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에서 절망 대신 선택한 유쾌한 삶
‘인생의 비극 앞에서 웃을 수 있는 사람은 절망할지언정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이근후 교수의 책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프롤로그 제목에 적힌 문장이다.
나이가 들어도 유쾌하고 재미있게 사는 법을 떠올리며 책장을 펼쳤는데, 아흔을 앞둔 인생 선배에게도 여전히 삶이란 녹록하지 않다. 흐르는 시간을 당해낼 재간 없이 시력도 청력도 또렷함을 잃었고, 이제는 글을 읽거나 쓸 때도 누군가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슬픔보다 하루하루 사소한 즐거움을 찾아가며 일상을 채운다.
이미 글로 쓴 대로, ‘인생의 슬픔은 일상의 작은 기쁨으로 인해 회복’되는 까닭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신체와 나이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활기차게 살아가려 한다. 집필과 강연은 물론 그가 설립한 ‘가족아카데미아’에서 사회문제와 정신건강에 관심을 둔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정신의 활력을 지켜간다. 노화와 함께 찾아온 몸의 불편을 받아들이면서도, 신체의 한계를 넘어설 또 다른 방법을 찾아 삶의 접점을 만들어 나간다.
“왼쪽 눈은 아예 보이지 않고, 오른쪽 눈도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혼자 힘으로는 글을 쓸 수 없어서 손자에게 부탁했죠. 제가 구술하면 손자가 받아쓰고 다시 저에게 읽어주면 원고를 수정하면서 글을 씁니다. 자기 일이 바쁠 텐데도 힘닿는 대로 저를 도와줍니다.”
눈은 잘 보이지 않지만, 손자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대화는 늘어났다. 누군가는 정년 이후를 의미없는 기간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그는 오히려 이 시간을 인생의 황금기로 정의하며 스스로 하고 싶고 자신을 재미있게 해주는 일로 일과를 채워나간다. 그동안 살아오며 “노력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은 원래부터 많지 않았고, 흐르는 시간을 당해 내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라는 것을 경험한, 깨우침의 결과다.
나이듦 수업 강연 모습 [출처:안양문화예술재단]
살아가고자 애쓰면 새롭게 열리는 세상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로서 50년 넘게 살아온 이근후 교수가 대중과 접점이 깊이 닿은 계기는 2013년에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를 출간하면서부터다. 이는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인생의 기술을 자신의 경험과 연결해 풀어낸 에세이. 처음에 출판사에서는 그에게 회고록 출간을 권유했으나, 자신의 기억에 의존해 과거 이야기를 풀어낼 수는 없어 일상을 담은 수필을 썼다.
“원래 나는 글재주가 없는 사람이에요. 정식으로 배워본 일도 없고요. 그런데 그때부터 계속해서 책을 내게 된 겁니다.”
죽음의 위기를 몇 차례 넘기고 일곱 가지 병과 함께 살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노학자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주었다.
물론 인생이 항상 재미있지는 않다. 나이가 들수록 힘에 부치는 일은 늘어가고, 언젠가 찾아올 죽음도 생각하게 된다. 아흔 가까운 세월을 살며 희로애락을 두루 겪은 그도 매 순간 초연하기는 어렵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현대사의 굴곡을 고스란히 통과해온 그가 겪은 세상 역시 ‘생각보다 불합리하고 서글픈 곳’이었다. 젊은 날 스스로 세운 계획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없었고, 인생이 잘 풀려간다 싶으면 또 다른 난관이 닥쳤다.
그라고 해서 그 시절 좌절하지 않았을 리 없다.
그래서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애쓰면 마법처럼 막다른 곳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책 속 문장이 더 크게 와 닿는다.
사람의 정신과 육체를 다루는 의사로서 관찰해온 인간의 모습도 합리적이기보다 비합리적일 때가 많았다. 사회적 지위가 높거나 권력과 지식이 많을수록 아집에 사로잡히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내가 정신과 의사를 하지 않았다면, 정신과 환자가 되었을 거라고 종종 말합니다. 나도 생각이 많은 편이고, 환자들도 생각이 많은데 왜 나는 진료를 하고 그들은 치료를 받는지 궁금했어요. 차이점은 많은 환자가 자기 생각에 집착한다는 겁니다. 저 역시 내 생각, 내 감정이 본드로 붙인 것처럼 견고해지면 환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이 옳더라도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할까’ 하는 마음이 필요하지요.”
지식은 휴대폰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은 사랑이 없지만 선생님은 사랑을 가지고 있지요. 인간 소통에서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남이 아닌 나다운 삶을 찾아가는 여정
삶의 고통은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의 불안에 집착할 때 찾아온다. 후회와 불안을 완벽히 끊어낼 수는 없어도 작은 재미를 통해 희석할 수는 있다.
나이가 들어 좋은 점 하나는 목표지향적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 100세 시대인 지금, 한층 길어진 인생을 살면서 조금이나마 후회를 덜어내려면 남이 아닌 나답게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 한국의 교육은 과정보다 답에 집중하는 경향이 크다. 이미 변해버린 사회 속에서 교사 한 명이 일으킬 변화의 폭은 크지 않지만,
그런데도 지식을 넘어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이 역시 교사라고 말한다.
“이제 지식은 휴대폰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휴대폰은 사랑이 없고, 선생님은 사랑을 가지고 있지요. 인간 소통에서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러자면 교사들도 남이 아닌 나답게 살아야 한다. 하지만 해법을 찾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아흔에 이른 노학자는 그저 그동안 겪고 느낀 바를 공유할 뿐, 자신의 경험이 교훈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이제 선생이기보다 학생의 마음으로 산다. 실제로 정년퇴임을 하던 날, 제자들에게 “이제는 너희가 나를 가르쳐야 한다”고 당부했다. 덕분에 요즘도 제자들을 통해 최신 의학을 배운다.
이처럼 긴 시간 그와 대화하며 깨달은 백세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은 노하우가 아닌 태도에 관한 것이었다. 이쯤에서 다시금 그의 책을 펼쳐본다. “뭐든지 알면 두렵지 않다.
인생도 마찬가지다.”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나답게 살면서도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다양하게 접하고 이해하는 일은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지 또 하나의 지표가 되어준다.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변해도 어른의 지혜는 여전히 마음에 울림을 준다. 물론 아흔에 가깝게 살았어도 여전히 인생은 그에게도 미궁이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교훈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나는 이렇게 살았습니다.” 하고 담담하게 이야기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