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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곱하기

방방곡곡 숨은 명소

백제고도 부여에서 즐기는 감성 여행

여행 감독이 제안하는 부여 여행법

성흥 산성 사랑 나무 (사진출처 : 부여군청)
예전 일본어 표현 중에 ‘구라다 나이(くだらない, 백제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백제 것이 아니면 시시하다. 혹은 별 볼 일 없다’라는 의미로 쓰인 말이다. 그만큼 백제에서 만든 물건이 좋았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쓰였다고 한다. 고대 일본인들은 백제 장인이 한땀 한땀 지어 만든 물건들을 최고로 쳤다. 1,500년 전 대한해협을 넘은 한류가 이미 존재했다. 고대 일본인들이 반한 백제의 매력은 무엇이었을까? 부여 여행은 시시하지 않았던, 별 볼 일 있었던 그 시절 백제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화려함을 자랑하는 신라의 수도 경주와는 느낌이 다르다. 부소산성과 낙화암, 정림사지와 능산리고분을 걸으면 마치 역사 교과서 위를 걷는 기분이 든다. 해가 기울 때 이런 곳을 걸으면 수고하고 지친 우리를 위해 의자왕이 “너희들이 나만큼 망해봤을까?”라며 어깨를 다독여주는 느낌이다. 부여 여행은 무작정 마음을 설레게 하는 여행이 아니라 생각할 거리를 슬쩍 던져주는 여행이다.

글/사진 고재열 여행 감독 (어른의 여행클럽·트래블러스랩 총괄 감독) / 사진 제공 부여군청

고재열 작가는 20년간 기자생활을 마치고, 2020년 9월 ‘재미로재미연구소’의 대표여행자 겸 여행 감독이 되었다. 현재 ‘트러블러스랩’이라는 여행자 플랫폼을 운영하며, 다양한 여행과 소모임, 강의를 기획·진행하고 있다.

젊은이들의 인기 여행지로 떠오르는 부여

삼국시대에 백제가 멸망하기 전 거북이 등껍질에 ‘백제는 보름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지금은 조금 다른 의미로, 여행지에 비유하자면 화려하고 꽉 찬 느낌의 경주가 보름달 같다면, 부여는 수수하지만 여백의 미가 있는 초승달 같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황리단길로 경주가 다시 청춘 여행지로 부상했는데 그 맞수를 꼽으라면 단연 부여다.
젊은 여행자들에게도 부여는 떠오르는 여행지다. 백제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았던 백마강은 이제 카누와 패들보드(보드 위에서 서서 노를 젓는 레포츠)를 즐기는 레포츠 명소가 되었다. 제주에서 잠깐 했다가 사라진 열기구 체험도 오직 부여에서만 할 수 있다. 젊은이들은 궁남지의 버드나무와 성흥 산성 사랑 나무 아래에서 인생 사진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부여는 젊은 여행지다. 1,500년 전 백제의 시간이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연인들의 인생 사진 명소 ‘성흥 산성 사랑 나무’

‘성흥 산성 사랑 나무’는 부여의 ‘노을 맛집’, ‘인생 사진’ 명소로 뜨는 곳이다.
이 나무는 백제 시대인 서기 501년 해발 250m 위, 돌로 쌓은 성흥 산성 정상부에 자라난 400살이 넘은 아름드리 느티나무이다. 길게 휘어져 나온 나뭇가지 모양이 특징인데, 이 가지 아래서 사진을 촬영하고 해당 사진을 반전시켜서 붙이면 완벽한 하트 모양이 완성되어 연인들의 SNS 사진 명소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배경엔 오직 하늘만 걸리기 때문에 하트 모양이 한층 또렷하다. 해 질 무렵 붉은 노을이 번지면 피사체의 윤곽은 더욱 선명해지고 주변엔 따스한 기운이 감돌아 사진의 효과는 배가된다. 성흥 산성 꼭대기에 우뚝 선 나무 아래에서 내려다 보이는 멀리 백마강 하류 일대의 모습도 아름답다. 2005년에 방영된 드라마 「서동요」에서 선화공주와 장이(서동, 훗날의 무왕)의 만남 촬영지로 ‘사랑 나무’란 별명을 얻었고 2019년 방영된 드라마 「호텔 델루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단숨에 연인들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사랑 나무 (사진출처 : 부여군청) 사랑 나무 (사진출처 : 부여군청)

