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성미 l 사진 성민하
글 이성미 l 사진 성민하
퇴근길, 창밖으로 아름다운 바다와 오름이 보인다. 창을 열자 파도 소리가 넘실거리며 흘러 들어온다.
해안도로 위를 달리면 무선 충전기 위에 올라온 듯 힘이 차오른다. 아름다운 풍경을 글로
담아내고 싶어 손끝이 간지럽다. 신재현 교사는 오늘도 여행길 따라 제주 집으로 퇴근한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신재현 교사가 퇴근길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지금과 전혀 달랐다. 창밖으로
네온사인이 어지럽게 흩어지고, 창을 열면 도시의 소음이 다가와 부딪쳤다. 서울 유명 부설초등학교
부장교사로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고, 때가 되면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디를 가든 목적지에 행복이 없는 듯했다. 가슴이 뛰지 않았다.
“교육자 집안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교사를 천직으로 알았어요. 아이들도 좋았고요. 교육부
소속 연구 학교로 발령받은 후에는 성과를 내고자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밤 9시 이전에
퇴근한 날을 손에 꼽을 정도였죠. 점수가 차면 바로 승진할 수 있을 텐데, 어느 날 문득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습니다. 번아웃이 온 거죠. 내 인생의 목표가 교감, 교장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중 제주를 만났습니다.”
육지에 사는 누구나 그러하듯, 신재현 교사에게도 제주는 여행지였다.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는 가장 먼 대한민국, 연고(緣故) 하나 없는 낯선 섬, 달리 말하면 무엇 하나 얽매일 것 없는
곳이었다. 그것이야말로 신재현 교사에게 특별하게 여겨졌다.
제주에만 가면 신이 났다. 숙소에서 걸어서 갈 수 있을 만큼 바다가 가까웠고, 텐트만 치면
마당도 순식간에 캠핑장이 되었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2주, 겨울방학에는 한 달, 차츰 제주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다. 제주살이에 대한 욕망도 갈수록 커졌다. 다음 해 신재현 교사는 육아휴직을
쓰고, 아내는 파견교사로 신청해 제주에 내려왔다. 그러고는 2년간 정착할 준비를 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도 있었다. 소금기 가득 머금은 바람 탓에 새로 산 자전거가 금방 녹이 슬었다.
태풍이 오면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연중 가습기를 돌려야 했고, 겨울에는 난방비도 많이 나왔다.
하지만 하늘과 바람과 바다가 그 모든 근심을 씻어주었다. 결국 제주로 이주하기로 결심을 굳혔다.
20대에 합격한 임용고시를 40대에 다시 봤고, 제주도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아내 역시 신재현
교사가 도시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의 선택을 지지해 주었다.
용기 있는 자만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제주는 신재현 교사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었다. 우선 하늘을
바라볼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도, 퇴근길에도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또 제주는
그를 작가로 살게 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해 초등학교 교사가 된 후에도 작가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던 그는
국민대학교 문예창작대학원에서 어린이문학을 공부하고, 신춘문예를 통해 동화작가로 등단했다. 그러나
여전히 ‘작가’라는 호칭은 어색했다. 동화 쓰는 것에 영 재미를 느끼지 못했고, 자기 이름을 내걸고 작품을
발표할 여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주로 이주하는 과정에서 신재현 교사의 가슴에 글 쓸 재료가 넉넉히 쌓였다. 낭만을 우선으로
생각해 집을 골랐다가 제주 생활의 쓴맛을 본 경험, 제주 자연에 대한 경외 등을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에
진솔하게 담아냈다.
제주살이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때문이었을까. 용기 있는 도전을 향한 응원이었을까. 그가 온라인에 글을
올린 지 5개월 만에 조회수가 65만 회를 넘어섰고, 출판사로부터 “책을 내보자”라는 연락이 왔다. 그러고는
마침내 첫 책 『나는 제주도로 퇴근한다』가 세상 밖에 나왔다. 진짜 작가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신재현
교사는 이후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와 함께 『아이와 떠나는 제주 여행 버킷리스트』, 『초등학교 입학 준비
100일+』 등을 펴냈다.
지난해 12월에는 드디어 동화책 『행복한 아기 수달』이 나왔다. 35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브 채널
‘이웃집수달 Zoo Family’와 협업해 만든 책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동화책을 내고 나서야 신재현 교사는
오랜 숙제를 끝낸 듯 마음이 후련했다. 제주가 자신을 부른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나에게 꿈을 이루라는
것이었구나! 그는 또다시 제주로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신재현 교사는 동화책 『행복한 아기 수달』에서 아기 수달 사남매에게 “너희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하니?”라고
묻는다. 아기 수달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놀고, 예쁜 옷도 입어보지만, “그것이 꼭 행복한 건 아닌 것 같다”라고 말한다. 대신 오랜 고민 끝에 이렇게 답한다. “우리는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모든 것이 행복해.
너희들도 행복하기를 바랄게.”
동화책이 나오기까지 스토리를 쓰고, 그에 맞는 수달 사진을 찾고, 사진이 없으면 스토리를 고치는 작업을
1년 넘게 반복하기가 분명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신재현 교사는 아기 수달의 입을 빌려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지금 행복해, 너희도 행복하기를 바랄게.”
제주살이가 누군가에게는 아기 수달이 입은 ‘예쁜 옷’과 같을 수 있다. 밝은 면만 보고 왔다가 금방 시들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재현 교사는 정착 노하우를 묻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첫째, 한 달 살기를 꼭 경험해 봐라. 여행이 아닌 삶을 경험해 보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아니면 여행으로 만족할지 제대로 선택할 수 있다. 둘째, 비슷한 환경에서 서서히
적응해라. 삶 전체를 제주 스타일로 단번에 바꿀 것이 아니라 기존에 살던 곳과 익숙한 주거 환경에서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 보라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신재현 교사는 제주에서 많은 선물을 얻었다.
“제게 제주는 꿈을 이뤄준 곳입니다. 교사이자 작가로 살게 해준 곳이죠. 이곳에서의 경험이 곧 글의 재료가
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여유가 생겼다는 것입니다. 여유가 생기니 에너지가 차오르고, 교직 생활이
행복해지고, 글 쓰는 일도 더 즐거워졌습니다. 올해도 제가 쓴 책이 두 권 나올 예정으로, 한창 집필 중입니다.
앞으로도 우리 가족은 마치 여행자처럼 제주를 즐기고, 제주 사람들처럼 이곳을 아끼며 살아갈 겁니다.
여러분도 꿈을 꾸세요. 꼭 제주가 아니어도 됩니다. 주변을 둘러보고 마음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그러면 삶이 다채로워지고, 교직 생활도 더 즐거워질 것입니다.”
제주에는 바람이 많아 누구나 쉽게 흔들리는 법을 배운다. 신재현 교사도 여전히 흔들릴 때가 있다. 하지만
제주 사람들이 그러하듯 그는 일어서고 또 일어설 것이다. 흔들려도 된다는 것, 그 반동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 법을 알려준 것, 그것이 제주가 그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다.
“제주는 제가 꿈을 이룬 곳입니다. 이곳에서의 경험이 곧 글의 재료가 되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여유가 생긴 것입니다. 여유가 생기니 에너지가 차오르고, 교직 생활이 행복해지고, 글 쓰는 일도 즐거워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