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미경 l 사진 김성진
글 박미경 l 사진 김성진
제삼열 교사는 ‘익살’이라는 열쇠로 학생들의 마음을 연다. 짐짓 가벼운 농담으로 대화를 시작해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를 경쾌하게 만든다. 가령 이런 식이다. 새 학기 첫 만남에서 그는
눈과 코와 입 가운데 자신이 불편해 보이는 곳이 어디인지 학생들에게 묻곤 한다. 시각장애인인
선생님을 배려해 학생들이 코나 입을 먼저 말하면 그가 다시 질문을 던진다. “귀는 어떨 것 같아?”
이 대목에서 모두 웃음을 터뜨린다. 교실이 불쑥 환해진다.
“아이들의 ‘낯섦’을 풀어주는 게 핵심이에요. 시각장애인을 본 경험이 별로 없을 테니까요.
흰 지팡이를 보여주며 ‘이게 뭘까’ 하고 물으면 ‘지휘봉’, ‘사랑의 매’ 같은 답이 돌아서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져요. 금세 편하게 다가오죠. 나중엔 저한테 지팡이를 빌려달라고 장난을 치기도 해요.
‘제가 누구게요?’ 하고 묻고는 목소리를 바꿔 한 번 더 묻는 아이도 있고요.
유쾌하게 수용해 줘 참 고마워요.”
그가 늘 들고 다니는 시각장애인용 점자정보단말기 안에는 세상에서 가장 독창적인 출석부가
들어 있다. 자신이 가르치는 100여 명 학생의 이름 바로 옆에 그는 한 명 한 명의 특징을 세세히
기록해 두었다. 파란색을 좋아하는, 언니랑 잘 싸우는, 수업 시간에 팝콘을 잘 먹는…. 일일이
말을 걸어 목소리를 기억하며 소통하는데, 그렇게 적어둔 특성들이 많은 아이들과 지내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새 학기엔 이름만 덩그러니 있던 출석부가 학생들에 대해 알아갈수록
점점 더 풍성해진다. 이름을 불러주고 개성을 기억해 주는 것.
그의 소통 방식은 그대로 ‘사랑’의 방식이다.
목소리를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도, 그는 학생들에게 ‘말할 기회를 많이 주는’ 교사로 유명하다. 45분 국어
수업 중 15분 정도는 아이들이 각자의 생각을 말하도록 유도하는데, 그 도구로 자주 활용하는 것이 ‘그림
그리기’다. 학기 초엔 자기를 소개할 그림을, 개학 후엔 방학 동안에 있었던 일을 그림으로 그리게 한 뒤 그
그림을 말로 설명하게 하는 식이다. 처음엔 말하기를 어려워하던 아이들이 차츰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가기
시작한다. 점점 ‘시끄러워져 가는’ 교실이 그는 썩 마음에 든다.
“교과서 진도를 순서대로 나가지 않고 단원마다 다양한 수업을 시도하는 편이에요. 이를 위해 1년, 한 달,
한 시간 단위로 수업 계획을 촘촘히 세워둡니다. 교과서를 그때그때 눈으로 확인할 수 없으니 한 권을 통째로
외우다시피 해두고요. 품은 좀 들지만 만족감도 그만큼 커요. 공개수업 때 학부모들이 ‘준비를 많이 하신 것
같다’, ‘아이들과 소통하려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 말씀해 주셔서 꽤 흐뭇했어요.”
교과서뿐 아니라 학교 내 공간들도 모두 통째로 외워야 한다. 교문에서 몇 걸음을 걸어가면 현관, 교무실에서
몇 걸음을 걸어가면 계단, 우측으로 몸을 틀어 몇 걸음을 다시 가면 몇 반…. 학교를 옮길 때마다 그는 ‘그런
식’의 좌표를 머릿속에 빼곡히 그려둔다. 고맙게도 3년 전 부임한 이곳 오륜중학교는 적응하기가 좀 수월했다.
동료 교사 한 분이 곧 부임할 자신을 위해 각 공간에 점자 표지판을 부착해 준 덕분이다. 손 높이에 딱 맞는
그 표지판들이 그의 뇌리에 감동의 기억으로 새겨져 있다.
“선천성 녹내장을 안고 태어났어요.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12년간 국립서울맹학교에 다녔는데, 한 학교에서
오래 공부하다 보니 선생님이 친구 같고 부모님 같더라고요. 한 사람의 인생에 교사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피부로 느꼈고, 자연스레 저도 교사의 꿈을 꾸게 된 것 같아요. 국어 과목을 택한 것도 결핍 ‘덕분’
이에요. 책을 좋아하는데 점자도서가 부족하니 책을 점점 더 좋아하게 됐죠. 장애는 불편해요. 그래서 결핍을
느끼지만, 그래서 결핍 없는 세상을 상상하게 돼요. 그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하게 되고요.
장애는 저에게 날개이자 원동력이에요.”
2014년 수원 청명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초창기의 좌충우돌을 아직 생생히 기억한다.
시각장애인 교사에 대한 인적·물적 지원이 거의 없던 그때 그는 모니터를 TV에 연결하는 일부터 벽에 부딪혔다.
옆 반 선생님이나 복도를 지나가던 교감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면서 어찌어찌 수업을 해나가곤 했다. 그 시기를
함께한 첫 제자들이 요즘도 가끔 연락해 온다. ‘추억’이라는 별이 그때마다 마음에 뜬다.
“시각장애인 교사에게 배운 경험이 훗날 학생들의 삶에 작게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요. 자기와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을 줄여주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건강에 문제가 생겨 곧바로 임용고시를 준비할 수 없었던 그는 한동안 기업에서 직장인들의 어깨를 풀어주는
헬스 키퍼로 일한 적이 있다. 그 경험을 글로 써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산문부 대상을 받았다. 그 상금으로
지체장애인 아내와 열흘 간 유럽 여행을 다녀왔고, 볼 수 없는 남편과 걸을 수 없는 아내의 짜릿한 여행담을
『낯선 여행, 떠날 자유』라는 책에 담았다. 두 사람의 용기와 세상의 온기가 행간마다 고스란히 스며있다.
“그 여행을 통해 세상에는 ‘이유 없는 호의’도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저도 그런 호의를 베풀면서 글 쓰는
교사로 살아가고 싶어요.”
이유 없는 호의를 조건 없이 주고받는 세상. 마음으로 바라보는 그의 세상이 초여름 햇빛처럼 찬란하다.
“시각장애인 교사에게 배운 경험이 훗날 학생들의 삶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요. 자기와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을 줄여주고, 약자를 배려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