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진아 l 사진 이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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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용감한 도전이었다. 교직 생활 내내 동동거리며 살았던
아내의 오랜 염원을 이루어주기 위해 교외에 세컨드 하우스를
장만하고 텃밭을 일궜다. 밭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아내를
위해 밥상을 차려주고, 제빵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해 빵을
굽고, 아내의 생일날 케이크를 만드는 한준호 작가의 인생 2막은
‘또 다른 여행’ 같다.
“퇴직하고 보니 갑자기 시간도, 요일도 필요 없는 삶이 찾아왔어요. 이대로 ‘끝난 사람’이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 뭐든
붙잡고 끊임없이 움직이기로 했죠. 움직이면 에너지가 창출되지만,
멈추면 끝난다고 생각했거든요. 은퇴 이후의 무력함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여유를 통제할 줄 아는 삶, 자유를
즐길 줄 아는 여유, 그런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는 자아를
찾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우뚝 솟은 모악산을 뒤로하고 넓은 저수지가 시원하게 펼쳐진
호수마을 끝자락에 앙증맞게 지어진 오두막 한 채. 한준호
작가의 세컨드 라이프가 펼쳐진 세컨드 하우스는 작지만 끼니를
지을 공간도, 아늑한 침실과 작은 서재도 마련된 곳이다.
일주일 중 2일은 아파트에서 지내고, 나머지 5일은 세컨드 하우스에서
보낸다. 소란했던 삶의 전반을 끝내고, 이젠 마음을
내려놓고 조용하고 여유롭게 나만의 행복을 찾아 나선 ‘2도(都) 5촌(村)’의 삶.
끊임없이 움직이며 나태하지 않은 건실한
삶으로 인생 2막을 활짝 열어젖혔다.
“세컨드 하우스는 집에서 차로 20분이면 도착해요. 출근하듯
매일 찾아오니 은퇴 후 공허함을 달래고 마음에 힘을 주는 보금자리
역할을 해주더군요. 누운 채로 창밖 풍경을 올려다보면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유유히 흐르고, 앞산 꼭대기에서
뛰어내린 형형색색 패러글라이더들이 마치 잠자리처럼
하늘을 수놓아요. 창밖은 평화롭고, 나는 한가롭죠. 가장 편한
자세로 드러누워 발가락만 꼼지락거리며 펼쳐 든 책이 싫증나면
바로 집어 던지고 다른 책을 골라 폅니다. 책을 잡은 손이
무겁게 느껴지면 그대로 잠에 빠져들죠. ‘아! 자유롭다!’ 슬며시 웃음이 나는 삶이죠.”
비슷한 시기에 은퇴한 아내와 함께 매일 세컨드 하우스로 출근해
텃밭의 작물들과 교감하면서 마음과 시간을 나눈다. 된장과 고추장을 직접 담그고, 막걸리도 빚어 지인들과 나누고,
수영·양봉·제빵 등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다. 세컨드
하우스에서의 책을 읽고 쓰는 일과는 작가로, 강연자로
활동할 수 있는 좋은 자양분이 됐다.
한준호 작가는 영어 교사였던 아내를 배우자로 맞았고, 아버지를
비롯해 가족이 8명이나 교육자인 튼실한 교육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살아왔다. 콩나물시루 같던 교실에서 조개탄으로
난로를 피워 추위를 피하고, 선풍기는커녕 손부채로 찜통
같은 무더위와 씨름하던 시대에 교직을 시작했다. 이제는
교실에 히터와 에어컨이 설치되고, 디지털교과서와 와이파이
같은 신문물로 온라인 학습이 이루어지는 첨단 시대까지
살다 교직을 떠났으니 감개무량하다.
돌이켜보건대,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책가방을 메고 교문으로
뛰어 들어가는 아이들과 함께 출근하는 아침 등굣길은 늘
행복이었다. 공부가 끝나면 복도로 쏟아져 나와 왁자지껄 떠들고
까르르 웃어젖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는 일 또한
행복이었다. 교단을 떠나며 나의 제2의 삶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걱정 반 기대 반이면서도 스스로 주문을 외웠다.
‘끊임없이 움직이면 영원하다!’
