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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22 Vol.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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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너머 꿈

수술대에 몇 번을 오르며 다짐했다. “반드시 이겨내 학교로 돌아가리라.”
치료실에서 ‘악바리’로 불릴 만큼 재활 의지를 불태운 것도 “선생님이 꼭 돌아갈게”라고 한 학생들과의 약속 때문이었다.
왼쪽 다리 일부를 의족이 대신하게 되었지만, 그를 앞으로 달려 나가게 하는 원동력은 학생에게서 나온다. 체육 선생님이자 의족 골퍼인 한정원 교사의 이야기다.

이성미 / 사진 김수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똑같이 달리고, 똑같이 사랑할 줄 아는 평범한 체육 교사

늦은 오후, 골프장에 들어온 한정원 교사를 사람들이 흘끔 쳐다본다. 사람들의 시선이 먼저 가는 곳은 의족을 착용한 그의 왼쪽 다리.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한다. 바로 샷(shot). 시원하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공은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장애’라는 편견을 지운다.
한정원 교사가 의족을 착용하게 된 것은 2013년 교직원 연수에서 돌아오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 일부를 잃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즐겁게 체육 활동을 할 수 있게 하자며 각종 프로그램 준비로 한창 열정을 끌어올릴 때였다. 절망도 잠시, 헌혈증을 모아 병원으로 찾아온 학생들에게 한정원 교사는 “선생님이 꼭 학교로 돌아갈게”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독하게 재활에 매진했다. 쉽게 포기하기에 교사란 너무나 어렵게 얻은 꿈이었다.
한정원 교사는 대학 졸업 후 바로 임용고시에서 두 번 연달아 고배를 마시고,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았다. 그러다 서른한 살에 다시 임용고시를 준비했고 마침내 합격했다.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오래도록 가슴 한편에 웅크리고 있던 꿈이 일어나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듯했다. 실제로 운동장을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꿈속인가 싶어 마음이 뭉클했다. 학생들은 매일 “체육 시간만 기다린다”라며 새끼 제비처럼 입을 벌려댔다. 그는 학교에서 살아 움직이는 꿈을 보았다. 귀하고 예쁜 학생들의 모습이 아른거려 도저히 주저앉을 수 없었다.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이식한 피부가 짓무르도록 재활에 매진하고, 경기를 연습했다.
그러고는 마침내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던 제자들이 학교를 졸업하기 전, 1년 7개월 만에 한정원 교사는 약속대로 학교로 돌아갔다. 예전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학생들보다 잘 달리고, 목소리도 컸다. 달리기 전용 스포츠 의족을 착용하면 달리기도 문제없으니 수업도 거뜬했다. 배드민턴, 배구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학생들과 합을 맞출 수도 있었다. 삐뚤어짐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면, 삐뚤어짐 없이 서 있는 그가 보였다. 똑같이 달리고, 똑같이 학생들을사랑하는 평범한 체육 교사 한정원이 보였다.

당당하게 대한민국 대표 선수로 서기까지

손톱 하나만 짧게 깎아도 ‘불편’은 찾아온다. 한쪽 다리 일부가 없는 것이 아주 불편하지 않을 리 없다. 그 불편에 익숙해지기까지 한정원 교사는 부단히 노력했다. 자신에게 적합한 운동 종목을 찾는 것이 우선 과제였다.
“처음에는 휠체어 테니스를 했어요. 사범대에 들어가서도 맨 처음 배운 것이 테니스였거든요. 장애인 전국체육대회에 출전해 금메달을 딸 만큼 좋은 성적을 거뒀지만 제게 맞지 않더군요. 그래서 조정으로 종목을 바꿨죠. 조정도 국가대표로 발탁될 정도로 열심히 했는데, 몸에 크게 무리가 왔어요. 치료 받으러 병원에 가니 의사 선생님이 막 화를 내시더라고요. ‘겨우 무릎을 살려놨더니 이 꼴로 오느냐’라고요. 그러면서 많이 걷는 운동이 좋다며 골프를 추천하셨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골프를 쳤습니다.”
그렇게 만난 골프는 한정원 교사와 천생연분이었다. 골프채를 들으니 맞춤옷을 입은 듯 신이 났다. 쓰임이 많아 초반에는 골반에 무리가 오거나 환부가 다치는 사고도 잦았다. 왼쪽 다리에 방향을 옮겨가며 체중을 지탱하는 것이 특히 쉽지 않았다. 그러나 끊임없는 연습으로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았다. “오히려 왼발이 흔들려 생기는 핸디캡은 없다”라며 자신만의 장점도 찾아냈다. 골프에 두각을 드러낼수록 각종 방송사에서 섭외 전화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렇게 그에게는 ‘의족 골퍼’라는 별명이 붙었다. 한 TV 프로그램에서 박세리 선수는 그의 샷을 보고 “타고난 힘이 있다. 대단하다”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단순히 유명인이 아닌 골프 선수로서도 입지를 굳혔다. 특히 2018년에는 호주절단장애인골프대회 여자부 우승을 거머쥐고, 제3회 세계장애인골프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여자 스탠딩 부문 1위를 차지했다. 현재 그는 골프선수이자 좌식배구 국가대표 선수로서 당당히 세계 무대에 서고 있다.

머물면 고통을 만나지만, 앞으로 나아가면 꿈을 만난다

한정원 교사가 장애를 통해 얻은 깨달음은 ‘머물면 아프다’ 는 것이다. 절단 장애 환자 중에는 없는 부위가 마치 있는 것과 같은 감각과 통증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한정원 교사도 예고 없이 찾아오는 환상통 때문에 진통제를 한 움큼씩 삼켜야 하는 날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통증을 잠재우는 방법을 알고 있다. 무작정 움직이는 것이다. 아프다고 주저앉는 대신 다리를 계속 쓰면 오히려 통증은 사라진다. 한정원 교사는 인생도 그러하리라 믿는다. “공이 원하는 방향대로 가지 않거나, 홀을 바로 앞에 두고 들어가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러면 당장 마음잡기가 쉽지 않아요. 하지만 방금 한 실수나 상황에 매몰되면, 분명 더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없습니다. 골프는 총 18홀이에요. 이번 홀에 실패했다면 다음 홀에서 잘하면 돼요. 아직 경기가 남았으니 앞으로 나아가야 하죠.” 숱하게 많은 것을 경험하게 하고도 인생은 아직 멀었다는 듯 그를 끊임없이 배우게 한다. 한발 더 나아갔다 싶으면 또 다른 과제를 준다. 지금 한정원 교사 앞에 놓인 과제는 대한민국 국민의 자부심이 되는 것이다. “올해는 세 개의 목표를 두고 있어요. 먼저, 7월에 미국에서 세계 최고 장애인 골퍼를 가리는 US 어댑티드 오픈 챔피언십(U.S. Adaptive Open Championship)이 열려요. 그 대회에 나가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예요. 또 한 가지는 10월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좌식배구 국가대표로서 메달을 따는 것이고요. 마지막으로 한국여자프로골프대회(KLPGA) 회원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세미 테스트에 통과하는 것이 올해 목표입니다. 회원이 되고 나면 시니어 투어에 나가 비장애인들과도 경쟁해 보고 싶고요.”
한정원 교사는 꿈을 꾼다. 여전히 “장애를 보기 불편하니 감춰 달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한정원 교사는 그들에게 “꿈이 너무 많아서 감출 수 없다”라고 대답한다. “나를 보며 크는 학생들이 있기에 포기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교사로서, 골퍼로서 한정원 교사는 오늘도 자신 앞에 펼쳐진 필드를 걷는다. 케이 로고 이미지
꿈 너머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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