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우인재 여행작가 / 사진제공 구례군청
섬진강 벚꽃길 따라 산책해 볼까요
전라남도 구례군은 민족의 영산 지리산 남서쪽 자락에 자리 잡은 고장으로 북으로는 남원시, 남으로는 하동군과 인접해 있어 전북과 경남을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외지인들에게 구례는 화엄사, 천은사 같은 고찰과 함께 The-K 지리산가족호텔이 위치한 산동면의 산수유 군락지 등으로 유명하지만 4월에는 반드시 섬진강 변을 찾아야 한다. 실핏줄처럼 흐르며 남도땅을 적시는 개울물이 모여 섬진강을 이루고, 그 물이 다시 수백 리를 달려 바다로 나서기 전 숨을 고르는 땅. 어느 시 구절에서 보았던 것처럼, 누군가 김매는 촌부(村婦)의 그을린 이마에 훤하게 꽃등을 달아줄 것만 같은 고장 구례에서 섬진강에 가야할 이유는 무얼까? 연분홍 벚꽃들이 봄의 절정을 노래하는 이 순간을 목도하지 않고서는 남도의 4월을 제대로 만끽했다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하늘과 맞닿은 암자, 오산 사성암
하늘과 맞닿은 암자, 오산 사성암 섬진강을 굽어보고 있는 오산은 해발 531m로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지리산 남서쪽의 구례읍과 섬진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근사한 경치 때문에 명성을 얻고 있는 곳이다. 게다가 자동차로 산 정상 바로 아래까지 이동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땀 흘려 가며 등산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역시 장점. 물론 주말이나 벚꽃이 만개하는 시즌에는 자동차가 많이 몰리기 때문에 문척면 죽마리의 섬진강 옆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셔틀버스를 타는 편이 좋다. 바로 이 오산에는 백제성왕 22년인 544년에 연기조사가 건립한 것으로 알려진 암자 사성암(구례군 문척면 사성암길 303)이 숨겨져 있다. 원효대사, 의상대사, 도선국사, 진각국사 등 4명의 고승이 수도한 곳이라고 하여 사성암(四聖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여백이 아름다운 고택 쌍산재
구례에서 외지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고택으로는 토지면에 위치한 곡전재와 운조루가 꼽히지만, 요즘은 쌍산재를 찾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 지난해 TV 예능 프로그램인 ‘윤스테이’ 촬영지로 등장한 쌍산재(www.ssangsanje.com)는 사실 오래전부터 전통가옥을 활용한 숙박시설로 명성이 높았다. 구례군 마산면 사도리에 자리 잡은 이 고택은 집주인의 고조부의 호 ‘쌍산(雙山)’을 따서 이름 지었다고 한다.지리산이 품은 고찰 두 곳
구례에 왔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고찰 두 곳이 있다. 화엄사와 천은사가 바로 그곳이다. 544년 연기조사가 창건한 화엄사는 고색창연한 각황전을 비롯하여 4점의 국보, 5점의 보물을 보유한 사찰로 천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여러 차례 증축과 재건을 거듭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그중에서도 국보로 지정된 각황전의 경우 현존하는 국내 최대 규모 목조건물로 정면 7칸, 측면 5칸 규모로 지은 2층 건물은 그야말로 웅장함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사찰에서 유래된 건강한 먹거리, 산채정식
산과 들에서 나는 다양한 종류의 봄나물과 버섯을 주재료로 풍성한 상차림을 선보이는 산채정식은 지리산이 내놓은 가장 건강한 웰빙 먹거리다. 구수하게 끓여낸 된장찌개를 비롯해 각종 장아찌류, 도토리묵, 생선구이, 깻잎, 명이나물 등에 갓 지은 고슬고슬한 솥밥이 더해지면 겨우내 잃었던 입맛을 되찾게 해준다. 산나물은 주로 절에서 채식을 위해 사용하는 식재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초파일을 앞두고 절을 방문하면 대접받을 수 있는 식사가 대부분 산채비빔밥인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밥에 다채로운 색의 향긋한 제철 나물을 얹고 그 위에 고추장과 고소한 참기름을 몇 방울 넣어 비비면 이만한 별식은 또 없을 것이다. 구례에서는 화엄사 진입로 주변과 산동면 산수유 군락지에 산채 전문 식당이 모여 있다.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한 지리산 산닭구이
지리산의 들녘에서 키운 촌닭은 육질이 부드럽고 소화가 잘되어 먹기 편할 뿐 아니라 단백질과 비타민이 풍부하며 지방 함량이 적어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 실제로 산닭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구례의 식당들은 야외에서 방사해 키운 닭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촌닭으로 조리하는 산닭구이는 간을 했지만, 양념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닭고기 본연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으며, 팬이 아닌 불판에 직화로 굽기 때문에 기름이 쏙 빠져 담백하기까지 하다.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소리와 냄새 그리고 테이블 위에 차려진 반찬의 색감이 어우러져 오감이 즐거운 먹거리로 기억에 남게 될 것이다. 산닭구이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으로는 산동면의 산들좋은촌닭과 당골식당 그리고 토지면의 당치민박산장 등이 있다.속살에서 수박 향이 나는 섬진강 은어
비린내가 없고 담백한 맛 때문에 섬진강 주변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은어를 즐겨 먹었다고 한다. 은어는 한반도를 비롯해 주로 극동지방에 서식하는 몸길이 20cm 가량의 어류로 바다에서 태어나 월동하던 치어가 벚꽃이 필 무렵인 4월부터 하천으로 올라와 상류로 이동하면서 여름 동안 성장하게 된다. 속살에서 수박향이 난다는 은어는 예부터 그 맛이 좋기로 유명했기 때문에 왕실 진상품으로 여겨져 왔는데 현대에 와 양식이 가능해지면서 맛보기가 쉬워졌다. 곡성, 구례를 거쳐 하동과 광양 사이를 흐르며 바다로 나가는 섬진강은 바로 이 은어의 주요 서식처이다. 은어는 보통 양념을 가미해 찜으로 먹거나 바삭하게 튀겨 먹기도 하는데 구례읍에 위치하는 남촌회관, 전원가든 등에서 은어요리를 맛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