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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들어온 뇌과학
뇌를 이해하면 교육이 달라진다

前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임상감정인지기능연구소 연구원·㈜캐럿글로벌 대표
노상충 박사
사회가 급변하면서 ‘공부로 성공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렇다고 공부의 중요성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배우고 익히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천편일률적으로 지식을 주입했던 과거의 학습 경험이 괜히 발목을 잡는다.
학습자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이를 끌어낼 교수법은 없을까. 노상충 박사는 그 실마리를 뇌의 메커니즘에서 찾았다.

정라희 / 사진 이용기

뇌를 통해 인간을 탐색하다

성인의 뇌 무게는 1,250g에서 1,400g 내외. 몸에서 차지하는 비율로는 대략 2.5%이지만, 단연코 뇌는 동물의 신경계를 통합하는 핵심 중추에 해당한다. 실제로 사람의 뇌에서는 움직이고 생각하고 느끼는 많은 일이 이루어진다. 노상충 박사가 이토록 중요한 ‘뇌’를 연구하게 된 출발점은 심리학이었다.
“심리학을 깊이 연구하다 보면 인간은 결국 ‘생물학적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 핵심에는 뇌가 있고요. 결국 '인간이 무엇인가?'에 관한 해답은 뇌의 탐구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인지신경과학에 관심을 두고 신경심리학을 파고들기 시작했지요.”
오래전 인류는 인간의 마음이 심장에 있다고 믿었다. 그러다 근세에 들어서면서 인간을 과학적으로 탐구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생겼고, 이에 따라 뇌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하지만 19세기에 유행한 골상학은 사람의 성격이나 능력을 두개골의 형태로 가늠하는 등 여러모로 과학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이를 기점으로 뇌의 구조 등이 밝혀지면서 뇌에 대한 연구가 점차 발전하기 시작했다.
“고대 그리스 시대 철학자들도 인간의 뇌에 관심을 두고 있었지만, 과학적인 관점에서 뇌와 관련한 지식을 축적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엄밀히 말해 현대에 이르러서도 뇌과학은 시작단계에 불과했어요. 하지만 뇌파검사(EEG, electroencephalography)나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functional Magnetic Resonance Imaging) 등 뇌의 역동적인 정보를 획득하고 분석하는 도구들이 등장하면서 최근 빠르게 진전하고 있습니다.”
노상충 박사는 "현대의 뇌과학 연구는 단순히 인간의 호기심을 해결하기 위한 일은 아닙니다. 그 작동 기제를 알면 훨씬 더 효과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죠."라고 말하며, 뇌 과학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 강조했다.

학습을 이끄는 뇌의 메커니즘

신경심리학에서 노상충 박사가 주로 파고든 분야는 뇌파의 비대칭 연구였다. 얼굴의 왼쪽과 오른쪽의 생김새가 비대칭이듯, 뇌파도 좌우가 비대칭이라는 것. 뇌파의 특성은 우울증이나 ADHD 등 임상적 소인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그는 비대칭 특성을 집중해서 분석했다. 몇 해 전까지 인제대학교 일산백병원 임상감정인지기능연구소에 몸담았던 까닭도 연구 결과를 임상에 적용해보고 싶은 바람에서였다.
“뇌의 특징을 한마디로 압축해서 이야기하면 ‘Learning Brain’, 즉 학습하는 뇌입니다. 뇌는 인간이 생존하기 위해 존재하고, 끊임없는 경험을 통해서 학습하며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스스로 조직화합니다.”
노상충 박사는 “뇌과학에서 밝힌 뇌의 비밀은 아직 판도라 상자의 덮개를 여는 초기 단계”라고 전한다. 하지만 이를 적용 관점에서 살펴보면 의미가 매우 크다. 최근에는 의학과 공학, 생리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학제를 넘나드는 융·복합적 시도들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추세다. 그는 그중에서도 뇌과학의 효과를 가장 크게 볼 수 있는 분야가 교육이라고 보고 있다.
“뇌의 작동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훨씬 다양한 교육적 접근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학습은 오감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뉴런이라는 신경 체계를 통해 기억으로 형성하는 것인데요. 학습하며 받아들인 정보들은 인접 영역에 있는 정보와 상호교류를 반복하면서 기억으로 강화됩니다. 최근에는 기억들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고 계속 변화한다는 연구들이 나오고 있어요. 이 같은 연구는 유연하게 변화하는 뉴런세포의 특성인 가소성(plasticity)*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 가소성은 환경의 변화에 따라 그 구조와 기능을 바꾸는 신경계의 능력을 의미합니다.

