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우인재 여행작가 / 사진 제공 곡성군청
형형색색 장미의 천국, 섬진강 기차마을
남도의 젖줄 섬진강이 적시는 여러 고을 중에서도 이 계절에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이 바로 곡성이다.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덕에 아름다운 계곡이 유난히 많아 계곡이 성곽을 이루고 있는 듯 보여서일까? 곡성(谷城)이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이 고장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일 것이다. 이 계절에 곡성에서 섬진강을 따라 드라이브를 즐기거나 돼지불고기, 참게 등을 맛보는 식도락 말고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 의례가 하나 있다. 곡성읍 내 바로 옆에 있는 섬진강 기차마을에서 오월의 꽃 ‘장미’를 감상하는 일이 그것이다.향수 가득 안고 달리는 증기기관차
물론 이 마을의 본래 주인인 ‘기차’와 만나지 않는다면 곡성 세계장미축제를 절반만 즐긴 셈이라고 보아야 한다. 뾰족한 박공지붕을 인 옛 곡성역(등록문화재 제122호)은 근대 철도 역사의 형태를 그대로 간직해 대합실로 들어서는 순간 1930년대로 시간 여행을 떠나게 된다. 섬진강 기차마을은 폐선된 옛 전라선 철길을 재활용한 모범 사례로 꼽힌다. 그 옛날 증기기관차의 외형을 쏙 빼닮은 관광 열차가 운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섬진강 기차마을 개장과 함께 운행을 시작한 관광 열차는 곡성군이 12억 원을 들여 제작한 추억 속 ‘미카 129호’다. 열차는 승객들에게 오월의 햇살이 내려앉은 섬진강 변을 달리는 진기한 경험을 선사한다.신비로운 도깨비 전설을 찾아서
아이와 함께라면 섬진강 물줄기 따라 전해지는 도깨비 전설을 들려주는 것은 어떨까. 조선조 태종 임금의 심복이었다는 마천목 장군과 도깨비살 전설이 그것. 돌을 쌓아 강물을 막은 뒤 나뭇가지를 촘촘하게 박아 물고기를 잡는 전통 고기잡이 방법을 가리켜 ‘어살’이라고 한다. 그러나 물살이 거센 강물에 어살을 조성하는 일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 그옛날 마천목 장군이 어머니에게 물고기를 잡아드리기 위해 섬진강에 나왔다가 푸른빛 돌을 주워 왔는데, 알고 보니 그돌이 도깨비 두목이었다고 한다. 도깨비들이 장군을 찾아와 푸른 돌을 돌려준다면 어떤 소원이든 들어주겠다고 하자, 장군은 어살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때 도깨비들이 만들어준 어살의 흔적이 아직도 섬진강에 남아 있다는 전설은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계곡이 아름다운 고찰과 밤하늘의 별빛
곡성군은 지리산 자락의 고장 구례, 하동과 이웃하고 있다. 두 고장이 보유한 화엄사와 쌍계사라는 명찰의 그늘에 가려 덜 알려졌지만 곡성에도 신라 시대 창건된 태안사와 계곡이 아름다운 도림사라는 훌륭한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두 사찰 모두 진입로를 따라 울창한 숲길이 이어지는 물 맑은 계곡을 품고 있어 한낮의 따가운 햇살을 피하기에 좋다. 태안사 답사의 백미는 능파각이다. 산문(山門)과 일주문(一柱門) 사이에 위치한 능파각(凌波閣)은 암반을 따라 맑은 계수가 흐르는 태안사계곡에 걸터앉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태안사의 금강문인 이 다리는 맞배지붕을 얹은 정면 한 칸, 측면 세 칸의 누각을 겸하고 있으며 ‘미인의 가볍고 아름다운 걸음걸이’를 뜻하는 이름처럼 우아한 자태를 자랑한다.불향이 살아 있네! 흑돼지 숯불구이
곡성은 예로부터 토종 흑돼지가 맛있기로 이름난 고장이다. 바로 이 토종흑돼지에 갖은양념을 버무려 재운 고기를 숯불에 구워내는 것이 곡성군석곡면의 별미 흑돼지 숯불구이라고 한다. 과거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만 해도 석곡면은 사통팔달 교통의 요충지였다. 그 시절 여객 버스 수십대와 200여 대가 넘는 물류 트럭이 머물던 석곡면은 자연스럽게 운전기사와 승객이 모이던 장소. 이 일대 최고 인기 메뉴였던 흑돼지 숯불구이는 기름이 적고 육질이 부드러워 당시 하루 800상이 넘는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하기도 했다. 석곡식당(061-362-3133)과 석곡돼지한마리(061-362-3077) 등이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귀한 몸 은어
1급수에 해당하는 청정 수역에서만 서식하는 은어는 바위틈 이끼만 먹고 사는 어종이다. 지금은 개체 수가 줄어 보기 어려워졌지만 한때는 반짝이는 은어 비늘 때문에 섬진강이 은빛으로 빛났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전해 온다. 대충 그물로 뜨거나 나뭇가지로 내려쳐도 은어가 잡혔다고 하니 은어의 천국이었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예로부터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던 귀한 먹거리의 명성이 허명은 아닌 것. 회와 구이, 튀김 등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해 먹는 은어는 비타민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피로 해소와 눈 건강에 좋다고 알려졌으며, 「동의보감」에는 위를 튼튼하게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참게탕 맛집에서 은어 요리도 맛볼 수 있다.달콤한 속살, 매콤한 국물이 매력적인 참게탕
은어와 함께 곡성을 대표하는 먹거리는 참게다. 참게가 귀한 대접을 받는 이유는 오염되지 않은 청정수에서만 살아가기 때문. 물 맑은 섬진강에서 잡아 올린 참게는 주로 얼큰한 탕으로 먹는다. 참게는 민물과 짠물이 만나는 강 하구로 내려가 산란을 하는데, 알에서 깨어난 어린 참게들은 본능적으로 어미가 깨어난 상류를 향해 거슬러 오른다고. 보통 우거지와 들깨를 갈아 넣어 끓이는데, 달달한 속살과 얼큰한 국물의 상반된 맛이 어우러져 곡성의 대표 먹거리로 자리매김했다. 새수궁가든(061-363-4633), 사계절횟집(061-362-1933)이 참게탕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