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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나누기

좋은 사람 좋은 생각

시로 위로하고 시로 살아가다

나태주 시인
언젠가부터 길가에 핀 풀꽃이 예쁘게 보였다. 화려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전해오는 아름다움이 있었다. 작아서 지나치기 쉬운 거리의 풀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배경에는 한 편의 시가 있다. 짤막하지만 단숨에 가슴 깊숙한 곳까지 이르는 시의 힘. 그 한 구절의 위로가 상처 입은 사람들을 계속해서 일으킨다. 덕분에 자꾸만 세상이 나태주 시인을 곁으로 부른다.

정라희 / 사진 이용기

마음을 일으키는 시의 힘

그의 시는 살아 있다. 책 속에 박제된 문자가 아니라 소리 내어 읊고 손으로 옮겨 쓰며 마음과 마음 사이를 연결한다. ‘전 국민 애송 시’라고 해도 좋을 ‘풀꽃’이 그랬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는 단 세 줄만으로도 시들었던 마음이 살며시 고개를 든다. 보잘 것 없게만 여겨졌던 자신이 있는 그대로 괜찮게 느껴진다. 그렇게 시인은 시를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마다 따스한 위로를 전해준다. 이처럼 읽는 이의 마음을 다독이려고 하늘이 보내준 것만 같은 나태주 시인. 하지만 사실 그가 시를 쓰며 가장 가다듬고 싶었던 것은 자신의 마음이었다.
“저는 시골 출신이고 작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항상 스스로 ‘마이너’라고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사실 저는 밝은 사람도, 착한 사람도 아닙니다. 오히려 엉뚱한 면이 많은 편이지요. 그래서 과거 교직에 있을 때는 제 안에서 널뛰는 감정을 통제하려고 애썼습니다. 다행히 시를 썼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었지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시를 쓰는 일은 ‘마음을 깨끗하게 빨래하는 일’이라고 말이지요.”
맑고 아름답게만 보이는 그의 시는 사실 고뇌를 거쳐 정제되어 세상에 나온 언어들이었다. 그는 애써 타고난 긍정가인 척하지도 않고, 넉넉한 호인인 척하지도 않는다. 시를 쓰게 된 계기를 물으면 빛나는 재능에 관한 이야기보다 실연과 실패에 관한 경험담이 쏟아진다. 그 시절 시를 쓸 수 있었기에 흔들리는 순간마다 일어설 수 있었다는 듯이.
지금까지 시를 몇 편이나 썼는지 정확하게 세본 일은 없다. 얼추 면 수로는 5,000페이지를 넘겼다. 어떤 이들은 시집을 왜 그렇게 자주 내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시를 써야 시인”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이날 아침에도 한 편의 시를 썼노라고 조용히 읽어주면서.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고 발표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저도 한때는 시가 하도 써지지 않아서 매일 시집 한 권을 읽으면서 버티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냥 죽기 살기로 외우면서 시를 많이 읽었지요. 작법도 공부하고요. 하지만 열심히 파고든 다음에는 모두 잊었습니다. 시를 쓸 때 제일 경계해야하는 마음이 아는 척, 잘난 척이에요. 오히려 모르는 만큼 느낄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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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호명을 받은 시인

1971년에 ‘대숲 아래서’로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등단한 이후 꾸준히 시작 활동을 해온 나태주 시인. 평생 시인으로 살았으나 요즘처럼 바쁠 때가 없다. 국제적인 인지도를 지닌 그룹 방탄소년단의 멤버 제이홉이 방송에서 그의 시 ‘내가 너를’을 읽으면서 어느새 외국에서도 그의 이름을 아는 이들이 생겼다. 몇 달 전에는 국민 MC 유재석이 진행하는 인기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몰아치는 관심에 들뜨기도 할 법한데 그는 한결같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시인으로서 나태주는 지금보다 예전이 더 좋았습니다. 저는 철학을 연구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살다 보니 세상을 살아가는 흐름이 있다고 느껴요. 제가 노력하고 하늘의 명을 받고 지내도 어느 때까지는 세운이 잘 맞지 않았지요. 그러다 세상이 돌고 돌아 세상과 운이 맞은 순간이 온 겁니다.”
스스로 세상으로 나아갔다기보다 세상의 부름을 받았다고 해야 할 운명의 순간이 모여 지금의 자리에 이른 시인. 이렇게 초연해질 수 있는 까닭은 한때 그가 췌장암으로 생사를 넘나든 시기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자신도 “산다는 보장이 있다면 한 번쯤 그런 시기를 겪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라고 말할 만큼, 죽음 가까이 섰던 경험이 단단한 주춧돌이 되어 삶의 중심을 잡아준다.
다만 그 과정을 통해 받아들인 숙명은 있다. 이 시대가 시인에게 바라는, 위로를 전하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힘이 닿는 한 자신을 부르는 자리라면 거리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길을 나선다. 학교에 강연하러 가서도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참석자들에게 일일이 시집에 사인을 해준다. 이름과 함께 시 한 구절까지 다정하게 쓴 시인의 사인을 받아 들면 한창 아이돌을 좋아하는 청소년들도 노시인의 열성 팬이 될 수밖에 없다. 혹시라도 그 자리에서 사인을 받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시집을 택배로 받아 시간이 남을 때마다 틈틈이 사인을 한다. 고고하게 문학관에 앉아 글만 쓰지 않고, 그렇게 세상으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행복과 위로를 ‘서비스’한다.
“제 생각에 시인은 예술가가 아니라 노동자입니다. 저도 일이 많으면 사인 한 번 하기가 힘들 때도 있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원하면 손이 아파도 계속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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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봐야 별것 없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보면서 ‘늙을 때까지 늙어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남이 아닌 나로서 살기