젊은 공예가들의 터전이 된 옛 백제 항구마을 ‘규암’

부여 읍내의 백마강 건너편에 있는 규암마을은 옛 백제의 무역항이었다. 백제가 멸망하고도 서해안의 물산이 백마강을 통해 들어올 때 규암마을 나루터가 집산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꽤 풍요로웠던 고장이다. 근현대까지 규암마을은 무역항의 풍요로움을 잃지 않았는데 마을 길을 걸으면 화려한 과거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다.
부여의 구드래 벌판에서 나온 풍부한 농산물을 실어 날랐던 것도 규암마을 나루터였다. 그래서 이곳에는 항상 오일장이 열렸고 그것으로 부족해 삼일장이 섰을 정도다. 특히 ‘쌀전’과 ‘모시전’은 규암장의 중심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유통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는데 당시의 흔적은 마을에 남은 적산가옥 으로 확인할 수 있다.

* 적산가옥(敵産家屋)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물러나면서 국가에 귀속된 재산 가운데 일반에게 매각된 일본식 주택을 의미한다.

한때 대표적인 수학여행지였던 부여는 택시회사가 수영장을 운영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던 관광지였다. 규암마을과 읍내를 잇는 바지선에 버스를 실어나를 만큼 유동인구가 많았다. 전성기에는 극장과 백화점까지 있었던 규암마을에 요정이라 불리던 고급 술집도 60여 곳이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자온길은 이 규암마을을 관통해서 나루터로 이어지는 길인데 1,500년 전 백제의 화려함이 공예로 부활하고 있다. ‘123사비 청년 공예인 창작 클러스터 조성사업’을 통해 청년 공예인들이 규암마을로 들어왔는데 그들이 자온길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청년 공예인들이 쇠락한 골목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공방을 열고 있다. 마을의 옛 모습을 살리면서 예술성을 불어넣는 업사이클링(Up-cycling) 방식의 건축으로 빈티지 감성이 가득한 공방들이 거리를 하나둘씩 채웠다. 최근에는 마을 입구에 창작자들을 위한 아트갤러리 '아트큐브'가 들어섰는데, 창작자들이 마음껏 작업하고,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로얄페이퍼하우스&청년별장 전경 로얄페이퍼하우스&청년별장 전경
나무모리 나무모리

