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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학교

요즘 학교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생도 교사도 힘들다.
과거와 비교하면 시설도 개선되고 교육 수준 역시 올라갔는데, ‘행복한 학교’ 이야기는 드물게 들려온다.
애써도 쉽게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그저 받아들여야만 할까.
다행히 다른 관점에서 교육을 바라보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양대 협력 명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이자 대안학교 ‘성장학교 별’의 교장 김현수 교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정라희 / 사진 이용기

소년원은 ‘나쁜 아이들’이 가는 곳이라고 여겼는데, 지내면서 겪어 보니 ‘가난하고 아픈 아이들’이 있는 곳이었다

사람과 세상을 들여다보는 정신과 의사

김현수 교수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다. 지치고 힘든 사람의 마음 속은 물론 사람들을 둘러싼 세상 속까지 들여다보려 노력한다. 덕분에 그의 일주일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병원 임상현장에서 환자를 만나고, 서울시 자살예방센터장으로서 자살예방정책 관련 일도 한다. 여기에 더해 대안학교까지 세워 20년 가까이 운영해오고 있다.
이토록 다양한 일에 몸담게 된 것은 청소년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오랜 관심의 시작은 1992년에 공중보건의로 근무할 때였다. 그가 발령받은 곳은 한 소년원이었다. 이전까지 소년원은 ‘나쁜 아이들’이 가는 곳이라고 여겼는데, 지내면서 겪어 보니 ‘가난하고 아픈 아이들’이 있는 곳이었다.
“지적 장애 혹은 ADHD인 아이들이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이 소년원에 많이 있었어요. 제때 사회적 지원을 받았다면 소년원까지 오지 않았을 아이들이었습니다. 그곳에 있을 때 학교에 가서 범행하는 아이들보다 학교에 가지 않아서 범행하는 아이들이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 시절 경험이 진로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 것일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되고 보니 그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의사로서 도전해볼 만한 일이 많아졌다. 첫 단추는 ‘도시 속 작은 학교’ 운동이었다. 이는 공교육에서 중도탈락한 아이들이 다닐 수 있도록 작은 학교를 도시 곳곳에 만들자는 취지로 진행된 사회운동이다. 하지만 이곳에 모인 아이들도 다양한 정서적 문제를 겪고 있었다. 이전과 다른 시스템이 필요했다. 그렇게 치유적 대안학교 ‘성장학교 별’을 열었다.

스스로 결정하며 치유되고, 성장하는 아이들

성장학교 별에 오는 이유는 다양하다. 제도권 교육과 맞지 않았던 아이, 따돌림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고 힘든 시간을 보냈던 아이는 물론 ADHD나 아스퍼거 증후군, 고기능 자폐 등을 가진 아이들도 이곳에 온다. ‘치유적 대안학교’로 소개되지만 학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교육의 기준은 ‘협력’과 ‘자발성’이다.
“성장학교 별에서는 학교의 제도를 구성원들이 함께 만들고 결정합니다. 커리큘럼도 ‘3분의 1 법칙’을 적용해서 학기마다 학생·학부모·학교가 각각 의견을 내서 만들어요.”
성장학교 별에서는 교사들의 공약을 보고 담임 선생님을 선택하며, 졸업 역시 학생들이 원하는 때에 할 수 있다. 학교에 다니는 모든 과정에 대해 학생들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이다.
사실 이제까지 한국의 교육은 효율성을 이유로 정해 놓은 방식을 따르게 하는 일이 많았다. 그 과정에서 경계선 장애가 있거나 사회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은 더 쉽게 소외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할 수 있고, 하기 싫은 일은 거부할 수 있음을 경험하고, 그 과정을 공유하면서 아이들은 서서히 치유되어 간다. 대화를 통해 이루어가는 일이기에 서로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은 최소화할 수 있다.
“빼앗긴 삶의 주권을 되찾는 일이라고 할까요? 자기 삶의 문제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이 삶의 문제를 다시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결정권을 사용해보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성장학교 별에 오기 전의 아이들은 자기 결정에서 소외된 경험을 압도적으로 많이 했거든요. 자기 의사의 표현, 자기 결정의 사용은 심리적 안정과 자기주장성, 참된 자신의 회복 등 많은 측면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성장학교 별에서는 모두가 변한다. 학교가 자유롭고, 선택할 수 있으며,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하는 까닭이다. 그뿐만 아니라 점수도, 등수도 없다.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는 경험을 통해 유명한 예술학교에 진학하는 아이들도 생겼다. 개인적인 상담이나 치료 대신 학교의 분위기와 제도, 시스템으로 일군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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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이 어떻게 ‘질병’이라 할 수 있을 만큼의 심리적 아픔을 겪고 소진되는지에 대한 그 이유와 양상 그리고 치유법까지 다루었다.

