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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개척하고 즐기는 이들의 이야기

생생지락(生生之樂)

두려움보다는 ‘용기’를 선택해 보세요

북스테이 호스트 최은숙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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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가득한 눈빛과 천진난만한 미소에서 나이를 잊은 순수함이 느껴지는 최은숙 회원. 고등학교 국어 교사였던 최은숙 회원은 35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북스테이 창업으로 인생 2막을 열었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두려움보다는 ‘용기’를 선택했기에 인생의 모퉁이에서 새로운 길을 열어가고 있는 최은숙 회원을 만났다.

글 박지연 l 사진 성민하

인생 모퉁이에서 새로 만난 나의 인생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있을지 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이 기다린다고 믿을래요. (중략) 어떤 새로운 풍광이 펼쳐질지, 어떤 새로운 아름다움을 보게 될지, 어떤 모퉁이와 언덕과 골짜기가 있을지 궁금해요.”
『빨간 머리 앤』 中

인생은 생각대로 되지 않지만, 어쩌면 그래서 더 궁금하고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최은숙 회원이 북스테이 창업을 계획한 것은 충북 괴산에 있는 ‘숲속작은책방’을 방문한 이후부터다. 북 카페 겸 북스테이였는데 그 공간이 꽤 인상 깊었다. 그때부터 퇴직하면 책과 쉼이 있는 북스테이를 운영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었다.
“제가 호기심이 많아요. 어떤 선생님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렵다고 하셨는데, 전 모르는 사람을 점차 알아가는 게 좋더라고요. 그리고 책 읽는 것을 좋아해 북스테이를 운영해보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여성 전용 북스테이로 시작했어요. 여자 혼자 여행하다 보면 위험할 때도 있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편안한 공간을 마련해 주고 싶었습니다.”
‘빵과 장미’라는 북스테이 이름은 최은숙 회원의 친구가 지어줬다. 빵과 장미는 1908년 3월 8일 여성에게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인 빵(생존권)과 함께 장미(참정권, 인권)를 달라며 벌인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에서 시작된 말로, 현재 3월 8일은 국제 여성의 날로 지정돼 있다. 평소 환경과 여성, 생태 등 사회 활동에 관심이 많은 최은숙 회원은 친구의 작명이 마음에 쏙 들었다고. 현재는 여성만이 아니라 가족, 친구, 직장 동료 등 다양한 방문객을 독채로 맞고 있다.

누군가에게 ‘꿀잠’을 선물하는 값진 일

전남 진도국악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끝으로 35년 교직 생활을 접고 명예퇴직한 최은숙 회원. 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주변 은퇴한 선생님들을 보며 오히려 더 큰 힘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제가 아는 분은 사회 활동을 하기 위해 명예퇴직을 하셨어요. 생태 활동과 생태교육, 구조 활동 등을 하며 자신의 꿈을 펼치는 분도 있고, 시골에 멋지게 집을 지어 목공과 도자기 등 평소 취미 활동을 마음껏 하면서 과학 교사였던 경험을 살려 생태 관련 강의나 수업을 하는 분도 있죠. 교직에 몸담았던 분들은 부지런히 취미 활동이나 일을 찾아 하시는 것 같아요. 그분들을 보며 저도 조금씩 꿈을 키울 수 있었죠. 북스테이를 창업하고 싶다고 했을 때 주변 분들도 좋은 생각이라며 적극 응원해 주셨고요.”
막상 북스테이를 창업하기로 결심하고 나니 준비해야 할 일이 많았다. 오랫동안 살아온 해남과 마지막 근무지인 진도를 떠나 어느 도시로 갈지, 어떤 집을 구해야 할지, 리모델링을 비롯해 침구나 가구, 조명 등 세세한 선택이 요구되는 일까지 비용과 시간이 만만치 않게 들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준비한 끝에 전주 완산구 서서학동 한 골목길에서 이 집을 만났다.
“사실 퇴직하면 전주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했어요. 전주라는 곳이 참 멋진 도시라고 생각했거든요. 전주는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세계소리축제 등 세계적 축제뿐 아니라 다양한 역사와 문화가 공존하는 매력적인 도시예요. 1년 내내 관광객도 많이 방문하고요. 전주라면 제가 은퇴 후 삶을 재미있게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최은숙 회원이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이 게스트 북에 남긴 메시지를 읽을 때다. 조용한 주택가 안에 있다 보니 잠을 푹 잘 자고 책을 읽으며 쉴 수 있었다는 후기가 많다. 누군가에게 ‘꿀잠’을 선물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그에겐 뿌듯하고 의미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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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이 나누고픈 ‘책과 쉼이 있는 공간’

최은숙 회원은 여전히 배우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일도 많다. 노래를 전문으로 배워 좀 더 잘 부르고 싶고, 4개의 온·오프라인 독서 모임에 나갈 만큼 독서를 좋아하고 즐긴다. 다양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최은숙 회원이 하는 일은 모두 하나로 통한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최은숙 회원은 은퇴를 앞둔 분들에게도 사람을 만나는 일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는 퇴직을 앞둔 분들에게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고요. 커뮤니티가 있어야 외롭지 않고 계속 배울 수 있거든요. 취미 활동을 하든 새로운 일에 도전하든 결국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답게 북스테이에 이어 전주 남부시장 안에 ‘콩알네’라는 식당도 오픈했다. 북스테이는 주로 주말에 손님이 오기에 평일 시간을 활용해 식당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북스테이에 머무는 손님들에게는 특별 서비스도 제공한다. 평소 비건 음식에 관심이 많았던 경험을 살려 비건김밥 등을 주메뉴로 낸다.
북스테이와 식당,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려면 힘들지 않을까.
“책과 쉼이 있는 공간을 함께 나누고 싶고, 또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도 나누고 싶어 시작했어요. 하지만 아직은 체력적으로 힘들 만큼 손님이 많지는 않아요. 저는 예전부터 소득의 10%는 어려운 분들에게 기부하고 있는데, 더 많이 벌어 더 많이 나누고 싶습니다.”
최은숙 회원은 나중에 이 공간을 특별한 공유 숙박을 위한 장소로 만들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다. 쉼이 필요한 사람들의 숙소로 제공해 주는 것이다. 이를테면 서울에는 ‘꿀잠’이라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해고 노동자를 위한 쉼터가 있는데, 전주의 ‘꿀잠’으로 활용할 계획도 갖고 있다. 또 가정폭력이나 성폭력으로 집을 나온 여성이나 가출 청소년이 쉴 수 있는 공간으로도 활용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다.
“진도에서 교사 생활을 하던 시절 반 아이가 갈 곳이 없어 우리 집에 머문 적이 있어요. 가출한 뒤 오갈 데 없는 아이들에게 쉴 곳을 찾아 연결해 주는 일을 한 적도 있고요. 보육원에서 퇴소한 ‘열여덟 어른’ 아이들이 자립 기반을 닦을 때까지 머물게 하고 싶기도 해요. 더 큰 나눔을 위해 지금은 돈을 좀 더 벌어야 할 것 같네요.”
케이 로고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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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을 앞둔 분들에게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한다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커뮤니티가 있어야 외롭지 않고 배울 수 있거든요. 결국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