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교사가 곡을 짓고 시인 남편이 글을 붙인 동심의 노래
“소리는 새콤새콤 새콤하게, 글은 달콤 달콤하게….” 김애경 교육장의 대표곡 ‘소리는 새콤 글은 달콤’의 한 구절이다.
곡은 김애경 교육장이 짓고, 노랫말은 당시 중학교 국어교사였던 배우자 박수진 시인이 붙였다. 1993년 ‘눈 내린 마을’이
제11회 MBC 창작동요제에서 입상하며 동요 작곡가로 데뷔한 김애경 교육장은 만 30년 동안 ‘우리 그렇게 살자’,
‘꽃처럼 하얗게’, ‘정다운 이웃’, ‘나비 가는 길’, ‘잠자리’등 300여 곡을 발표한 현역이다.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린 곡도 여럿이다. 교사 부부가 함께 고민하며 완성한 동요는 단어 하나, 소리 하나에도 부르는 이와 듣는 이를 생각한
흔적이 묻어난다.
“글로는 똑같이 ‘눈’으로 쓰더라도 장모음으로 읽을 때와 단모음으로 읽을 때의 뜻이 다르잖아요. 한편으로 ‘땅’이라는
단어는 음악에서는 저음에 두어야 의미 전달이 분명해지고요. 흘러가듯 노래를 들어도 어떤 내용인지는 알 수 있죠.
하지만 노랫말과 가락이 적절하게 맺어질 때 전달력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남편이 작사를 하다 보니 곡에 대한 논의를
자주, 깊이 합니다.”
오랜 시간 세공하듯 매만져 내놓은 동요도 있지만, 몇 날 며칠 입으로 노랫말을 되뇌다 순간적 영감으로 완성한 것도
있다. 음악을 먼저 만들어 갈 때도 있지만, 가끔은 선물처럼 받아 든 노랫말에 곡을 따라 붙이기도 한다. 특히 “친구야
넌 보았니 살랑대는 초록 바람으로~”로 시작하는 ‘우리 그렇게 살자’는 김애경 교육장이 그려놓은 심상을 박수진 시인이
글로 완성하고 다시 곡을 붙였다.
“한번은 남편에게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느끼면서 예쁘게 성장하고 싶은 바람을 담은 노랫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어요.
당시 남편이 중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무렵 학교에서 대공원으로 봄소풍을 간 거예요. 새잎이 돋아나고 꽃 피는
시기에 아름다운 공원으로 가니 노랫말이 딱 떠올랐나 봐요. 그날 집에 와서 ‘선물’이라며 노랫말을 건네주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상상하던 그대로였죠. 이렇게 좋은 노랫말을 받았는데 곡을 더 잘 써야 한다는 생각에 한동안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날부터 머릿속으로 시 낭송하듯 되뇌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15분 만에 멜로디가 나오더라고요.
가락과 리듬, 멜로디가 몸속에 녹아있다 한 번에 터져 나온 거죠. 덕분에 지금도 가장 사랑받는 곡이 되었습니다.”
동요 작곡가가 된 초등학교 교사
1983년에 초등학교 교사로 교직에 입문한 김애경 교육장은 어떻게 동요 작곡가가 되었을까? 처음에는 육아를 시작하며 ‘우리 아이와 함께
부를 노래를 만들고 싶다’는 작은 소망이 계기였다. 때마침 KBS 창작동요대회가 열렸다. 교대에 다니던 시절에 심화 전공으로 음악을 했지만,
정식으로 작곡을 배운 적은 없었다. 하지만 첫 출품작 ‘산 이슬비’가 예선에 선발되면서 가능성을 보았다.
고향의 봄 창작동요제-대상 수상 장면
“1993년에 MBC 창작동요제 본선에 ‘눈 내린 마을’로 진출했을 때엔 오케스트라 지휘자분이 벌써 노랫말을 다 외우고 계신 거예요. 그러면서
‘난 이 노래가 참 좋다’라고 말씀해 주셨죠.”
한자리에서 한 번에 곡을 선보여야 하는 대회 특성상, 가창자의 실력이나 담력도 무대에서는 중요했다. 본선 진출에 만족하며 초보 작곡가로서
조금씩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쌓은 경험이 어느새 자산이 되었다.스스로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우리나라 동요계의
대부로 꼽히는 이수인 작곡가를 찾아가 정식으로 작곡법을 배웠다.
“2년 동안 선생님께 사사하면서 곡이 조금씩 깊어졌어요. 이전에는 대학 때 배운 것과 혼자 익힌 화성법이 전부였는데, 아무래도 좋은 곡을
쓰려면 전문성이 필요하더라고요.”
제대로 공부하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면서 대회 성적도 좋아졌다. 그렇게 1995년 제1회 KBS 환경사랑창작동요제에서 ‘우리 작은 손으로’로
대상과 작사상을 수상하고, 이후 전국 규모 창작동요대회에서 열 차례 넘는 대상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방송 프로그램 음악 작업과 가곡으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혀 나갔다.
