 색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을 주기 때문이죠.”
김태은 교수 역시 강의할 때 색을 자주 활용한다. 예를 들어 첫 수업 시간에는 강의실 앞에 색종이를 붙여두고 학생들에게 강의실에 들어올 때 원하는 색의 색종이를 골라보라고 한다. 이때 평소 초록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그날 기분에 따라 전혀 다른 색을 선택한다. 이런 과정은 자신의 감정과 선호를 ‘알아차리는’ 연습이다.
“색종이를 골라 강의실에 들어온 다음에는 오픈채팅방을 열고 각자 선택한 색과 자신이 생각한 의미에 관해 이야기해요. 똑같이 초록색을 골랐는데도 누군가는 ‘안정감’이라고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도전’이라고 답하기도 하죠. 정답은 없습니다. 미술치료에서 색은 관념을 설명하기 위한 것보다는 다양성을 경험하기 위한 요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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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에 대한 생각, 편견이 아닌 이해로 다가가기

미술치료를 하다 보면 이따금 색에 대한 오해를 접할 때가 있다. 내담자가 특정한 색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보고 걱정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아이가 그린 그림을 보고 ‘검은색이 너무 많다’라거나 ‘빨간색이 너무 많다’고 말하는 부모님이 있어요. 그러면 저는 아이에게 ‘다른 색은 무엇이 있었니?’라고 물어봅니다. 도구가 검은색만 있어서 검은색을 쓴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거든요. 검은색으로 그림을 그린 아이에게 ‘분명한 걸 좋아하는 성격이구나?’ 하고 물으면 오히려 ‘화가 나서 그랬어요’라고 답하기도 해요. 이렇듯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을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그 색깔은 그런 의미’라고 지레짐작하면 선입견이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술치료사 훈련을 받을 때는 상대방에게 긍정적 측면을 열 가지 이야기한 다음 문제 되는 부분을 서너 가지 이야기하도록 합니다.”
김태은 교수는 색채를 활용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색에 대한 편견부터 지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색채를 활용한 교육 활동에서 ‘어떤 색을 쓰면 어떻다’라고 단정 짓기보다 명화를 함께 보면서 그림 속에 어떤 색들이 포함되어 있는지 토론의 요소로 삼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어렵게 느껴지는 그림이라도 색에 대한 경험을 풀어내면서 각자의 감정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까닭이다.
“미술치료에서 주로 사용하는 매체는 페인팅, 드로잉, 조각입니다. 사실 색은 페인팅에서 자주 쓰는데, 색의 가장 큰 장점은 그림이나 조각처럼 특정한 계획이나 의도 없이 그 색을 칠하는 것만으로도 색에 대한 자극이 시작된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색을 활용한 교육은 학생들을 자연스럽게 치유로 연결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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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공감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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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으로 대화하며 소통하는 일상의 위로

과학적이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좋아하는 색을 통해 기분을 전환하는 방법은 많다. 무슨 색을 좋아하는지 질문하고 답하며 어색함을 풀어볼 수도 있고, 즐겨 입는 옷 색깔을 통해 상대방의 취향이나 관심사를 알아가기도 한다.
“제가 들고 다니는 아이템 중에는 핑크색이 꼭 있어요. 누가 보면 조금 유치하다고 여길 수 있지만, 사실 한 살 터울 오빠의 남색 옷을 물려 입으며 자란 저에게 핑크색 아이템은 경제적으로 자립하면서 제 돈으로 산 ‘자립’의 의미거든요. 가까운 사이라면 선호하는 색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친교와 치유의 시간을 가져볼 수도 있죠.”
성격이 강해 보이고 싶을 때 빨간 립스틱을 바른다거나 노란색 버스를 보면 어린이집을 떠올리는 등 다수에게 관념화된 색의 이미지도 물론 있다. 김태은 교수는 이런 요소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교육과 생활에 접목해 볼 수 있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 학교폭력이 빈번한 곳에는 사이사이 벽화를 그려 넣기도 하고, 혼자 사는 어르신이 많은 동네에서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아파트의 동을 숫자로 표기하지 않고 ‘오렌지동’ ‘초록동’ 등 색깔로 구분하기도 해요. 특정한 색을 칠해 구분하는 것이죠.”
임상 현장에서도 색을 통해 내담자를 더 깊이 이해하기도 한다. 미술 도구가 많지 않아도 색연필 몇 자루만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언젠가 이루고 싶은 꿈에 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나오기도 한다. 미술치료사가 아니더라도 교육 현장에서 색을 통해 학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방법은 다양하다.
“저는 색채를 이야기할 때면 조명에 대해서도 언급하곤 합니다. 빛이 있어야 색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에요.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른 색을 갖고 있지만 다양한 색이 모여 있어 가장 예쁘다고요. 마음의 색은 드러나지 않으니 함께 마음의 불을 켜보자고 말해 주면 어떨까요?”
케이 로고 이미지

수업공감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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