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 좋은 생각」은 급격히 변화하는 교육 환경 속에서 삶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를 제시하는
멘토 회원들에게 귀 기울이고 교육 철학과 인생의 가치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눠보는 코너입니다.
종이접기로 사랑을 전합니다 교육자라서 행복한 코딱지들의 영원한 선생님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 김영만 원장
(마산대학교 미디어콘텐츠과 초빙교수)
어른이다. 동시에 아이다. 김영만 원장은 어느 한 편에 세울 수 없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모두가 그의 편이고,
팬이다. 납작한 텔레비전 화면 앞에서 만났지만, 김영만 원장은 늘 우리 마음속에 3D로 살아있다. 그가 만드는 종이
작품처럼 말이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평생을 사는 것, 또 한평생 종이접기만을 바라보고 살아온 것, 김영만 원장은
이 모든 것이 ‘사랑’ 덕분이라고 말한다.
글
이성미 /
사진
김수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종이접기 선생님으로 변신한 그래픽 디자이너
어린 시절, 나를 부르는 종이접기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면 색종이와 가위부터 찾기 시작했다. TV 앞에 앉아 종이를 만지면서, 아저씨의
손끝에서 탄생한 새나 용, 도깨비와 내 손에 있는 것을 번갈아 바라보기도 했다. 서로 영 다른 모습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어떤
모습을 했건 색종이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친구였다.
색종이와 친구를 맺게 한 주선자는 바로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원장이었다. 1988년 KBS1 ‘TV 유치원 하나둘셋’을 시작으로, KBS2
‘혼자서도 잘해요’, EBS ‘딩동댕 유치원’ 등을 거쳐 2000년대 초반까지 김영만 원장은 방송을 통해 다양한 종이접기 방법을 소개했다.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하차한 후에도 방송, 강연 등을 통해 계속 종이 조형을 전파했다. 현재는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 원장, 마산대학교
미디어콘텐츠과 초빙교수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반평생 사랑하는 색종이를 실컷 만지고 있으니 요즘 말로 ‘덕업일치’, 좋아하는 일과
직업이 일치한 셈이다. 그러나 40년 전 김영만 원장이 처음 종이접기를 접했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종이접기 불모지였다.
김영만 원장은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한 후 대기업에서 그래픽디자이너로 일했다. 퇴사 후 사업을 시작했으나 뜻대로 풀리지
않아 일본에 건너가면서, 그의 인생은 양면 색종이 뒤집듯 바뀌었다. 당시 일본 아이들은 능숙하게 종이접기를 할 줄 알았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와 교육 현장을 살펴보니 일본과는 아주 달랐다. 유치원, 초등학교에서는 대부분 회화만을 가르쳤고, 아이들이 종이를
가지고 접는다는 것이 고작 딱지 정도였다. 이래선 안 되겠다고 생각한 김영만 원장은 종이접기 연구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스케치북은
이차원이고, 종이접기는 삼차원이에요. 평면에서 입체를 만들어 내는 기술이 종이접기죠. 거기서 더 발전하면 정보통신, 과학기술 같은
고차원의 영역으로 넘어갈수 있고요. 그런데 어디에도 아이들에게 종이접기를 가르쳐주는 곳이 없더군요. 왜 그런지 선생님들에게 여쭤보니
‘아는 것이 없어 가르칠 수가 없다’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그때부터 종이 조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영만 원장은 종이접기와 다른 재료를 결합해 3차원 물체를 만드는 종이 조형을 함께 연구했다. 그러고는 초등학교 미술교사로 취직해
본격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웬 중년의 남자 교사가 학생들에게 종이접기를 가르친다’라는 소문은 금세 퍼졌다.
아침 방송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TV 유치원 하나둘셋’ 제작진에게서 “종이접기 코너를 함께해 보자”라고 제안이 왔다. 그러나 방송은
기회이면서 동시에 위기였다.
“방송 초반에는 ‘중년 아저씨가 종이접기 하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는 항의도 많이 받았어요. 저도 늘 새로운 종이 조형을 선보여야 하니
부담이 컸고요. 매번 쫓기듯 아이디어를 짜냈죠. 덕분에 목 디스크가 오고, 우울증도 찾아왔습니다. 심신이 지쳤죠. 하지만 어려운 시기를
지나자 놀랍게도 경지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 후로는 방송 주제만 듣고도 ‘아!’ 하고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니까요.”
김영만 원장의 손이 닿는 곳에는 어디든 종이가 있었다. 운전을 하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종이를 접었다. 수만 점의
새로운 작품이 탄생했다. 그 사이 코딱지들도 무럭무럭 성장해 갔다.
우리 코딱지들이 어른이 되었군요! 잘했어요.
아이들에게 종이 조형을 가르치는 일을 천직으로 여겨온 김영만 원장은 2015년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MBC예능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하면서부터다. 처음에는 작가의 간곡한 부탁에도 “청년들이 종이접기 하는 것을 보겠나?” 하며 거절했다. 거듭된 청에 “딱 한 번만”이라며
승낙했는데, 결과는 놀라웠다. 종이접기 아저씨의 등장에 어른이 된 코딱지들이 몰려와 “보고 싶었다”, “선생님을 보니 눈물 난다” 하며
인사를 남겼고, 접속자가 폭주해 한때 인터넷 방송 서버가 다운되기도 했다.
