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하듯 가볍게, 청춘답게 즐겁게
한가로이, 가볍게, 이리저리. ‘산책’은 그런 태도로 거니는 걸 뜻한다.
숨을 고르고 힘을 빼며 하는 일이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위로가 되는 낱말이다. Muzik Stroll은 다양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뜻의 ‘Muzik’과 산책이라는 뜻의 ‘stroll’을 합한 단어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 속을 오순도순 도란도란 거닐어가는 것. 4명의 교사가 2년 전부터 함께해 오고 있는 일이다. 단지 그 일을 시작했을 뿐인데 삶이 놀랍도록 빛난다. 음악의 힘이다.
“거제시엔 젊은이들을 위한 문화시설이 별로 없어요. 취미거리가 마땅치 않으니 퇴근 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았죠.
음악 동아리를 만들면 저녁 시간을 즐겁게 보낼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우리 학교 선생님 중에 악기를 다루는 분들을 찾아보기 시작했어요. 60명 넘게 수소문한 끝에 지금의 멤버가 꾸려졌죠.”
Muzik Stroll의 리더이자 색소폰 담당인 음악 교사 장주학 씨의 말이다.
드럼은 체육 교사 윤성은 씨, 건반은 음악 교사 김예슬 씨, 베이스기타는 과학 교사 류지민 씨가 맡고 있다.
만 26세부터 만 33세에 걸쳐 있는 네 사람은 ‘음악을 좋아하는 청춘’이라는 공통분모로 매우 빨리 가까워졌다.
김예슬 교사를 제외한 세 사람은 계룡중학교가 ‘첫 부임지’라는 또 하나의 공통점을 갖고 있다. 초기 직장 생활의 애환이며 교사로서의 포부 등을 나눌 수 있어 이보다 든든할 수 없다.
“팀을 꾸릴 때 가장 먼저 생각한 이름은 ‘섬마을선생님’과 ‘섬선생즈’였어요.
재미있는 이름이라 생각했는데 세 분의 반응이 별로더라고요. 고민 끝에 ‘Muzik Stroll’로 정했어요.
우리가 프로 음악인이 아니니 가벼운 마음으로 즐겁게 해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름대로 가고 있어서 흐뭇해요.”라고 장주학 교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계룡중학교는 교육부 지정 음악 중점학교다. 글자 그대로 아이들의 음악적 역량을 길러주는 학교. 오케스트라나 합창 등 다양한 음악 활동을 통해 음악을 즐기는 법을 아이들 스스로 배워 나가게 하고, 음악반은 전문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수준의 실기와 이론 교육을 받는다. 이런 학교에서 교사들의 음악 동아리 활동은 학생들에게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아마추어 교사들의 아름다운 음악 활동을 지켜보며 아이들이 “우리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는 말을 종종 한다. 말로 가르치기 전에 행동으로 먼저 보여주는 것, 그것이 최고의 교육이라는 걸 네 사람은 이미 경험으로 안다.
거제시 장목면에 위치한 w181 공연장의 홍보 배너 앞에 모인 맴버들
2021년, 계룡중학교 교내에서 자선 버스킹을 진행 중인 학생들
음악과 나눔의 현장, ‘자선 버스킹’에서 만나 교감하다
“교내에 ‘계모임’이라는 게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 마음 맞는 교사들끼리 취미 생활을 함께하는 활동이에요. 주로 그 시간에 연습해요. 공연 일정이 잡히면 연습 시간을 더 늘리고요. ‘자선 버스킹’을 앞두곤 매일같이 모여 연습했어요. 뜻깊은 행사에 참여해 뿌듯한 마음이었지만, 퇴근 후 매일 모여 연습한 그 시간이 정말 행복했죠.” 류지민 교사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 묻어 있다.
‘자선 버스킹’은 지난해에 이어 ‘Muzik Stroll’이 2년째 진행 중인 나눔 공연이다. 첫해였던 지난해엔 학교 내에서 공연을 했다.
관중이자 기부자인 학생들이 모금함에 넣어준 1,000원 이하의 동전을 1년간 모았다.
기부금은 형편이 어려운 교내 학생에게 장학금으로 전달했다. 기부금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나눔을 통해 공연의 기쁨과 보람이 한층 커졌다.
올해는 공연 장소를 밖으로 옮겨봤다. 여름이 시작되던 지난 6월,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거제시 장목면 한 카페에서 ‘자선 버스킹’을 마련한 것이다. 장목면장과 지역 주민, 카페 손님 등이 그날의 관객이었다.
