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이주영
글·사진 이주영
뜨거운 여름, 경주 여행의 시작점은 계림이다. 한낮의 따가운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계림은 수령을
짐작할 수조차 없는 고목 100여 그루가 숲을 이뤄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기분이 들게 한다.
과거 신라인들은 이곳을 ‘성스러운 숲’이라는 뜻의 ‘시림(始林)’으로 불렀는데, ‘닭이 우는 숲’이라는
뜻의 ‘계림(鷄林)’으로 불리게 된 데에는 신라 김씨 왕조에 얽힌 사연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서기 60년 신라 탈해왕이 이 숲에서 닭 울음소리가 들려 사람을 보냈더니
나뭇가지에 금빛 궤가 걸려 있었고, 그 아래서 흰 닭이 울고 있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탈해왕이
직접 숲을 찾아 금궤를 여니 사내아이가 들어 있었다. 후에 이 아이는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은
‘김(金)’, 이름은 신라 말로 아이를 뜻하는 ‘알지(閼智)’로 불리게 된다. 왕은 이 숲을 ‘계림’이라 부르게
하고, 나라 이름도 ‘계림’이라 고쳐 지었다고 전한다.
계림은 느티나무, 회화나무, 왕버들, 물푸레나무 등 수령이 수백 년인 고목 100여 그루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한낮에도 햇빛이 깊게 들지 않는다.
계림에 들어서면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한여름 무더위도 잠시 잊힌다. 숲의 개울은 사계절 마르지
않아 푸른 이끼가 땅을 뒤덮어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계림을 천천히 산책한 후 해가 저물 무렵, 나지막한 돌담과 멋스러운 한옥이 어우러진 교촌마을로 향한다.
역사가 깊은 교촌마을은 서기 682년(신라 신문왕 2년)에 한국 최초의 국립대학인 국학이 세워진
곳이기도 하다. 그 역사는 ‘요석궁’에서 시작한다. 요석궁은 신라 태종무열왕의 둘째 공주인 요석공주가
머물던 궁으로, 요석공주는 원효대사와 사랑을 나눴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은 고려시대 ‘향학’을 거쳐 조선시대에 ‘향교’가 되었다. 향교 입구에 있는 돌우물은 신라시대에
요석공주가 사용하던 것이라는 얘기가 전해 내려온다.
보물인 대성전을 비롯해 명륜당 등 옛 선비들이 공부하거나 후학을 가르치던 공간은 옛 모습 그대로다.
향교 옆 오래된 고택은 경주 교동 최 부자의 집이다. 10대에 걸쳐 만석꾼이었을 정도로 부유했으나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참다운 부자로 오늘날까지
명성이 자자하다. 고택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아 여행객들이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다. 고즈넉한 한옥의
정취가 느긋한 여름 저녁과 잘 어울려 마음마저 차분해지는 기분이다.
어둠이 살짝 내려앉기 시작하자 발걸음이 첨성대로 향한다. 낮에 보는 첨성대도 아름답지만 진정한 멋은 밤에
드러난다. 은은한 조명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첨성대는 신비로운 느낌마저 자아낸다. 엄청난 규모는
아니지만 거대한 고분 사이로 우뚝 솟은 위풍당당함과 그 세련된 곡선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첨성대는 7세기 중엽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한 것으로 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져 있는데,
네모난 창을 통해 별을 살펴봤다고 한다. 원통부 27단은 27대
선덕여왕을, 쓰인 돌 362개는 음력으로 1년을 뜻한다고 한다. 높이, 형태 등 하나하나에 깊은 뜻이 담겨 있는
첨성대는 가히 경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충분한 놀라운 건축물이다.
여름밤 경주는 동궁(東宮)과 월지(月池)에서 절정을 맞는다. 월지는 ‘달이 머무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동궁과
월지’는 궁전 건물과 호수로 이뤄진 왕실 정원이다. 신라시대 왕자(태자)들이 머물러 동궁으로 불렸고, 나라의
행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회의 또는 연회를 여는 곳이었다고 전해진다.
과거 이곳은 안압지로 불리기도 했는데, 1980년대 이곳에서 ‘월지(달이 비치는 연못)’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된 후 이곳을 ‘월지’라고 부른 것이 확인되어 2011년에 ‘동궁과 월지’라는 이름으로 변경했다.
월지는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도록
만들었는데,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고안한 신라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약 3만 점의 통일신라시대 문화재 중에서 엄선한 1,100여 점은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에서
만날 수 있다. 만약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 싶다면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통일신라의 문화를
살펴보며 경주 여행에 깊이를 더해 보는 것도 좋겠다.
어둠이 살짝 내려앉기 시작하자 발걸음이 첨성대로 향한다. 낮에 보는 첨성대도 아름답지만 진정한 멋은 밤에
드러난다. 은은한 조명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첨성대는 신비로운 느낌마저 자아낸다. 엄청난 규모는
아니지만 거대한 고분 사이로 우뚝 솟은 위풍당당함과 그 세련된 곡선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첨성대는 7세기 중엽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건립한 것으로 동양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대로 알려져 있는데,
네모난 창을 통해 별을 살펴봤다고 한다. 원통부 27단은 27대
선덕여왕을, 쓰인 돌 362개는 음력으로 1년을 뜻한다고 한다. 높이, 형태 등 하나하나에 깊은 뜻이 담겨 있는
첨성대는 가히 경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충분한 놀라운 건축물이다.
여름밤 경주는 동궁(東宮)과 월지(月池)에서 절정을 맞는다. 월지는 ‘달이 머무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동궁과
월지’는 궁전 건물과 호수로 이뤄진 왕실 정원이다. 신라시대 왕자(태자)들이 머물러 동궁으로 불렸고, 나라의
행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회의 또는 연회를 여는 곳이었다고 전해진다.
과거 이곳은 안압지로 불리기도 했는데, 1980년대 이곳에서 ‘월지(달이 비치는 연못)’라는 글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이 발굴된 후 이곳을 ‘월지’라고 부른 것이 확인되어 2011년에 ‘동궁과 월지’라는 이름으로 변경했다.
월지는 연못 가장자리에 굴곡을 주어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못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지 않도록
만들었는데, 연못을 넓은 바다처럼 고안한 신라인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약 3만 점의 통일신라시대 문화재 중에서 엄선한 1,100여 점은 국립경주박물관 월지관에서
만날 수 있다. 만약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고 싶다면 국립경주박물관에서 통일신라의 문화를
살펴보며 경주 여행에 깊이를 더해 보는 것도 좋겠다.
여름밤 경주의 정취를 만끽한 뒤 보문관광단지로 향한다. 보문관광단지는 8km의 아름다운 호반을 따라 전
지역이 온천지구 및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있고 각종 토산품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종합 상가, 놀이공원 등이
즐비하다. 온천 시설을 갖춘 The-K호텔경주 등 단지 내에 많은 숙박시설이 자리해 어디에서나 보문호반
길로 접근할 수 있다.
호수 중심에는 신라의 역사적 가치를 형상화한 조형물 ‘피움’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금관을 모티브로 신라
1,000년 역사를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형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아름다운 조명이 호수와 어우러져 근사한
야경을 선사한다. 탁 트인 호수를 벗삼아 걷는 한여름 밤의 산책은 여행의 여운을 만끽하기에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