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박선영 여행작가
글·사진 박선영 여행작가
시드니의 주요 이벤트는 모두 마틴 플레이스(Martin Place)에서 시작된다.
크리스마스트리의 전구가 가장 먼저 불을 밝히는
곳도, 안작데이(ANZAC Day) 퍼레이드의 팡파르가 울리는
곳도 이곳이다.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시드니의 중심가, 센트럴시드니를 상징하는 광장,
‘마틴 플레이스’는 그런 곳이다.
광장을 둘러싼 거대한 건물들은 위협적이면서도 중세풍의
낭만을 간직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정오를 제외하고는 어느
시간이든 빌딩 숲 그늘이 태양 빛을 막아주는 곳이지만, 차량
통행마저 차단된 이 광장에서는 다양한 야외 공연과 버스킹이
일상이 된다.
마틴 플레이스를 둘러싼 건물 중 눈여겨볼 곳은 광장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넘버원 마틴 플레이스’ 빌딩. 1866년에
지어지기 시작해 1891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1996년까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방 우체국으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호텔, 쇼핑센터, 갤러리, 글로벌 그룹의 업무동 등으로 쓰이고 있다. 시계탑이 건물의 상징이자 광장의 상징이다.
마틴 플레이스에서 두 블록 떨어진 조지 스트리트. 고풍스러운 건물 입구에 거대한 동상이 사람들을 내려다본다. 단상 위에 우아하게 앉아 있는 주인공은 빅토리아 여왕이다. 바로 옆에는 여왕의 애견 이슬레이의 동상도 보인다. 멈춰선 시간 속에서 그들만의 세계가 이어지고 있는 듯, 여왕은 사람들을 굽어 보고, 이슬레이는 여왕을 향해 충성스럽게 앞발을 들고 있다. 1898년에 완공된 퀸 빅토리아 빌딩(The Queen Victoria Building), 대부분 사람은 ‘QVB’라는 애칭으로 즐겨 부른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왜 세계적인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이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센터’라 격찬했는 지 알게 된다. 건물 전체는 비잔틴궁을 본뜬 화려한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축조되었고, 지붕에는 21개의 크고 작은 돔 장식을 올렸다. 외관 못지않게 시선을 사로잡는 내부는 돔 천장에 매달린 로열 시계에 이르러 화려함의 정점을 찍는다. 매시 정각이면 시계에서 튀어나온 인형들이 한바탕 퍼레이 드를 펼치는데,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들과 어우러져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록스(The Rocks)는 도시의 과거에서 현재까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상징적인 곳이다. 호주에서 가장 오래된 집 ‘캐드맨의 오두막’을
지나 언덕을 오르면 차량 통행이 금지된 록스
광장이 나온다. 광장을 지키고 있는 커다란 조형물의 이름은
‘퍼스트 임프레션(First Impression)’이다.
호주에 처음 정착한 죄수와 군인, 이주민 가족의 모습을 담고
있는 조형물로, 마치 돌에서 사람들이 빠져나온 듯한 삼면의
음각이 인상적이다. 머나먼 영국에서부터 오랜 시간 배를
타고 또 다른 삶을 찾아 떠나온 그들이 본 시드니의 첫인상은
어땠을까. 거대한 바위산을 깎아 오늘의 ‘록스’를 만든 이들은 모두 죄수였다.
여기서 나온 돌무더기는 서큘러 키(Circular Quay)를 매립하고 건설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바위 곳곳에 절단된 단면과 미로처럼 연결된 부분이 역사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면 누구라도, 어느새 서큘러 키에 다다르게 된다.
시드니 중심 업무 지구 북쪽의 '베네롱 포인트'와
'록스' 사이의 부두인 이곳에는 당신이 상상하던 시드니의 모든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오페라하우스를 배경으로 한낮의 태양 아래 테라스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면 빈 의자에 앉아
스스로 풍경이 되어도 좋다. 길 양쪽으로 페리 선착장과 카페의
파라솔이 길게 이어지고, 개척 시대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범선과 ‘코트 행어(옷걸이)’라는 애칭을 가진 하버브리지가
적당한 거리에서 엽서 같은 풍경을 완성해 준다.
오페라하우스를 지나면 로열보태닉가든이 나타난다. 공원
한구석, 바다를 마주한 매쿼리스 체어*에 앉으면 200여 년 전
막 이 땅에 발을 디딘 개척민들의 모습이 대서양 푸른빛에 오버랩된다.
*매쿼리스 체어: 매쿼리 부인을 위해 죄수들이 조각한 조형물
시드니는 크루즈가 정박하는 수심 깊은 항구인 동시에 구불구불
도심 깊숙이 해안선이 닿아 있는 만이다. 아름다운 해안선과
수려한 스카이라인이 어우러져 세계 3대 미항으로
꼽히지만, 시드니가 특별한 이유는 비치 때문이다.
센트럴시드니에서 불과 30분 거리에 있는 본다이비치(Bondi
Beach). 시드니 인근 해변 가운데 이름값을 톡톡히 치르는
곳이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반팔 입은 산타가 서핑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본다이는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라는 뜻으로, 애버리진 원주민들이 오랫동안 부르던 이름 그대로다.
본다이비치의 파도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이보다 더 멋지고 잘 어울리는 이름은 없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부서지는 파도에 몸을 맡기기가 두렵다면, 우아한 인피니티
수영장은 어떨까. 본다이 아이스버그 클럽은 누구라도 10달러
남짓이면 즐길 수 있는 야외 수영장 덕에 시드니의 핫 플레이스가
되었다. 하이라이트는 클럽을 지나 이어지는 산책로다.
탁 트인 남태평양과 철썩이는 파도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끝이 보이지 않는 해안길은 브론테비치,
쿠기비치 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야
한다.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마틴 플레이스의 크리스마스 야경을 놓치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