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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tember 2022 Vol.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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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곱하기

방방곡곡 숨은 명소

학원농장 메밀밭
전북 고창군에 9월이 찾아오면 20만 평에 달하는 드넓은 구릉지에 메밀꽃이 만개해 가을의 초입을 알린다. 그뿐 아니라 천년 고찰 선운사 입구 주차장에서 경내로 이어지는 울창한 숲길은 이맘때면 붉은 꽃무릇(상사화)이 흐드러지게 피어나며 여행자를 유혹한다. 두 곳의 제철 여행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고창읍성과 고인돌박물관까지 돌아본다면 살뜰한 초가을 여행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글/사진 우인재 여행작가 / 사진 제공 고창군청

우인재 작가는 10여 년간 출판사에서 여행 콘텐츠 기획 및 취재를 담당했다. 아시아나항공 기내 가이드북 로스앤젤레스 편을 비롯해 대한생명, 교보생명, 외환은행 등 보험·금융사 고객용 여행 가이드북을 기획 및 제작했다. 또 월간 「DOVE」, 「모터트렌드」 등의 매체를 비롯해 인천공항공사, 롯데백화점, 조달청, 롯데제이티비, LS전선 등 기업체 사보에 여행, 드라이브 원고를 기고했다. 현재 프리랜서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천년 고찰과 판소리의 고향에 찾아온 가을 향기

서해와 인접한 전라북도 끝자락에 있는 고창군은 외지인에게 고창읍성과 천년 고찰 선운사로 잘 알려진 고장이며, 판소리의 대가인 동리 신재효 선생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유구한 역사와 고색창연한 유산을 지닌 이곳에 9월이 시작되면 외지인은 물론 고창 토박이들까지 고창군 공음면 일원의 너른 들판으로 몰려든다. 광활한 메밀밭이 끝도 없이 펼쳐지는 이곳은 학원농장(063-564-9897, www.borinara. co.kr)이 조성한 경관 작물 농경지로 청보리, 유채, 해바라기, 코스모스, 메밀꽃 등 봄부터 가을까지 다채로운 꽃의 향연이 여행자를 유혹하는 고창의 대표 명소다.
일렁이는 물결처럼 부드럽게 굽이치는 구릉지대 위에 뿌려진 메밀은 8월 말에 개화하기 시작해 9월 중순이면 새하얀 꽃이 활짝 피어난다. 마치 소금밭처럼 반짝이는 메밀꽃은 20만 평에 달하는 농장의 절반 가까운 면적을 차지할 만큼 규모가 커 한낮에는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하게 빛난다. 8월 말에 개화하기 시작하는 메밀꽃은 10월까지 피기 때문에 개화 시기를 맞춰야 하는 꽃과 달리 여행 계획을 잡기도 편하다.
학원농장의 해바라기 군락지 옆으로 꽃마차가 달리는 그림 같은 풍경 학원농장의 해바라기 군락지 옆으로 꽃마차가 달리는 그림 같은 풍경

숨 막힐 듯 아름다운 메밀밭 풍경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
메밀밭 사이를 산책하노라면 누구나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마음 한편이 몽글몽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효석 작가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등장인물들이 나귀를 끌고 메밀밭을 지나는 대목에서 숨이 막힐 지경의 몽환적 풍경이 연출되는데, 이처럼 메밀꽃이 사방을 온통 뒤덮으면 학원농장을 방문한 사람들은 어느덧 소설 속 주인공이 되어버린다. 무성한 메밀밭에 가려 끊어질 듯 또다시 이어지는 탐방로를 따라 끝도 없이 그저 걷고만 싶어지는 낯선 경험도 반갑게 느껴질 정도다. 이런 환상적인 풍경 덕에 학원농장 메밀밭은 몇 년 전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로 낙점되기도 했다.
학원농장에는 메밀꽃만 있는 것이 아니다. 9월 말까지 1만여 평의 해바라기와 8,000평 규모의 백일홍 및 황화코스모스 군락지가 형성되기 때문. 더구나 올해는 여름 동안 파종한 해바라기의 발아와 생육이 양호해 경관이 매우 아름다울 것으로 예상된다. 농장에서 운영하는 식당과 카페 앞 뜰에서도 메밀과 해바라기를 파종하므로 초가을의 따가운 햇살을 피해 이곳에서 여유롭게 꽃을 감상하는 기회도 놓치지 말자. 카페에서는 학원농장의 대표 농작물인 보리를 넣은 음료 새싹보리 카페라테와 고창 특산물 복분자를 첨가해 만든 복분자 카페라테도 판매한다. 고소한 보리 미숫가루를 넣어 만든 복분자 옛날 팥빙수도 별미다.
메밀밭에 세워진 원두막은 초가을 청취를 더한다 메밀밭에 세워진 원두막은 초가을 청취를 더한다

