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 Magazine
Monthly Magazine
April 2022 Vol.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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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더하기

인생 이모작

봉사는 희생 아닌 '행복'
남을 위한 일이 나에게 으로 돌아옵니다

영어 교사 퇴직 후 통역봉사·야학교사로 여전히 ‘출근 중’
곽기곤 회원

학교, 학원, 문화센터는 물론 온라인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곽기곤 회원에게는 유독 배움이 힘들었다. 가난, 전쟁 등 배움을 가로막는 것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배우는 과정은 남들보다 늦고 쉽지 않았지만, 배움에 대한 뜻은 누구보다 컸던 그는 결국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교사가 되었다. 그러고는 한평생 아는 것은 무엇이든 나누었다. 퇴직 후에도 마찬가지다.

이성미 / 사진 이용기

※ 모든 인터뷰 및 사진 촬영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해서 진행했습니다.
주인공 사진

어렵게 이어나간 배움의 끈, 교사로 매듭짓다

부산 남구 대연동에 자리한 재한유엔기념공원. 이곳은 세계 유일의 유엔 기념 묘지로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해 싸운 유엔군 장병들이 잠들어 있다. 한국전쟁 중 사망한 용사들을 기리기 위해 공원을 찾은 사람들 사이로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보인다. 익숙한 장소에 온 듯 발걸음이 여유롭다. 그는 내방객에게 공원과 우리나라 역사에 관해 소개하는 자원봉사자, 곽기곤 회원이다.
곽기곤 회원은 1960년 경남 양산 동아제2중학교(현 물금동아중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해 1999년까지 부산 경남여자고등학교에서 퇴임할 때까지 40년간 영어 교사로 일했다. 교사가 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초등학교 졸업 후 동창들이 다 중학교에 입학해 책가방을 등에 질 때, 그는 혼자 나무 지게를 져야 했다. 가난 탓이었다. 게다가 얼마 안 가 전쟁이 터졌다. 고향인 경남 산청 땅을 뒤로 하고 부산으로 피란 후 그는 한약방에 취직했다. 약방 창밖으로 학교 가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볼 때면 약재 봉투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다 어느 날 더 견디지 못하고 “공부하겠다”라며 약방을 뛰쳐나왔다. 낮에는 20리 길을 걸어 다니며 신문을 팔고, 밤에는 야학에서 공부하며 학업을 이어간 그는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장을 차례로 따고 결국 대학까지 들어갔다.

봉사 1만 시간에 빛나는, 전문 자원봉사자

교사가 된 후로 곽기곤 회원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가르친 학생 중에 교육감도 나오고, 한 학급에 4명이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기도 했다며 그는 훈장처럼 제자 자랑을 멈추지 않는다.
지금 모으고 있는 훈장은 부산광역시자원봉사센터에서 받은 자원봉사자 통장이다. 곽기곤 회원은 품 안에서 주황색 통장 예닐곱 개를 꺼내어 한 장 한 장 펼쳐 보인다. 꾸준히 봉사 활동을 했음을 증명하는 증거였다. 매일 봉사 활동 시간을 누적해 표기하는 이 통장에는 ‘유엔기념공원 내 영어 안내’, ‘국제여객터미널 내 영어 통역 서비스 활동’, ‘영어 학습지도’, ‘해운대 일대 환경 정비 활동’ 등 자원봉사자로서 그의 활동 내역이 빼곡히 적혀 있다. 센터에 자원봉사자로 등록한 이후 지금까지 1만 시간 가까이 부산 어디에서든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심리학자 안데르스 에릭손은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라며 ‘1만 시간의 법칙’을 이야기했다. 그 말대로라면, 곽기곤 회원은 봉사 전문가로서 충분히 인정받을 만하다.
자원봉사자로서 그의 첫 시간은 퇴직 이듬해인 2000년에 시작됐다. 부산 수영구 광안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주민을 대상으로 영어 회화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해 왔는데, 선뜻 수락한 것이 시작이었다. 2007년에는 지역 어르신들이 모여 만든 영어 자원봉사 단체 SEST(Senior English Service Team)에 가입해 시사영어 공부도 하고, 봉사 활동도 함께했다. 유엔기념공원 봉사도 그 덕에 시작하게 되었다.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 부산도시철도 부산역 등에서는 외국 관광객을 비롯한 외지인에게 도시를 안내했다. 문현동 소재 남부중앙고교 야학 교사로도 일했다. 그중 그가 가장 애착을 둔 곳은 역시 야학이었다.
“야학에서 수업을 듣는 사람들은 젊은 시절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배울 기회를 놓친 사람들이라 그런지 배움에 대한 열의가 대단해요.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바라보면 가르칠 맛이 나요.”
평생 가슴에 품었던 배움의 한을 그는 봉사로 승화하고 있다. 얇은 사 하이얀 고깔 고이 접어 나비가 되듯, 그의 한은 가르침이 되어 부산 지역 곳곳을 날아다닌다.

