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내일이 무슨 날이게요?”
기저귀 갈아주고 우유 먹이며 애지중지 키운 손녀가 잔뜩 미소를 머금고 묻는다. 넌지시 알려주는 손녀의 눈빛에서 며칠 전에도 기억했던
손녀의 생일을 잊을 뻔했음에 뜨끔했다. 이런 증상은 몇 해 전부터 서서히 찾아왔다. 감명 깊어 눈물 흘리던 영화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머리를
쥐어짜고, 함께 근무했던 동료들이 반갑다고 끌어안는 데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 민망하기도 하다. 기억의 감퇴는 여러 가지 요인이있지만,
노화 때문이라고 하니 성경도 쓰고, 책과 신문도 읽으며 걷기 운동도 열심히 해 조금이라도 망각의 속도를 늦추려 노력하고 있다.
50년 전, 햇병아리 교사 시절이었다. 6학년 담임을 맡고 걱정이 되어 꼬박 밤을 새운 날이 많았다.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는 때여서 가르치는
일이 부담되었고, 제자들과 겨우 열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 그들 앞에 서기가 겁이 났다.
150cm가 조금 넘는 나보다 키가 큰 아이가 많았고, 시골에서 밥도 짓고 빨래도 하며 농사일로 바쁜 부모님을 돕는, 제법 성숙한 갈래머리 아이도
있었지만 그 속은 여전히 순박하고 거짓 없는 착한 아이들이었다. 아무래도 그들에게 나는 담임교사이기보다는 언니 같은 존재였다. 수업 시간엔
엄격했지만 수업 시간 외엔 그들을 동생처럼 대해주었다. 가르치는 시간 외에 초등학교 마지막 해의 아름다운 추억을 안겨주기 위해 다양한 체험
활동을 시도했고, 아이들은 나를 언니처럼, 누나처럼 잘 따라주었다.
수업이 없는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이면 내 자취방은 아이들 웃음소리로 왁자글 시끄러웠다. 책도 읽고, 노래도 부르고 함께 어울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아이들을 저녁 늦게야 억지로 집으로 돌려보냈다. 가끔 부모님의 허락을 받았다며 좁은 자취방에서 함께 조잘대다 잠이 드는 아이들도 있었다.
아침이면 아이들과 함께 동네 골목 청소를 하며 마을 어른들의 칭송을 받았고, 야트막한 동산의 해솔길을 함께 걸으며 아름다운 추억을 쌓았다.
부모님들께서는 철부지 아이들이 선생님을 귀찮게 한다며 걱정하셨지만, 그해 1년은 아이들로 인해 행복했다.
심한 감기 몸살로 앓아누워 출근을 못 하던 날이었다. 옆 반 선생님의 도움으로 수업을 마치자마자 달려온 아이들은 좁은 자취방에 한꺼번에 들어오지
못해 줄을 서서 대기했다가 차례로 들어와 머리를 만져주고 물수건을 대주며 간호를 해주었다. 몇몇 아이는 집에 다녀 온다고 하더니 부엌에서 북엇국을
끓인다고 야단법석을 피웠다. 한참 후 북엇국을 쟁반에 받쳐 들고 들어온 아이들 때문에 나는 눈시울이 뜨거웠다. 국물엔 기름이 둥둥 뜨고, 무는 채
익지도 않았으며 간도 맞지 않는 북엇국을 한술 뜨는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내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정성과 사랑을 생각하며 북엇국
한 그릇을 다 먹었다.
어린 나이에 어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을까? 선생님을 위해 어른도 힘든 북엇국을 연탄불에 끓이느라 힘들었을 아이들 덕분에 몸살을 잘 이겨냈듯,
햇병아리 교사의 어려움도 착한 아이들 덕분에 잘 이겨낼 수 있었다. 지금도 북엇국을 먹을 때면 그때 제자들이 생각난다. 교직 생활 42년 동안 힘든
일도 보람찬 일도 많았지만, 평생 잊히지 않는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다.
정년퇴임을 한 지 오래지만 아직도 가방을 멘 초등학생들이 눈에 띄면 나는 교사로 돌아간다. 학교에 이어 학원을 전전하며 공부에 지쳐 보이는 아이들,
어른보다 더 진하게 화장을 한 초등학생들의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짠하고 신나게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그 옛날 순수하고 해맑던 제자들이 떠오른다.
세월이 많은 것을 변화시켰지만 공부에 찌들고 너무 일찍 어른을 닮아버려 순수함을 잃어가는 아이들이 안타깝다.
요즘도 감기 몸살을 앓고 있는 담임교사에게 북엇국을 끓여주겠다는 자녀들이 있다면 허락하는 부모가 있을까? 아마도 교사는 학부모와 언론의
뭇매를 맞을 것이다.
일부 교사의 탈선행위로 스승에 대한 믿음과 존경심이 사라지고, 오직 대학에만 올인하는 학력 위주의 교육은 아이들을 사교육으로 내몰아 그들도 지치고
피곤하다. 학부모들 역시 자녀가 사교육 열풍에 편승하지 않으면 낙오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경제적 부담으로 등이 휜다. 이 모든 것은 아이들이
즐거운 학교생활에 장애가 되어 ‘사제지정(師弟之情)’의 아름다운 모습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라는
말이 가치를 잃은 지 오래다. 천직으로 부러워하던 교사의 직업도 이젠 차츰 선호도에서 밀리고, 교직을 떠나는 교사가 많아진다고 한다.평생을
교단에 머물렀던 전직 교사로서 교사, 학생, 학부모의 신뢰를 바탕으로 즐거운 학교, 존경받는 선생님, 사랑스러운 제자와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자주 오르내리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나는 아직도 스물두 살 햇병아리 교사 시절을 잊지 못하는데, 어느새 단발머리 제자들이 환갑을 맞아 함께 늙어가니 세월이 많이 흘렀음을 인정한다.
지금도 그때의 제자들을 만나면 추억 속 북엇국 이야기로 그리움을 달래며 ‘사제지정’을 나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