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한라산 다음 최고봉인 천왕봉(1,915m)을 비롯해 반야봉(1,732m)과
노고단(1,507m)의 3대 주봉을 가진 지리산은 그 면적만 483㎢에 달하는, 22개
국립공원 중 면적이 가장 넓은 국립공원이다. 백두산 장군봉에서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큰 산줄기가 백두대간이며, 우리 민족정기의 상징이자 한반도 생태계의
보물 창고다. 지리산은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한자로는 지이산(智異山)이라
쓰지만 지리산이라 읽는다. 본래 ‘智異’는 지리라는 우리말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며, 지리는 산을 뜻하는 ‘두래’에서 나온 이름이다. 또 ‘백두대간의 맥이 흘러내려와
다시 솟은 곳’이라고 해 두류산(頭流山)이라 부르기도 했고, 도교의 영향을 받아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공간’이라는 뜻의 방장산(方丈山)이라 부르기도 했다.
지리산은 1967년 「공원법」이 제정되면서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됐고, 이후 노고단
재건, 반달가슴곰 방사, 천왕봉 복원 사업 등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글·사진 편집실
자료·사진 국립공원 역사 아카이브
1940년 천왕봉 전경
민족의 영산(靈山)이었지만 한국전쟁을 전후로 지리산에서의 민족사의
비극과 무분별한 도벌(盜伐) 등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계속
황폐해지고 있었다.
1955년 민간인 지리산 첫 정식 등반
지리산 권역 최초의 산악모임 ‘구례연하반’이 첫 입산 허가를 받고
지리산을 본격적으로 등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리산의 각종
탐방로와 편의시설을 개척했을 뿐 아니라 관리 부실 문제를 지적하며
지리산의 국립공원 지정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
1964년 지리산국립공원 추진위원회 발족
구례군 가구 1만 2,000호가 회비를 모아 지리산국립공원 추진위원회에
가입해 활동하며, 1967년 「공원법」 제정을 통해 지리산이 국내 최초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헌신했다.
1940년 천왕봉 전경
민족의 영산(靈山)이었지만 한국전쟁을 전후로 지리산에서의 민족사의
비극과 무분별한 도벌(盜伐) 등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전까지 계속 황폐해지고 있었다.
1955년 민간인 지리산 첫 정식 등반 지리산 권역 최초의 산악모임 ‘구례연하반’이 첫 입산 허가를 받고
지리산을 본격적으로 등반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지리산의 각종
탐방로와 편의시설을 개척했을 뿐 아니라 관리 부실 문제를 지적하며
지리산의 국립공원 지정에 지대한 기여를 했다.
1964년 지리산국립공원 추진위원회 발족 구례군 가구 1만 2,000호가 회비를 모아 지리산국립공원 추진위원회에
가입해 활동하며, 1967년 「공원법」 제정을 통해 지리산이 국내 최초 국립공원으로 지정될 수 있도록 헌신했다.
1987년 국립공원관리공단 설립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원 이용객 증가로 환경 훼손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해 당시 건설부는 1987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을 설립해 보다 체계적인
공원 관리를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2000년 지리산 반달가슴곰 발견
지리산자연환경생태보존회와 MBC경남(당시 진주MBC)의 노력끝에
지리산에서 야생 반달가슴곰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반달가슴곰 보호와 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87년 국립공원관리공단 설립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원 이용객 증가로 환경 훼손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해 당시 건설부는 1987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을 설립해 보다 체계적인
공원 관리를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2000년 지리산 반달가슴곰 발견
지리산자연환경생태보존회와 MBC경남(당시 진주MBC)의 노력끝에
지리산에서 야생 반달가슴곰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반달가슴곰 보호와 복원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13년 재건된 노고단 전경
많은 방문객과 무분별한 개발로 훼손된 노고단을 복원하고 탐방로를 정비해 누구나 쉽게 방문할 수 있는 곳으로 재탄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