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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언젠가는 활짝 꽃을 피울 날이 올 거야

조용우 회원(前 서울예술고등학교, 에세이 「얘들아 잘 지내니?」 수록글 中 ‘대기만성(大器晩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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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용우는 1979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수학교육과를 졸업하고 그해 3월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수학 교사로 부임하여 36년 동안 학생들을 지도했다. 에세이 「얘들아 잘 지내니?」는 작가가 서울예고에 재직하던 시절 학생들과 함께 지내면서 겪었던 아름다웠던 추억들을 에피소드별로 담고 있는 책이다.
내가 서울예술고등학교에 재직하던 시절에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가 있었다. 서울시교육청에서는 이 시험이 공정하게 치러졌는지 확인하기 위한 감사를 진행했는데 어느 날 교육청으로부터 특수목적고등학교로 구성된 학군에 대한 해당 시험의 감사반장으로 나를 위촉한다는 공문을 받았다.
이로 인해 오전에는 수업하고, 오후에는 감사를 하기 위해 다른 학교에 방문해야 하는 힘든 나날이 이어졌다.
하루는 국제고등학교에 감사를 하러 갔다. 교장실에서 차를 한잔 마시면서 교장 선생님과 인사를 나눈 뒤 감사장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젊은 선생님 두 분이 내게 인사를 건넸다.
당시 재직 중이던 서울예술고등학교의 졸업생들이었다. 여자 선생님은 기억이 잘 나지 않았지만, 남자 선생님은 그가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내가 담임을 맡았던 반 학생, 흥식이었다.
“선생님!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여기서 뵙네요.”
“어? 흥식이구나. 너 이 학교에서 근무하니?”
“예, 여기 온 지 몇 년 되었어요.”
“응, 그래서 한동안 학교에 오지 않았구나. 반갑다.”
흥식이는 국제고등학교에 근무하기 전 홍은동 인근의 한 여자 중학교에서 미술 교사로 근무했었는데, 우리 학교(서울예술고등학교)에 1년에 한 차례씩 열리는 중학생 미술 실기 대회에 학생들을 인솔하는 교사로 오곤 했다.
흥식이는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었다. 내성적이고 수줍어하면서도 성실한 학생이었는데, 그림 솜씨는 조금 부족했다.
공부로만 보면 우리나라 대학 어디든 너끈히 갈 만한 실력이었건만, 실기 실력은 다른 친구들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늘 어깨가 처져 있어 안쓰러웠다.
나는 흥식이에게 “흥식아, 대기만성이라는 말이 있잖니?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언젠가는 네 그림 솜씨가 활짝 피어날 때가 올 거야. 그러니 부단히 노력해라.”
“예, 선생님 말씀대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흥식이는 남들이 가고 싶어 하는 미술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서울에 있는 어느 대학교 사범대학 미술교육과에 진학했다. 우리 학교에서는 아무도 진학한 적이 없는 대학교였다. 그래서 나는 그 대학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었다.
실기 시험을 보고 온 흥식이가 “선생님! 모든 미술대학에서 입시 때마다 그림을 사절지에 그려서 저도 평소에 사절지에만 그림 연습을 했는데, 그 대학교는 삼절지에 그리라고 해서 놀랐어요. 삼절지에는 그려본 적이 없거든요.”
“당황했겠네.”
“예,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열심히 그렸어요.”
흥식이 입장에서 보면 나는 진학 지도를 못 하는 형편없는 고3 담임이었다. 그 학교가 입시 때 어떤 크기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라고 하는지도 모르고 입시생을 보낸 교사였기 때문이다.
흥식이는 그 학교에 합격했다. 그 후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우리 학교에서 개최하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실기 대회에 학생들을 인솔하는 교사로 1년에 한 차례씩 찾아왔다.
그 후로 한동안 소식이 뜸해서 궁금했는데, 여기 국제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몹시 반가웠다. 감사 일이 바빠 우리는 더 많은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러고는 또 세월이 한참 흘러 내가 교직을 떠난 후, 어느 날 흥식이에게서 연락이 왔다. 국제고등학교에서 다른 고등학교로 자리를 옮겨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그리고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연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멋진 그림이 담긴 부채를 소포로 보내왔다. 인사동에서 흥식이를 만났다. 멋진 작품을 보니 마음이 흐뭇했다.
“선생님! 제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힘들어 방황할 때 선생님이 힘을 많이 주셨어요. 그때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대기만성이라고···. 열심히 정진하면 나중에 아름답고 멋진 꽃을 피울 거라고요. 그 후 선생님 말씀을 좌우명 삼아 지금까지 지내왔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응? 그랬어?”
나는 멋쩍게 웃었다.
“예, 그래서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도 항상 대기만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 시절 실기 솜씨가 좋았던 친구들은 명문대 미대에 진학해 폼을 잡고 다니기도 했지만, 불안정한 예술가의 삶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흥식이는 미술 교사로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잘 지내고 있는 것을 보니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났다. 케이 로고 이미지
제자 흥식의 그림이 담긴 부채 제자 흥식의 그림이 담긴 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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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고 분량 : 원고지 12매 (A4 1매 반)
★ 보내실 곳 : 「The-K 매거진」 편집실 (thekmagazine@ktcu.or.kr)
★ 마감일 : 매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