어느덧 여든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의 시에 비치는 정서는 젊다. 이런 감각은 타고난 것일까. 일면 그렇기도 하지만 노력하는 점도 있다. 나이와 관계없이 두루 친구가 되어 그들의 일상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표현과 경향을 접하고 배운다.
“얼마 전에는 한창 아이를 키우는 친구에게 ‘육퇴’라는 표현을 들었어요. 아시다시피 ‘육아 퇴근’이라는 말의 준말이지요. 그 말을 들으니 ‘육아 출근’은 언제일까 생각도 해보고요. 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라 아기가 깨면 바로 출근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젊은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그 세대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됩니다. 일부러 공부한다기보다 친구들이 좋다고 하니까 저도 한 번 들여다보는 겁니다.”
몇십 년 세월을 건너 친구가 된 이들 사이에 위계는 없다. 자연스레 대화하며 서로의 일상과 감정을 알아가면서 요즘의 취향과 감성을 알아간다. 덕분에 그도 방탄소년단의 노랫말을 줄줄 꿰고 있다. 어떤 곡의 무슨 대목이 좋았는지 가볍게 이야기하면서 노랫말 속에 담긴 시적 감수성에 공감하기도 한다. 그런 모든 과정이 그에게는 선순환의 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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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친구들과 대화하면서 제 생각이 그쪽으로 건너가기도 하지만, 그 친구들의 생각이 저에게 흘러오기도 합니다. 제가 위에 있고 젊은 친구들이 낮은 곳에 있어서 생각의 낙차가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 친구들을 통해 저도 많이 배웁니다.”
이 같은 태도는 교직에 있으면서 체득한 것일지도 모른다. 1963년에 공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43년 동안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해온 그는 오랜 기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아이들을 만났다. 멋진 선생이 아닐 적이 더 많았다고 고백하지만, 돌아보면 아이들을 통해 얻은 영감도 적지 않았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시 ‘풀꽃’ 역시 아이들 덕분에 쓸 수 있었다는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공주 상서초등학교 교장 시절, 매주 목요일 있던 특기 적성교육 시간에 지루해하는 아이들을 학교 정원에 데리고 나가 풀꽃 그리기를 하면서 나눈 이야기가 시가 되었다. 풀꽃을 더 잘 그리기 위해 자세히 보고, 오래 보아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풀꽃의 참모습. 그의 말을 듣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덧붙인 한마디가 바로 “너도 그렇다”였다.
교직을 내려놓은 지도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시인으로서 변함없이 세상을 위로하는 그에게 여전히 사람들은 가르침을 구한다. 덕분에 그가 주로 머무는 공주 풀꽃문학관에는 항상 사람들의 발길이 멈추지 않는다. 이곳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은 자주 이렇게 말한다. 사는 것이 고달프다고, 너무 힘이 든다고.
“요즘은 너나없이 배가 아닌 마음이 고픈 시대입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SNS를 통해 잘나가는 사람도 수시로 접하게 되니 열등감을 느끼는 순간이 많기도 하고요. 이유를 찾자면 기준을 내가 아닌 남에게 두어서 그래요.”
타인의 시선에 맞추느라 나를 잃어버릴 때 찾아오는 괴로움과 헛헛함.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마음이라는 화분에 넉넉하게 영양분을 주어야 한다. 더불어 시인이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또 하나의 위로는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다. 자신도 똑같이 힘들었지만 나이 들며 차츰 나아졌다고, 스스로 삶의 증거가 되고자 한다. 그 자체로 외롭고 힘든 이들이 인생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믿으며.
“살아봐야 별것 없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를 보면서 ‘늙을 때까지 늙어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케이 로고 이미지 주인공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