백제의 시간을 걷다, 부소산성에서 궁남지까지

부여에서 백제의 시간을 느끼는 일정으로는 부소산성(낙화암), 정림사지, 궁남지를 순서대로 걷는 방식을 추천한다. 백제 멸망의 장소부터 백제의 화려한 순간까지 사비의 시간을 거꾸로 걸을 수 있다. 장소 간 거리도 1km 이내로 충분히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코스다. 박물관에 갇힌 백제가 아니라 세월의 풍파를 맞으며 견뎌낸 진짜 백제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부소산성은 낙화암을 중간 기착지로 두고 내키는 대로 걸으면 된다. 부소산은 높이가 100m도 되지 않은 낮은 산이다. 산성도 그리 크지 않아 방향감각이 둔한 사람이라도 길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 길이 가파르지 않아서 조금만 오르면 평야와 강이 시야에 들어와 시원한 눈맛을 즐길 수 있다. 백제의 시간을 걷다가 낙화암에서 유유히 흐르는 백마강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힐링이 된다.
부소산성 낙화암가는길 (사진출처 : 부여군청) 부소산성 낙화암가는길 (사진출처 : 부여군청) 정림사지 5층석탑 (사진출처 : 부여군청) 정림사지 5층석탑 (사진출처 : 부여군청) 백제문화단지 백제문화단지
정림사지 5층석탑은 백제의 정한을 위한 화룡점정이다. 모든 것이 사라진 절터에서 1,500년의 세월을 버텨낸 5층 석탑을 바라보면 그저 먹먹해진다. 백제가 멸망할 때 사비성이 7일 동안 불타올랐다고 전해질 만큼 그 규모는 방대했다. 당나라 장수 소정방은 홀로 남은 5층석탑의 탑신에 ‘大唐平百濟國(대당평백제국, 당나라가 백제를 평정했다는 의미)’라고 새겨놓았다. 탑은 그 치욕스러운 역사를 품고 세월을 버텼다. 지금이야 백제의 고도로 부여가 조명받고 역사 관련 시설물들이 세워졌지만, 근대 역사에서 이 석탑은 유일하게 백제 왕궁의 영광을 증명했던 흔적이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이 적지만, 부여는 외국인, 특히 일본인들에게 인기 있는 여행지다. 부소산성이나 정림사지에서 만난 일본인 중에는 지금도 연락하는 사람이 있다. 일본인들은 부여에서 ‘고향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고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옛 부여 박물관이나 김대중 정부 시절 복각한 백제궁궐이 왜색 시비가 일었던 사건도 여기서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일본이 차용한 백제의 문화예술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의미 있는 과거 역사의 조각들을 부지불식간에 만나게 되는, 그래서 생각이 많아지는 여행지가 바로 부여이다.
그 백제 여행의 마지막 쉼표로 추천하는 곳이 바로 궁남지다. 연꽃 공원인 궁남지는 백제 산책의 마지막 코스다. 연꽃으로 유명하지만, 연꽃만 보러 가는 곳은 아니다. 도심 외곽에 넓게 조성된 공원이라 연꽃이 안 피는 계절에도 버드나무 길을 걸으면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 공원이라 어디로든 들어갈 수 있으니 혼잡한 주차장을 피해서 한적한 곳에 주차하고 걸으면 좋다. 궁남지의 연꽃 한 송이에서 백제를 읽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여행의 즐거움이다.
궁남지 궁남지

백제의 화려함을 만나고 백마강의 석양을 담다

백제를 상상만 하는 것으로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백제문화단지에 가면 된다. 백제의 궁궐과 사찰을 재현한 곳이라 백제의 화려함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 백제문화단지에 복원된 능사 5층 목탑은 백제 시대에 불교가 얼마나 화려했는지 가늠하게 해준다. 문화재가 아니라 재현한 곳이니 이곳에서는 백제를 만끽하는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넓은 궁궐 마당에서 날렵한 처마 선을 살려 하늘을 넣어 찍으면 제법 좋은 사진이 나온다. 4월부터 11월까지 매주 금, 토, 일 저녁에 야간 개장을 하는데 석양 사진을 찍고 둘러보면 좋다.
부여의 석양은 어디서든 좋다. 백제문화단지의 날렵한 처마 선을 옆으로 지는 해도 좋고 정림사지 5층 석탑 뒤로 지는 석양도 좋다. 가장 권하고 싶은 석양 명소는 백마강이다. 백마강 어디서든 좋지만, 지도를 보고 강줄기가 정서 방향으로 뻗어가는 곳에서 보는 석양은 서해의 석양 명소 못지않다. 신경림 시인의 표현을 조금 빌리자면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싶은’ 풍경이다. 케이 로고 이미지
백마강 (사진출처 : 부여군청) 백마강 (사진출처 : 부여군청)
부여로 떠나는 식도락 여행 ➊

한우국밥과 어화 밥상, 말랑한 곶감

  • 수월옥 이미지 1 수월옥 이미지 2

    수월옥(충남 부여군 규암면 수북로 37)

    빼어난 달이라는 의미의 ‘수월옥’은 진지한 무심함을 느낄 수 있는 카페다. 카페 주변에 속절없이 자라는 풀이 너저분해 건물이 잘 눈에 띄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매력적인 곳이다. 과거 고급 술집(요정)으로 운영되어 온 건물의 외관과 내부 골조는 그대로 살리면서 현대적인 예술 감성을 더해 카페로 개조했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라는 ‘수월옥’에 대한 방문자들의 리뷰가 이해될 만큼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한번 들어오면 나가고 싶지 않는 마음이 드는 묘한 매력을 지닌 공간이다.
  • 수북로1945 이미지 1 수북로1945 이미지 2 수북로1945 이미지 3

    수북로1945(충남 부여군 규암면 수북로41번길 11-50)