교사들도 마음상처로 아프고, 힘들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는 학교 분위기와 제도의 중요성을 체감했다. 입시 중심의 편파적인 교육은 학벌과 서열주의를 강화하고, 결과적으로 사회의 건강성을 해친다. 신자유주의가 도래하면서 학교를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고전적인 교육 기관으로써의 학교는 사라지고, 학교를 형식적으로 거쳐 가는 곳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커졌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도 교직에 대한 자부심을 잃고, 감정적으로 소진되는 일을 자주 겪는다.
“학교 설립을 준비하면서 교사들을 자주 만났어요. 그분들은 교육에 문외한인 저에게 학교에 관해 제일 잘 알려줄 전문가들이니까요. 학교폭력이나 ADHD 학생을 지도해본 경험을 비롯해 교육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례를 경험해본 분들이었습니다.”
교육에 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시작한 만남. 반대로 교사들도 그에게 묻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렇게 2005년부터 한 교사를 통해 몇몇 교사들이 모이는 작은 모임에 나갔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상처가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교사들도 치유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쓴 책이 2013년에 출간한 「교사 상처」다. 이는 교사들의 마음 상처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효시와 같은 책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이전에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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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의 문제로 말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개인의 문제로 드러내기는 누구나 어렵습니다. 개인이 노출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개인의 문제로 말하기를 어려워해요. 교사 집단에 대한 사회적 지지 역시 예전보다 낮아졌고요. 오해받기는 쉬운데 이해받기는 어려우니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지요.”
이 책을 계기로 상담을 요청하는 교사들이 생겨났다. 자연히 교사들의 심리적 어려움과 상처, 트라우마 등에 관한 사연을 더 자주 접하게 되었다. 그래서 「교사 상처」의 후속편이라 할 수 있는 「선생님, 오늘도 무사히!」를 썼다. 「교사 상처」가 총론에 해당한다면 「선생님, 오늘도 무사히!」는 각론이라 할 수 있다. 교사들이 어떻게 ‘질병’이라 할 수 있을 만큼의 심리적 아픔을 겪고 소진되는지에 대한 그 이유와 양상 그리고 치유법까지 다루었다.
주인공이 출간한 책 이미지

‘나’를 치유하기 위해 ‘우리’를 보는 법

학생 수는 전보다 줄었다고 하는데 교사들이 빠르게 소진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의 교사는 가르치는 일을 주로 했지만, 현대의 교사에게 요구되는 노동은 무척 다양하고 복잡하다. 수업에 대한 기대가 올라간 것은 물론이고 상담과 행정, 돌봄, 지원 등 한 사람이 감당해야 하는 역할은 커지고 책임은 더 무거워졌다.
“교사의 소진은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교육 수요가 무척 다양하고 지식의 종류는 늘어났는데 교사 한 사람이 수용할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지요. 학교를 싫어하는 아이들을 설득하고, 동기를 부여해도 돌아서면 상황이 달라지는 일을 수시로 겪고요.”
근무 연수 10년 이상의 교사들을 만나 상담하면서 그가 정리한 교사 치유의 네 단계는 ‘자기 자각(self-awakening)’, ‘자기 파악과 이해(self-awareness)’, ‘자기 공감(self-compassion)’, ‘자기 조절(self-regulation)’이다. 자신을 제대로 보고, 알 수 없이 힘들었던 마음의 원인을 파악하며, 상황의 맥락 가운데 받아들일 것과 거부할 것의 경계를 세우고, 자신에게 공감해주는 것이다. 그러자면 사회적 지지도 필요하다. ‘나를 치유하려면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책 속의 한 문장. 결국 김현수 교수가 그리는 학교의 참모습은 학생도 교사도 행복한 곳이다. 우리 사회의 아픈 부분이 개인의 문제로만 여겨지지 않기를 바라며, 김현수 교수는 보이지 않는 사회의 아픈 구석에 관심을 계속 기울일 것이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