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교육은 언제, 어떻게, 얼마나 해야 할까
진로교육은 공교육 현장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이슈다. 지난해 11월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 사항이 발표됐다. 이날 공개된 총론 주요 사항 시안을 보면,
2025년 중학교 신입생부터 자유학년제 대신 자유학기제가 적용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중학교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운영 중인 ‘자유학년제’가 다시 ‘자유학기제’로 1학기로 축소되는 것이다.
대신 중학교 3학년 2학기에 ‘진로 연계학기’가 도입된다. 즉, 진로 탐색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중학교 1년 과정에서 중학교 1학년의 한 학기, 3학년 2학기 등으로 변경된다.
애초 자유학기제는 한 학기 동안 중간·기말고사를 보지 않고 진로·직업 교육에 집중하는 시기로 2016년 전국 중학교에 도입된 바 있다.
이후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2018년부터는 이 기간을 1년으로 늘릴 수 있게 됐는데, 현재 전국 대부분 중학교가 기간을 늘린 자유학년제를 운영하고 있다.
한데 학부모 사이에서 ‘아이들이 시험을 치르지 않아 학력이 저하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계속 나왔고, 너무 일찍부터 진로 체험 활동을 하는 게 직업교육에 정말 효과가 있느냐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이번 개정 교육과정에는 이런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이 됐다고 볼 수 있다. 교육부 관계자에 따르면 중학교 3학년 2학기에 새로 도입될 진로 연계학기에는 학생들이 진로 설계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한다. 자유학기에는 진로 체험 활동 위주로 운영하고, 고입을 앞둔 중3 마지막 학기에는 진로 설계 시간을 주겠다는 것이다. 학생의 진로와 적성에 따라 자신만의 시간표를 짜는 고교학점제에 대해 미리 계획하며 선택 과목을 설계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교육정책의 모양이 조금씩 변화하는 이유는 결국 ‘진로·직업 교육’을 언제, 어떻게, 얼마만큼 해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진로·직업 교육의 ‘진짜’ 의미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진로·직업 교육이 시작되면서 일각에서는 ‘경찰관, 소방관 옷 입고 사진 한 장 찍으면 진로 체험 끝’이라는 냉소적인 말도 돌았다.
한편 지난 2016년 전국 중학교에 자유학기제가 전면 시행되면서 ‘직업인과의 하루’ 등 관련 프로그램이 셀 수 없이 열리기도 했다.
한데 취재하면서 살펴보니 이렇듯 보여주기식 진로·직업 교육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아이들이 진로 체험을 ‘소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무엇을, 왜 하고 싶은지에 대한 ‘자기 질문’을 할 수 있도록 일의 의미에 대해 알려주는 실제 사례도 많았다.
마음껏 꿈꿀 수 있도록 돕되 한 아이의 인생에서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부터 톺아보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를테면,
꼭 기술직을 꿈꾸지 않아도 미장 수업을 통해 삶의 기술을 터득하게 한다든지, 수십 년 동안 기술을 익혀 장인이 된 멘토에게 직업 철학에 관해 들어보고 ‘먹고사는 현장’의 엄중함을 배우게 한다든지 하는 방식이었다.
서울 은평구의 크리킨디센터나 노원상상이룸센터 같은 곳에서 진행한 ‘마스터클래스 미장 수업’, 지역과 학교가 손잡고 아이들을 위한 진로 투어를 만든 사례는
진로·직업 교육이 꼭 화려하고 거창할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동네 약국, 집 근처 슈퍼나 부동산에서 일하는 어른들과도 가능한 것이 진로· 직업 교육인 것이다.
입시 위주의 한국 교육에서는 진로와 진학이 같은 말로 쓰이지만, 사실 진로 체험 교육의 목적은 ‘어느 대학에 가야 한다’가 아닌 ‘사회적 관계의 확장’에 있다.
주변 어른들이 동네 슈퍼, 약국, 부동산, 가맹점 등에서 실제 어떤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직접 질문거리를 만들어보는 것이 진로 체험에서 얻을 수 있는 교육 효과라는 뜻이다.
청소년기에 접어든 다문화 학생 진로·직업 교육도 시급
이미 다문화 사회에 진입한 지 오래인 우리나라의 경우, 다문화 학생을 대상으로 한 청소년 등에 대한 진로·직업 교육도 매우 시급하다.