    천연염색 공예가 김준현 씨와 한복 디자이너 최영숙 씨가 의기투합해 만든 ‘수북로1945’는 요즘 유행하는 식물 카페다. 76년 된 한옥을 개조하고 천이 아니라 정원을 꽃과 나무로 염색했다. 가드닝 전문가는 아니지만 부지런한 식물 집사여서 정원이 빠르게 꼴을 갖췄다. 식물을 실내로도 끌어들여서 하얀 캔버스를 풍경으로 멋진 실내 조경을 만들어냈다.
    ‘수북로1945’를 돌아보고 든 생각은 ‘이 사람들 정말 부지런하구나’였다. 3년 전에 샀던 빈 건물을 3개월 동안 고쳐서 만들었다는 카페에는 곳곳에 정성이 깃들어있었다. 글램핑 텐트를 쳐서 내부를 온실 카페처럼 꾸미고, 산장 모양의 야외 카페를 짓고, 나무 위에 전망대까지 만들었다. 부여의 식자재로 개발해서 내놓은 브런치 메뉴는 방문객들에게 가장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수월옥’과 ‘수북로1945’ 외에 부여의 가볼 만한 카페로는 ‘무드빌리지’와 ‘높은댕이’를 꼽을 수 있다. ‘무드빌리지’는 한옥을 모던하게 탈바꿈한 곳으로 ‘무드슈페너’, ‘흑임자크림라떼’, ‘오렌지패션후르츠에이드’ 등이 유명하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높은댕이’는 너른 앞마당이 매력적인 곳이다. 하늘이 맑은 날 최고의 하늘 맛을 볼 수 있는데 수령이 470년이나 되는 큰 느티나무가 풍경에 방점을 찍어준다.
    부여의 대표 음식으로는 연잎밥이 포함된 한정식을 꼽을 수 있다. ‘연꽃이야기’, ‘솔내음’, ‘향우정’ 등이 연잎밥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 연잎과 연꽃은 부여 음식의 주요 모티브여서 연꽃빵도 유명하다. 연잎밥 외에 백제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부여 음식으로 ‘서동한우’의 숙성육과 시골통닭의 다양한 닭요리를 꼽을 수 있다.
    연잎밥 (사진출처 : 부여군청)
부여로 떠나는 식도락 여행 ➋

혀끝으로 느끼는 백제, 연잎밥과 한우, 그리고 통닭

  • 서동한우 이미지 1 서동한우 이미지 2 서동한우 이미지 3

    서동한우(본점: 충남 부여군 부여읍 성왕로 256)

    한우 숙성육의 본좌라 할 수 있는 ‘서동한우’는 고기를 맛있게 먹기 위한 깊은 고민과 노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동안 소고기는 마블링을 중심으로 등급을 매겼는데 서동한우는 이에 반기를 들고 숙성을 통해 맛을 높였다. 좋은 로스팅이 커피맛을 더하듯 숙성으로 소고기 맛을 풍부하게 한 것이다. 드라이에이징(건식 숙성)으로 지방 맛이 아니라 고기 냄새를 배가해 사람들의 입맛을 이끌었다. 그 마법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소고기를 부위별로만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숙성한 기간에 따라 가격을 달리하는데 어떤 소고기를 어떻게 정형해서 어떻게 구워야 맛있는지를 주인장이 직접 설명해준다.
  • 시골통닭 이미지

    시골통닭(충남 부여군 부여읍 중앙로5번길 14-9)

    부여중앙시장 입구에 있는 시골통닭은 가히 ‘닭의 이데아’로 꼽을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옛날 통닭 맛을 제대로 구현해주었는데 무엇보다 재료가 되는 닭이 신선하다. 튀김옷이나 기름에도 신경을 썼는데 일단 생각보다 닭이 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찌든 기름 냄새도 없고 눅눅함 없이 기분 좋게 구수하다.
    시골통닭에서 닭요리를 코스로 즐겨보는 것도 추천한다. 옛날통닭, 파닭, 백숙, 모래집, 무뼈닭발, 닭죽, 삼계탕, 닭볶음탕, 찜닭 등 닭에 관한 거의 모든 메뉴가 모두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