“우리 뇌는 부분적으로 기능하지 않고, 전뇌(Whole brain)를 통합적으로 사용하고 최적화합니다. 뇌는 그 자체로 학습할 수 있는 완전체입니다. 환경과 맥락, 오감을 통해 역동적으로 작동할 때 제일 효과가 높아요. 따라서 뇌의 이런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 교수자의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 이미지 1 콘퍼런스를 진행하고 있는 노상충 박사 주인공 이미지 2

기억력을 잠식하고 학습을 방해하는 스트레스

노 박사는 최근 교수(teaching) 중심에서 학습(learning) 중심으로 교육의 추세가 변화하고 있으며 교수 중심이 지식의 전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학습자 중심은 개별적 경험에 초점이 맞추어진다고 설명한다.
“학습자 중심의 학습은 긍정적 정서작용을 강화합니다. 우리가 학습활동을 하면서 보고, 듣고, 행하는 자극들은 각기 다른 정보의 형태로 뇌의 시상을 거쳐 바로 편도체로 전달되는 정서 회로를 거치거나, 시상에서 대뇌피질로 향하는 인지 회로를 거치게 되죠. 학습활동 중에 형성된 긍정적 정서 작용은 인지 회로를 활성화함으로써 인지기능의 학습효과를 증대시킬 수 있게 됩니다.”
반면에 스트레스와 같이 부정적 정서가 강화된 상태에서 주입되는 정보는 바로 정서 회로를 타고 편도체로 향하는데, 이러한 상황이 지속할 때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의 기능이 위축되기 시작하고, 학습과 기억에서 어려움이 생긴다고 한다.
뇌가 편안할 때 학습능력도 높아지며 음악이나 호흡조절 등과 같이 심신을 이완시키는 기법들이 학습활동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학습자가 학습활동 중에 압박감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적절한 목표설정과 진도관리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 대뇌 피질 부분은 거의 활성화되지 않지만 이완 상태일 때는 대뇌 피질이 전체적으로 활성화되어 인지기능이 향상되는 것이다.

뇌과학과 교육의 접점은 결국, ‘사람’

한때 사람들은 뇌를 인지작용을 위한 블랙박스 혹은 컴퓨터처럼 여겼다. 하지만 뇌에서는 정서와 운동기능이 동시에 상호작용한다. 그래서 그는 뇌에 친화적인 교육 역시 “인지와 정서, 신체 감각을 모두 활용해야 한다”고 정리한다. 더불어 수업 시간에 ‘무엇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명확한 목표와 맥락적 의미가 결합할 때 뇌는 더욱더 활성화된다. 가만히 앉아서 명시적인 지식을 주입하는 교육 방식은 뇌 관점에서 보면 효율이 매우 떨어지는 접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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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교수자들이 뇌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이를 교수법에 적용한다면, 학습자 개개인의 역량을 극대화하는 완전 교육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그는 뇌를 기반으로 한 ‘가속학습법(Accelerated Learning)’을 자신의 교수 방법론에 접목했다.
가속학습법은 학습내용에 의미를 부여하여 더 오래 기억되게 하는 이론으로 1970년대에 불가리아의 라자노프 박사에 의해 정립되었다. 학습자들이 더 효과적으로 재미있게, 빠르게 학습할 수 있도록 교육 공간 내의 음악과 색상, 환경, 분위기, 언어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인 학습을 도와줌으로써 학습속도를 높일 수 있다는 이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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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교육 현장이 혼란에 빠지기도 했지만, 노상충 박사는 오히려 지금이 학생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교육을 시도할 좋은 기회라고 말한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아이들은 이미 원격 교육에 적응했다. 또한 우리의 교육 환경도 달라졌다. 교사의 전문성은 향상되었고, 에듀테크 시스템을 활용해 완전학습을 노려볼만 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들과 일대일 및 소그룹 맞춤형 교육도 시도해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실마리는 교사와 학생 사이에 형성된 ‘신뢰’와 이를 근간으로 한 ‘긍정 정서’이다. 학습하는 것은 집중적으로 인지 회로를 활성화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 효과성은 철저히 동기나 신뢰, 안정감 같은 긍정 정서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문득 자신을 지지해주는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에 용기를 얻고 달라졌다는 사람들의 일화가 스쳐 간다. 과학으로 접근해도 이를 교육에 접목하는 이들은 결국 사람. 어쩌면 뇌과학과 교육의 만남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지 않을까. 케이 로고 이미지
뇌의 메커니즘을 잘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이 교수자의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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