하지 않고는 못 배길 만큼 봉사가 좋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아는 것을 보따리에 담아 다 가져가라고 하고 싶다. 조건 없이 다 주고만 싶다. 그러나 그의 마음과 달리 봉사에는 조건이 필요하다. 시간과 안전이라는 조건이다.
3년 전 아내의 병이 깊어지면서 곽기곤 회원에게는 봉사할 시간이 사라졌다. 그렇게 바깥일을 천천히 놓아버린 데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대면 활동이 줄고 공원 내 주요 시설도 잠정 폐쇄되면서 할 수 있는 일도 퍽 줄었다. 그러나 곽기곤 회원이 봉사하던 자리에는 여전히 추억이 남아 그를 기다리고 있다.
“유엔기념공원 기념관 벽에는 전쟁 당시 사진이 쭉 걸려 있어요. 기념관을 찾은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사진을 설명하다 보면 그들의 얼굴에 점점 감동이 차오르는 모습이 눈에 보여요. 그럼 저도 뿌듯하죠. 한 번은 캐나다인이 ‘내 친구가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라며 공원을 찾아왔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여기 걸린 사진에서 자기 친구를 발견한 거예요. 얼마나 반가웠겠어요? 전쟁 중에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며 친구가 무척 안타까워하던 참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곤 얼마후 사진 속 주인공이 공원을 찾아왔어요. 사진 속 자기 모습을 바라보며 정말 감격스러워했죠. 제게도 잊지 못할 추억이자 봉사자로서 영광스러웠던 순간입니다.”
봉사를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뿌듯함이다. 사람들에게 봉사를 권하는 이유도 봉사자로서 얻는 뿌듯함이 그 어떤 감정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선명하고도 달콤하기 때문이다. 봉사자만이 얻을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다.
“내가 즐거워서 하는 일이에요. 봉사 활동은 억지로 해서는 안 돼요. 할 수도 없고요. 남을 위해 일하면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어쩌면 그런 이기적인 마음이 계속 봉사 활동을 하게 만드는지도 모릅니다. 봉사하면몸도 건강해지고 마음도 건강해져요. 그러니 나를 위해 봉사하십시오. 저도 몸이 허락하는 한 계속 봉사 활동을 이어갈 겁니다.”
봉사에 빠지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중독일 것이다. 곽기곤 회원에게도 봉사는 도저히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 되었다. 그 이끌림은 앞으로도 곽기곤 회원을 계속 자원봉사자로 살게 할 것이다. 케이 로고 이미지
인생 이모작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은퇴 후에도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재능을 기부하며 역동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는 회원님들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의미 있는 인생 이모작을 실현하고 있는 회원님을 추천해주셔도 좋습니다. 「The-K 매거진」 지면에 담아 많은 회원님들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새로운 시작을 위한 용기를 전해드리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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