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증’은 반대 증거, ‘방증’은 간접증거
‘한류의 확산은 한국이 문화적으로도 성장했음을 반증한다’는 문장에서
‘반증’이 바르게 쓰인 것일까? ‘반증’과 ‘방증’은 대부분 사람이 헷갈리거나 쓸 때마다 자신 없어 하는 단어다.
반증(反證)은 어떤 사실이나 주장이 옳지 않음을 그에 반대되는 근거를 들어 증명하는 것이다.
또는 그런 증거를 뜻한다. ‘그 사실을 뒤집을 만한 반증이 없다’, ‘그의 주장은 논리가 워낙
치밀해 반증을 대기가 어렵다’처럼 쓴다.
한편, 방증(傍證)은 사실을 직접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되지는 않지만
주변 상황을 밝힘으로써 간접적으로 그 증명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증거를 의미한다.
‘다양한 사례 제시는 선생님의 해박한 지식을 방증하는 듯했다’처럼 사용된다.
‘방증’은 ‘증거’ 또는 ‘증명’으로 바꿔도 말이 잘 통한다. 따라서 ‘다양한 사례
제시는 선생님의 해박한 지식을 증명하는 듯했다’로 해도 말이 된다.
서두에서 언급한 ‘한류의 확산은 한국이 문화적으로도 성장했음을 반증한다’라는
문장에서는 반대되는 근거가 아니라 간접증거라는 의미로 쓴 것이므로 ‘반증’이 아니라
‘방증’으로 바꿔 말해야 한다. 헷갈릴 때는 ‘방증’은 (일반적) 증거, ‘반증’은 반대되는 증거라 생각하면 된다.
평화통일은 ‘지향’해야 할까? ‘지양’해야 할까?
‘남북한은 평화통일을 지양해야 한다’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지향’과 ‘지양’ 역시 발음과 철자가 비슷하다 보니 혼동하기 쉬운 단어다.
지양(止揚)은 더 높은 단계로 오르기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런 행동을 지양합시다’, ‘정쟁을 지양하고 경제를 우선해야 한다’
등처럼 사용한다. 그와 달리, 지향(志向)은 어떤 목표로 뜻이 쏠려 향함을 의미한다.
또는 그 방향이나 그쪽으로 쏠리는 의지를 뜻하는 말이다. ‘시장경제를 지향한다’, ‘복지국가를 지향한다’처럼 쓴다.
서두의 ‘남북한은 평화통일을 지양해야 한다’는 문장은 결과적으로 평화통일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하게 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남북한은 평화통일을 지향해야 한다’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향’과 ‘지양’은 둘 다 부조리한 요소를 극복하며 한 가지 목표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닮은꼴이다. 그러나 ‘지향’은 최종 도달점을 강조한 것이고,
‘지양’은 도달점에 이르기 위해 좋지 않은 것을 치워내야 한다는 당위성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더욱 쉽게 정리하면 ‘지향’은 나아갈 방향이고, ‘지양’ 은 하지 않거나 피하는 것이다.
시세는 ‘조정’하는 것일까, ‘조종’하는 것일까?
증권가에서는 시세를 조작하다 적발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렇다면 이는 ‘시세 조정’이라 해야 할까, ‘시세 조종’이라 해야 할까?
조종(操縱)은 비행기나 자동차 등 기계를 부리거나 사람, 돈 등을 자기 마음대로 다뤄 움직일 때 쓴다.
비행기 조종, 원격조종, 자동조종 등은 기계를 다루는 경우이고, 배후 조종, 시세 조종은
사람이나 돈, 가격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는 경우다.
반면, 조정(調整)은 알맞게 정돈할 때 쓴다. 선거구 조정, 버스 노선 조정, 공공요금 조정,
구조조정 등 불합리하거나 비현실적인 부분을 바로잡는다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기계를 다룰 때 쓰는 ‘조종’을 제외하고 구별한다면, ‘조종’은 자기 의도대로 어떤 것을 쥐락펴락할 때 쓰고,
‘조정’은 개선하거나 조절할 때 쓴다. ‘조종’은 좋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고, ‘조정’은 바람직한 일을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시세를 자기 마음대로 부리면서 자기 이득을 챙기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시세 조종’이라고 해야 맞다. ‘시세 조정’이라고 하면
시세를 알맞게 바로잡는다는 의미가 되므로 그리 나쁠 것이 없는 말이 된다.
‘안주 일절’은 안주가 전혀 없다는 말
과거 포장마차에는 ‘안주 일절’이라고 적어놓은 곳이 꽤 많았다.
그렇다면 이 ‘안주 일절’은 문제가 없는 표현일까? 일절(一切)은 ‘아주’, ‘전혀’, ‘절대로’의 뜻으로 ‘없다’, ‘않다’ 등
부정적 단어와 어울린다. ‘너랑은 일절 만나지 않겠다’, ‘일절 출입을 금합니다’ 등처럼 쓴다.
따라서 ‘안주 일절 없음’, 즉 ‘안주 전혀 없음’은 될 수 있어도 ‘안주 일절 있음’은 될 수 없다.
‘모든 것’ 또는 ‘모두 다’를 뜻하는 단어는 일체(一切)다. ‘내가 일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
‘한잔 마시고 지나간 일은 일체 털어버리자’처럼 사용한다. 그러므로 ‘안주 일절’은 ‘안주 일체’라고 해야 맞다.
손님이 많아 안주가 일찌감치 바닥나면 그 순간만큼은 ‘안주 일절 (없음)’이 맞긴 하다.
한자[一切]는 같으면서도 ‘일절’과 ‘일체’로 다르게 읽을 수 있는 것은 ‘切’이라는 한자가 ‘끊을 절’,
‘모두 체’의 두 가지 뜻과 음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외상 일체 사절’은 어떨까. ‘외상 절대 사절(안 돼)’이라는 뜻이므로 ‘외상 일절 사절’이라고 해야 올바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