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우인재 여행작가 / 사진 제공 고창군청
천년 고찰과 판소리의 고향에 찾아온 가을 향기
서해와 인접한 전라북도 끝자락에 있는 고창군은 외지인에게 고창읍성과 천년 고찰 선운사로 잘 알려진 고장이며, 판소리의 대가인 동리 신재효 선생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유구한 역사와 고색창연한 유산을 지닌 이곳에 9월이 시작되면 외지인은 물론 고창 토박이들까지 고창군 공음면 일원의 너른 들판으로 몰려든다. 광활한 메밀밭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이곳은 학원농장(063-564-9897, www.borinara. co.kr)이 조성한 경관 작물 농경지로 청보리, 유채, 해바라기, 코스모스, 메밀꽃 등 봄부터 가을까지 다채로운 꽃의 향연이 여행자를 유혹하는 고창의 대표 명소다.숨 막힐 듯 아름다운 메밀밭 풍경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꽃무릇의 붉은 물감 흩뿌려 놓은 선운산 자락
이 시기에 학원농장과 함께 반드시 들러야 할 계절의 명소가 바로 천년 고찰 선운사(063-561-1422, http://www. seonunsa.org)다. 신라 진흥왕이 창건한 절로 조선 성종 임금 때 전각이 무려 189채에 달할 정도로 크게 중창(重創)되었으나 정유재란으로 본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화마에 소실되었다. 현존하는 주요 건물로는 보물 제290호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명부전, 만세루, 산신각, 천왕문 등이 있는데 대부분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그 가치가 매우 높다.산책하듯 즐기는 아름다운 조선의 읍성
고창 읍내의 번화가 바로 옆에 위치하는 고창읍성(063-560-8067)은 현존하는 전국의 산성과 읍성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성곽 중 하나로 꼽아도 손색없다. 조선시대의 석축 성으로, 성벽의 총 둘레가 약 1.7km, 높이 4~6m가량인 고창읍성은 동쪽에 솟아오른 나지막한 반등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며 동문과 서문, 북문까지 3개의 문과 여섯 곳의 치(雉), 그리고 성문을 반원형으로 둘러싼 세 곳의 옹성(甕城)을 갖추고 있어 평소에는 행정의 중심지였다가 왜구의 침입 등 위급 시 군사 방어 시설로 활용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읍성 철폐령에도 불구하고 해미읍성, 낙안읍성과 함께 그 형태가 온전히 남겨진 몇 안 되는 읍성 중 하나이며, 봄철에는 성곽 주변을 둘러싼 벚꽃과 철쭉이 장관을 이뤄 많은 여행자가 찾는 고창의 대표 명소로 꼽힌다.고인돌, 거석문화의 신비를 만나다
고창이 한반도 고인돌의 집산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거대한 바위를 일종의 무덤으로 삼은 고대 유적인 고인돌은 고창을 비롯해 전남 화순, 인천 강화 지역에 분포하는데, 특정 지역에 수백 기 이상의 고인돌이 분포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유네스코는 한반도 세 지역의 고인돌 군집이 “기원전 100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장례 및 제례를 위한 거석문화 유산”이며 “세계의 다른 어떤 유적보다 선사시대의 기술과 사회상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라는 점을 들어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유를 설명했다.방금 뽑은 면으로 맛보는 메밀국수
메밀꽃의 계절인 만큼 메밀로 만든 국수를 맛보아야 초가을 여정의 방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메밀은 칼로리가 낮고 무기질이 풍부하며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는 훌륭한 식재료이므로 건강에도 매우 이롭다. 고창버스터미널 인근에 있는 혜성메밀(063-563-3009)은 고창군이 인증한 모범음식점이면서 농촌우수농가로 지정된 곳이기도 해 믿고 먹을 수 있는 맛집이다. 주문하면 곧바로 메밀 반죽을 기계에 넣어 뽑은 면으로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보통의 메밀 요리 집보다 조금 오래 기다려야 하지만 그만큼 믿을 수 있는 먹거리로 보답한다. 물·비빔메밀국수, 들기름막국수, 메밀로 빚은 왕만두 등이 이 집의 대표 메뉴다.집밥이 그리울 때는 순두부 백반
고창읍성은 고창 토박이 사이에 모양성(牟陽城)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지역이 백제 시대 모량부리라는 지명으로 불렸기 때문. 모양성이라는 이름을 상호로 활용한 모양성순두부(063-564-0337)는 거창한 메뉴를 내는 집은 아니지만 순두부, 청국장, 전골, 보쌈 등 집밥 생각나는 반찬과 정갈한 상차림, 그리고 말끔한 시설 덕분에 여행자들의 단골집으로 자리 잡았다. 고창군이 모범음식점으로 지정한 이 집의 대표 먹거리는 당연히 순두부. 빨간 순두부는 매콤한 육수를 더한 인기 메뉴로 꼽히며, 바지락 육수로 끓인 하얀 순두부도 맛있다. 고창식으로 만든 손두부인 모양성 두부도 맛보자. 두부와 버섯을 넣은 전골이나 고등어구이, 왕만두 등을 곁들여도 좋다.약재로도 쓰이는 영양 만점 풍천장어
주진천(인천강)이 서해의 곰소만과 만나는 강 하구언에서 잡히는 장어를 흔히 ‘풍천장어(風川長魚)’라고 부른다. 여기서 풍천은 짠물과 민물이 만나는 구간(기수역)을 뜻하는데, 특히 주진천은 기수역(汽水域)이 10km에 이를 정도로 길다. 그 때문에 바다로 나가는 장어가 짠물에 적응하기 매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어 바로 이 강 하구언에서 잡히는 장어를 풍천장어라 지칭했다. 여기서 잡힌 장어는 육질이 좋고 맛이 유난히 좋을 뿐 아니라 예로부터 약재로 쓰일 정도로 영양 성분을 풍부히 함유한 식재료로 유명하다. 양념구이도 맛있지만 장어 본연의 맛을 즐기기에는 소금만 뿌려 담백하게 구운 소금구이가 제격이다. 선운사 주변과 읍내 곳곳에 풍천장어를 취급하는 전문 식당이 있는데 그중 우리풍천장어(063-563-8882), 석정풍천장어(063-564-0592)가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