객석은 야외 테라스까지 꽉꽉 들어찼고, 모금함도 그 어느 때보다 빼곡하게 들어찼다.
장주학 교사는 행복했던 공연장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벅차요. 그렇게 많은 분이 와주실 줄 몰랐고, 다들 그렇게 좋아해 주실 줄 몰랐어요. 그날 우리가 들려드린 음악이 총 7곡의 재즈였어요.
지역 주민들에게 선보이는 공연이니 가요가 적합하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결국 우리가 좋아하는 곡을 들려드리자고 용기를 냈죠. 뜨겁게 호응해 주셔서 정말 고맙고 행복했어요.”
지역 주민들과 함께한 '나눔'이라는 감동
공연이 끝난 뒤 “그 곡 제목이 뭐냐”고 묻는 관객이 많았다. 비교적 대중적인 곡을 골랐어도, 주민들에겐 다소 낯설었다는 얘기다. 그래서 오히려 자신감이 생겼다. 제법 낯설고 조금 어려워도, 음악으로 서로의 마음을 연결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날 하루 모금액은 80여만 원. 그 귀한 돈을 어떤 학생에게 어떤 방식으로 전달해야 할지, 그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버스킹이라는 공연 형식이 편안하고 자유롭잖아요. 클래식 전공자인 저에겐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큰 즐거움이에요. 근데 그걸 ‘자선’과 결합하니 상상도 못 한 기쁨이 됐어요. 새로운 도전을 하게 해준 멤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어요.” 김예슬 교사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자선 버스킹’은 여러모로 그들에게 ‘좋은 숙제’를 남겼다. 지역 주민 속으로 들어가는 공연을 계속해 보고 싶다는 꿈, 나눔의 의미를 지닌 공연을 지속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는 소망. 장소 섭외부터 행사 진행까지 어려운 요소가 산더미였지만, ‘자선 버스킹’을 또 언제 하느냐는 학생들의 물음에 마음이 다시 바빠진다.
“전 음악 전공자도 아니고 악기를 잘 다루는 편도 아니에요. 근데 보잘것없는 제 재능을 누군가를 돕는 일에 쓸 수 있다는 게 너무 기쁘더라고요. ‘자선 버스킹’이 너무 뜻깊어서, 각자 다른 학교로 부임해 가더라도 이 공연만큼은 지속해 나갔으면 해요.” 류지민 교사의 말에 또 한 번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따로 놀던 음과 박자가 하나로 맞아가는 행복
‘Muzik Stroll’ 활동을 시작하면서 그들에겐 확연히 달라진 점이 있다. 무덤덤한 일상에 엄청난 활력이 생겼다는 점이다. 거제시엔 젊은 직장인들이 저녁에 즐길 만한 문화적 인프라가 별로 없다. 하지만 이젠 아니다. 그들이 보내는 하루하루에 청춘다운 활기와 생기가 가득하다. 학생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변화가 생겼다. ‘팬’을 자처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게 매우 큰 힘이 된다.
“독학으로 드럼을 배운 지 15년쯤 됐어요. 체육 교사가 되지 않았다면 드러머가 되고 싶었을 정도로 드럼은 제 삶의 일부죠. 그런데 그걸 혼자 연주할 때와 여럿이 함께 연주할 때의 만족감은 비교조차 안 되더라고요. 제 드럼 소리를 바탕으로 서로의 연주가 맞아 들어갈 때의 기쁨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아요.” 교내 체육부장을 맡아 책임이 무거워진 윤성은 교사는 음악 동아리 활동으로 삶의 균형을 찾고 있다. 바쁠수록 음악이 ‘위로’가 된다는 걸 그는 온몸으로 깨닫고 있다.
윤성은 교사의 말대로 그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순간은 ‘합’ 이 맞을 때다. 따로 놀던 음과 박자가 거짓말처럼 맞아 드는순간, 그때의 황홀함이 그들을 자꾸 연습실로 이끈다. 오늘 그들이 연습하는 곡은 ‘블루 보사’와 ‘플라이 투 더 문’. 연주가 끝나자 그들이 미소 가득한 눈빛을 교환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연주가 끝났다는 뜻이다. 그들에게 ‘음악’이 어떤 존재인지, 그들에게 ‘함께’가 어떤 의미인지, 비로소 온전히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