동요를 부르며 용기와 희망을 얻는 아이들
세대를 초월해 같은 동요를 부르며 공감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 아이들에게는 동요보다 가요가 더 가까이 있는 듯 보인다. 김애경 교육장이
작곡가로 데뷔한 1990년대만 해도 방송사마다 창작동요대회가 열렸고, 상을 받은 곡은 TV와 라디오를 통해 여기저기 울려 퍼졌다. 하지만
프로그램 시청 환경이 달라지고, 성인 위주 프로그램이 넘쳐나면서 각 방송사가 주최하던 창작동요대회가 차례차례 폐지 수순을 밟았고,
지금은 KBS 창작동요대회와 각 지역 창작동요대회가 맥을 잇고 있다.
대한민국동요대상 시상식
“요즘 예전보다 동요를 많이 부르지 않게 된 데에는 미디어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각 방송사들이 시청률과는 별개로 창작동요대회의
부활에 대해 고민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가요가 외국에서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역할을 하지만, 가요의 노랫말은 정서 순화나
희망, 꿈을 노래하기보다 한탄 조나 애조가 더 많아요. 어린이 정서에 맞지 않기도 하고요. 그런데 동요는 희망적이면서 아이들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노랫말로 구성되어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맑고 순수한 노랫말에 멜로디를 붙인곡은 당연히 아이들에게 정서적으로
도움이 됩니다. 인성교육 차원에서도 중요하고요.”
KBS 스승찾기 프로그램 출연
그 역시 어린 시절에 동요를 부르며 용기를 얻은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음악 시간에 담임 선생님의 지명으로 친구들 앞에서 난생처음
큰 소리로 노래한 기억은 내성적이었던 그에게 ‘교사’의 꿈을 심어주었다.
2015년, 서울남정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할 때는 ‘교장과 함께하는 동요 교실’을 열어 직접 학급을 돌며 아이들과 동요를 부르고, 중창부를
만들어 지도하기도 했다. 동요 교육을 하고 싶은 후배 교사들이 제자를 자처하며 손을 보탰다. 열정적인 교사와 아이들이 만난 덕에 중창부를
결성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청개구리’라는 노래로 전국동요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이후로는 학교 안에서 자연스레 동요 붐이 일었다.
비슷한 효과는 이미 다른 학교에서도 반복해 일어났다. 학교에서 동요를 불러본 아이들은 자연스레 동요가 주는 순수한 매력에 빠져든다.
동요는 아이들의 마음을 살찌우는 최고 보약
학교에서 동요를 배우고 부르는 교육적 효과는 더 있다. 김애경 교육장은 교사들이 동요를 지도할 때 녹음으로 들려주기보다 교사가 소리 내 선창하라고
권유한다. 잘 부르면 잘 부르는 대로, 설령 노래 솜씨가 뛰어나지 않더라도 아이들에게 의욕을 심어주는 까닭이다.
“좋은 노랫말을 만나면 신이 나서 곡을 쓰면서 저도 성장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아이들에게 동요를 가르쳐주고 함께 부르는 시간은 아이들의 마음을
살찌우고 건강하게 만드는 보약입니다.”
어린이안전창작동요제 대상 수상
2022년 3월 서울동부교육지원청에 부임한 김애경 교육장은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난 지금 동요 부르기가 더욱더 중요해졌다고 생각한다.
3년이나 이어진 사회적 거리 두기로 마음의 치유가 필요한 아이들이 늘어난 까닭이다. 이를 위해 그는 교육청 차원에서 마음 치유와 관련한
지원단을 꾸리고 각 학교를 지원할 계획이다. 또 동대문구와 중랑구 등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각 학교가 참여할 수 있는 동요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는 바탕도 마련했다. 특히 올해는 어린이날 행사 개최 100주년을 맞은 해다. 1922년 어린이날을 선포한 방정환 선생은
이듬해인 1923년에 첫 번째 어린이날 행사를 열었다. 그러고는 1924년 우리나라 창작동요의 효시인 ‘반달’과 ‘설날’이 발표되었다.
김애경 교육장이 몸담고 있는 (사)한국동요문화협회에서는 동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창작동요 100년사」를 집필하고 있는데,
그는 이 프로젝트에 주요 집필자로 참여하고 있다.
김애경 교육장은 교육장 임기가 끝나고 일선 학교로 돌아가면 다시금 현장에서의 동요 교육에 나설 생각이다. 동요교육에 대한 그의
철학은 확고하다. 어린 시절 동요를 부르는 일은 동심을 간직할 마음의 고향을 지키는 일이다.
“동요 같은 어린이를 위한 문화를 건너뛰고 바로 어른 문화를 받아들이면, 아이들이 나중에 성인이 되었을 때 돌아갈 마음의 고향이
사라져요. 경쟁적 환경에서 성장하다 보면 왜 어려움이 없겠어요. 인생의 부침을 겪을 때 마음을 치유할수 있는 안식처가 필요합니다.”
아이들을 위한 동요를 만들고 아이들과 함께 동요를 부르며 40년을 지내온 김애경 교육장에게 교사는 직업이 아닌 소명이다. 그는
“다시 인생을 살더라도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교사는 아이들의 순수한 꿈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누고
키워줄 수 있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천직인 까닭이다.
교육공로 대통령 표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