“하얀 눈이 덜 녹아 미끄러운 시골 빙판길을 걸어서 첫 부임지에
들어서던 첫 출근 날의 기억이 또렷해요. 그해에 학급
담임으로 배정받은 1학년 신입생 아이들과의 만남은 제게 평생
잊지 못할 인연이었죠. 힘든 줄도 모르고 매번 수업이 즐거웠고,
오죽하면 아이들과 같이 지내고 싶어 근무를 쉬어야
하는 주말이 다가오는 게 싫을 정도였으니까요.”
어느 주말엔 아이들과 자전거 여행을 기획해 실행에 옮기기도
했다. 그때는 아이들의 통학 수단이 대부분 자전거였기에
각자의 자전거로 출발지에 집결해 온종일 국도를 따라 사원,
향교, 지역 문화재 등을 둘러보며 100여 킬로미터를 달렸다.
낙오자가 없도록 서로 끌고 밀기도 하고, 고장 난 자전거가
생기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나서 손을 봐줘 가면서 어둑해진
저녁이 되어서야 무사히 출발지로 복귀해서는 ‘해냈다!’라는
기쁨에 서로 부둥켜안고 좋아했다.
“그 아이들이 36년이 지나 선생님을 만나겠다고 우르르 세컨드
하우스를 찾았을 때 참 울컥했어요. 나는 어느새 회갑을
훌쩍 넘어 교단을 떠났고, 코흘리개였던 아이들은 희끗희끗해진
머리에 반백의 나이가 되어 저마다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훌륭한 어른이 되었으니까요. 이제 친구처럼 함께
늙어갈 제자들과 걸판지게 웃어대며 정을 나눌 수 있게
해준 것 또한 세컨드 하우스네요.”
마당을 거닐다 애호박과 고추, 사과 꾸러미를 발견했다. 정다운
이웃이 밭에서 수확한 작물을 울타리 너머 소담하게 나눠놓고
간 것이다. 한 폭의 정물화처럼 참으로 예쁘게도 놓아두셨다.
하루하루 소박한 즐거움을 선사하는 세컨드 하우스 생활도
벌써 5년째. 본격적인 겨울을 앞두고 요즘은 월동 준비로 한창
바쁘다.
“겨울은 새로운 시작이에요. 따뜻함을 가장 깊이 알게 되는 계절이죠.
텃밭 식물들은 겨울을 나도록 하나하나 손을 써 줘야해요.
실내에 들여놓아야 하는 식물도 있고, 그냥 비닐로 덮어
화단에 두면 알아서 겨울을 잘 나는 식물도 있지요. 아주 여린
식물은 특히 보온이 필요해 빛이 잘 드는 아파트 베란다로 옮겼어요.
발아해야 하는 꽃, 나뭇가지를 정리해 줘야 하는 식물
등등 모종에 따라 얼마나 정성껏 가꾸고 고생해야 하는지….
아름다운 풍경은 거저 얻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정원의 나무와 꽃을 옮기고 월동 준비를 하면서 ‘이렇게 또 한
해가 가는구나!’ 생각이 든다. 세월이 빨리 가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올 한 해도 알차게 살았다는 보람이 그득하다.
“책도 내고, 서울 가서 북 토크도 해보고, 강의도 나가고, 농사도
짓고, 양봉도 했네요. 별건 아니지만 이렇게 쉬지 않고 돌아가는
일상이 큰 에너지가 되어줘요. 앞으로도 도전해 보고 싶은
일이 많아요. 손자들과 친구들을 즐겁게 해줄 마술도 조만간
배워볼 계획입니다.”
새로움을 ‘두려움’이 아닌 ‘설렘’으로 맞는 태도와 행동하는 용기.
세월에 따라 자신 안에 내재한 그 모든 소양이 발휘되어, 은퇴
이후 한준호 작가는 청춘처럼 초롱초롱하다. 삶은 쉬지 않고
흘러간다. 선생님, 여행가, 사진가, 양봉인, 제빵사, 강연자, 작가가 되어 인생 2막, 3막이 차곡차곡 펼쳐지고 있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복닥복닥 일궈온 세컨드 하우스에서, 한준호 작가의
새로운 서막이 튼실하게 열매를 맺고 있다.
은퇴한 아내와 함께 세컨드 하우스로 출근해 텃밭의 작물들과 교감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