“‘TV 유치원 하나둘셋’ 보던 코딱지들이 다 왔나 봐요. 종이접기 하는 것과 채팅창을 번갈아 보며 접속자들과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는데,
채팅창이 너무 빠르게 올라가서 볼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언제부턴가 채팅창에 계속 ‘ㅠㅠ’만 뜨는거예요. 화면 뒤에 있는 작가에게
‘이거 뭐예요? 고장 난 것 같아요’ 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 그거 우는 거예요’ 하더라고요. 작가도 울고요. 저도 참 많이 울었어요.”
“하기 힘들면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하세요” 하면, 어른 코딱지들은 “엄마 이제 환갑이세요”, “제가 엄마예요” 하고 재치있게 답했다.
그만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잘했어요”, “괜찮아요”라는 말에는 눈물을 흘렸다. 잘했다. 괜찮아. 어른이 되어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 것이다. 방송 후 김영만 원장은 어른을 위한 강연을 시작했다.
“그 시절 코딱지들이 자라면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성장기에 IMF가 터졌고, 취업난도 겪었죠. 어른이 된 아이들을 위로해 주고 싶어서
‘마이 리틀 텔레비전’ 방송 후로 청장년을 위한 토크 콘서트를 많이 다녔어요. 제 인생 이야기도 해주고요. 강연 끝나고 사진을 찍자고 하면
다 찍어줘요. 한 시간 강연하고 두 시간 사진 찍고 올 때도 있고요. 그래도 좋아요.”
강연이 있으면 김영만 원장은 전날부터 마음을 다잡는다. 좋은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며, 긍정적 에너지를 끌어올린다. 사람들에게 긍정적
에너지를 전파해 주기 위해서다. 가족이 참여하는 행사가 있는 날이면 더욱 그렇다. 과거 종이접기 방송을 할 때나 지금이나 그는 이렇게 믿는다.
“내 기분이 지금 좋은지 나쁜지 아이들은 다 알아”라고.
교육자라서 행복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코딱지들이 부르는 곳이라면 어디든 가지만, 광고 출연 제의는 거절한다. 자신은 방송인이 아닌 교육자이기 때문이다. 대신 종이접기에 대한
사랑을, 아이들에 대한 사랑을 해외로 전파한다. 팬데믹 이전까지 김영만 원장은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 사람들과 함께 인도네시아, 베트남,
러시아 등 세계 각지를 오가며 유아교육과 학생이나 일반 학생들에게 대한민국의 종이접기 문화를 전파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아직 이전처럼
활동하기는 어렵지만, 김영만 원장은 힘이 닿는 한 많은 학생을 만날 것이다. 그 이유 역시 자신이 ‘종이 조형 예술가’보다는 ‘교육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수만 개의 종이접기 방법을 개발하니 사람들이 ‘특허를 내라’, ‘저작권 등록해라’ 하고 권해요. 하지만 그동안 어떤 것도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어요. 제가 하는 일이 ‘교육’이니까요. 지금껏 연구해 온 것도 다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 가르쳐주려고 한 것이고요. 저는 여전히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가장 듣기 좋아요. 그 마음이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연구를 계속하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도 우리 선생님들이 제게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내어드릴 수 있어요. 단 하나 바라는 것은 종이 조형이 우리 아이들 인지 발달과 창의력 발달에 도움이 되는 것뿐입니다.”
종이접기는 소근육 발달을 돕고, 공간감과 논리적 사고, 창의력을 확장시키는 데에도 최고인 놀이이자 공부다. 정해진 방법을 따라 하면 따라
하는 대로, 자기 마음대로 접으면 또 그대로 아이는 성장한다.
“사실 교육으로 치면 종이접기는 가장 변방의 교육이에요. 국어, 수학, 영어, 과학 등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과목을 모두 적고 나면,
맨 마지막에 종이접기가 나오겠죠. 그 변방의 교육을 앞으로 끌어올리겠다고 생각한 것이 제가 종이접기를 한 이유였고, 또 결과예요. 이제
그 역할을 선생님들이 함께해 주시면 고맙겠어요.”
10명의 어린이와 함께 공룡 접기를 하면, 5명은 가르쳐준 대로 따라 하고, 다른 5명은 제각각으로 만든다. 하지만 만들어놓으면 다 공룡이다.
교사가 할 일은 평가가 아니라 공감과 소통이다. 각자의 생각을 존중하고, 똑같이 사랑해 줘야한다. 그러면 종이를 통한 교육은 성공이다.
건강한 대한민국, 행복한 어린이라는 결과를 만드는 종이접기의 성공 말이다.
사랑은 사람을 평생 아이처럼 순수하게 만들기도 하고, 평생 성장하게도 한다. 김영만 원장을 보면, 우리는 그 사실을 알 수 있다. 35년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에게 아이이며, 부모이고, 스승이다. 그리고 우리 마음속 영원히 찬란한 5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