다문화 학생들을 만나보면 “우리에게도 진로를 고민할 기회가 필요해요”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은 ‘진로 교육=입시’라는 높은 벽 때문에 중·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다문화 학생이 많다.
지난해 11월 기준 국가교육통계센터 자료에 따르면 다문화 학생은 16만56명으로, 전체 학생 중 3%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초등학생이 11만1,371명으로 70%에 달했고 중학생 3만3,950명, 고등학생 1만4,307명이다.
교육부의 다문화 교육 관련 정책이 수립되기 시작한 2006년만 해도 1만 명이 채 되지 않았지만 15년 만에 16배 증가한 것이다.
다문화 학생을 위한 전문 진로·직업 교육기관은 아직 한국폴리텍다솜고등학교뿐이다. 다문화 학생 가운데는 학교 밖 미등록 이주 아동·청소년도 많다.
이들 모두 한국에서 터를 잡고 살아갈 아이들이다. 현재 다문화 학생들의 대부분이 초등학교에 재학 중이지만 이들이 중·고등학교 등 진로·직업 교육이 절실한 청소년 시기에 접어들면 학습과 성장을 어떻게 도와야 할지 함께 준비해야 한다.
‘남다른 길’을 ‘먼저’ 가고 있는 아이들
학령인구가 감소하고 부모 세대보다 대학 들어가기가 쉬워졌다고 해서 아이들이 진로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인공지능 기술을 필두로 한 저출산·고령화 시대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은 오히려 ‘남다른 길’에 대한 고민이 커졌다.이런 상황에서 아무래도 진로·직업 교육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곳이 특성화·마이스터고등학교(이하 특마고)와 전문대학이다.
특마고의 경우 일찌감치 자신만의 전문 분야와 진로를 정한 학생들이 입학하기 때문일 것이고, 전문 대학은 2~3년제를 졸업하자마자 현장 실무에 투입 가능한 인재를 키워야 하므로 그렇다. 자격 과정 등을 압축해 제공하며 커리큘럼을 운영하는 이유다.
진로·직업 교육에 관해 취재하면서 중·고교 시절부터 꿈이 확실한 경우 특마고나 전문대학에 진학하는 사례를 심심찮게 봤다. 군사·식품·문화예술 분야 국공립 특마고는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한다. 군사 분야 마이스터고등학교인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의 경우 입학 경쟁률이 10 대 1이 넘는다.
진로·직업 교육에 관해 취재하면서 중·고교 시절부터 꿈이 확실한 경우 특마고나 전문대학에 진학하는 사례를 심심찮게 봤다. 군사·식품·문화예술 분야 국공립 특마고는 전국 단위로 학생을 모집한다.
군사 분야 마이스터고등학교인 공군항공과학고등학교의 경우 입학 경쟁률이 10 대 1이 넘는다.
한국치즈과학고, 한국애니메이션고, 광주자동화설비공고 등도 손꼽히는 특마고다.
중학교 시절 진로를 확실히 정했다면 고교 입학 뒤 곧바로 전공 관련 자격을 취득해 취업이 가능한 학교들이다.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와 4년제 대학교에 가지 않고 자동차 관련 전문대에 입학한다거나 승강기, 해양·조선, 화학, 제조·금형, 보건·치과 기술 계열에 입학한 학생들은 20대 초반에 이미 국가기술 자격증을 모두 취득한 뒤 해외 취업과 해외 영주권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조금은 ‘남다른 길’로 여겨지는 까닭에 이런 분야를 준비하려면 손품과 발품을 부지런히 팔아야 한다. 직업교육에 관한 인식과 위상이 높아져야 하는 까닭이다.
한국치즈과학고, 한국애니메이션고, 광주자동화설비공고 등도 손꼽히는 특마고다. 중학교 시절 진로를 확실히 정했다면 고교 입학 뒤 곧바로 전공 관련 자격을 취득해 취업이 가능한 학교들이다.
외국어고등학교를 나와 4년제 대학교에 가지 않고 자동차 관련 전문대에 입학한다거나 승강기, 해양·조선, 화학, 제조·금형, 보건·치과 기술 계열에 입학한 학생들은
20대 초반에 이미 국가기술 자격증을 모두 취득한 뒤 해외 취업과 해외 영주권을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조금은 ‘남다른 길’로 여겨지는 까닭에 이런 분야를 준비하려면 손품과 발품을 부지런히 팔아야 한다.
직업 교육에 관한 인식과 위상이 높아져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