꽃무릇의 붉은 물감 흩뿌려 놓은 선운산 자락

이 시기에 학원농장과 함께 반드시 들러야 할 계절의 명소가 바로 천년 고찰 선운사(063-561-1422, http://www. seonunsa.org)다. 신라 진흥왕이 창건한 절로 조선 성종 임금 때 전각이 무려 189채에 달할 정도로 크게 중창(重創)되었으나 정유재란으로 본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화마에 소실되었다. 현존하는 주요 건물로는 보물 제290호 대웅전을 비롯해 영산전, 명부전, 만세루, 산신각, 천왕문 등이 있는데 대부분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어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선운사는 그 자체의 문화재적 가치만으로도 훌륭하고 아름다운 사찰이지만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리는 선운산도립 공원의 수려한 산세 또한 대단한 볼거리다. 더구나 이 무렵은 선운산 자락에 붉은 물감이라도 뿌려놓은 듯 만개한 꽃무릇으로 천지가 빨갛게 물드는 시기이므로 반드시 선운사를 찾아야 한다. 불교에서는 꽃무릇을 ‘천상의 꽃’이라 해 만수사화(曼殊沙華)라고 부르거나 지상의 마지막 잎까지 말라 사라진 곳에서 화려한 꽃을 피운다는 의미를 담아 피안화(彼岸花)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흡사 불꽃 같은 꽃의 형태 때문에 집에 들이면 화재가 일어난다는 속설도 있다.
꽃무릇은 보통 가을의 초입인 추석 언저리에 꽃을 피우기 시작해 ‘가을의 전령’이라고도 한다. 도립공원 초입의 주차장에서 시작된 꽃무릇의 바다는 생태숲 일원과 일주문을 거쳐 계곡 전체와 선운사 경내까지 이어진다. 울창한 숲 사이로 쏟아지는 한낮의 빛줄기 아래, 마치 붉은 등불처럼 발그레한 자태를 내어 보이는 꽃무릇은 수령이 고목들과 어우러져 계절의 변화를 알려주는 반가운 존재로 여겨진다.
주차장에서 천왕문까지는 약 1.5km로, 걷기에도 그리 부담되지 않는 거리이니 마음에 여유를 챙겨 넣고 천천히 꽃무릇의 아름다움을 만끽해 보는 것은 어떨까
선운사 영산전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선운사 영산전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 선운산의 꽃무릇 가을을 알리는 전령사 선운산의 꽃무릇
고창읍성은 원형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조선시대 읍성이다 고창읍성은 원형이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조선시대 읍성이다

산책하듯 즐기는 아름다운 조선의 읍성

고창 읍내의 번화가 바로 옆에 위치하는 고창읍성(063-560-8067)은 현존하는 전국의 산성과 읍성을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성곽 중 하나로 꼽아도 손색없다. 조선시대의 석축 성으로, 성벽의 총 둘레가 약 1.7km, 높이 4~6m가량인 고창읍성은 동쪽에 솟아오른 나지막한 반등산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며 동문과 서문, 북문까지 3개의 문과 여섯 곳의 치(雉), 그리고 성문을 반원형으로 둘러싼 세 곳의 옹성(甕城)을 갖추고 있어 평소에는 행정의 중심지였다가 왜구의 침입 등 위급 시 군사 방어 시설로 활용되었다. 일제강점기 당시 읍성 철폐령에도 불구하고 해미읍성, 낙안읍성과 함께 그 형태가 온전히 남겨진 몇 안 되는 읍성 중 하나이며, 봄철에는 성곽 주변을 둘러싼 벚꽃과 철쭉이 장관을 이뤄 많은 여행자가 찾는 고창의 대표 명소로 꼽힌다.
고창읍성을 제대로 둘러보고 싶다면 북문으로 진입해 성벽 위로 이어지는 성곽 둘레길을 따라 한 바퀴 산책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성 안쪽에는 울창한 숲이 형성되어 있어 여전히 뜨거운 9월 한낮의 뙤약볕을 피할 수 있다. 또 전체를 돌아보기 부담스럽다면 동문까지만 둘러본 뒤 안쪽으로 내려와 동헌, 내아 등을 구경하는 방법도 있다.

고인돌, 거석문화의 신비를 만나다

고창이 한반도 고인돌의 집산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거대한 바위를 일종의 무덤으로 삼은 고대 유적인 고인돌은 고창을 비롯해 전남 화순, 인천 강화 지역에 분포하는데, 특정 지역에 수백 기 이상의 고인돌이 분포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유네스코는 한반도 세 지역의 고인돌 군집이 “기원전 100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장례 및 제례를 위한 거석문화 유산”이며 “세계의 다른 어떤 유적보다 선사시대의 기술과 사회상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라는 점을 들어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고창은 세 지역 중 가장 많은 1,500기 이상의 고인돌이 분포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고창읍 죽림리, 상갑리, 도산리에 있는 고인돌은 탁자식·바둑판식·개석식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하는 것 역시 학계가 주목하는 부분. 가장 먼저 고창고인돌박물관(063-560-8666, www.gochang.go.kr/gcdolmen)을 방문해 고인돌과 청동기시대 이 지역 사람들의 생활상에 대한 기초 지식을 습득한 뒤 고인돌 탐방 코스를 산책하는 코스가 고인돌 문화유적 답사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다. 6개 코스 중 1~3코스에서 가장 많은 볼거리를 만날 수 있는데, 고인돌의 변천사를 확인할 수 있는 다채로운 형태의 고인돌이 탐방로 주변에 즐비하다. 영국의 스톤헨지, 칠레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 등과 비견되는 거석문화를 고창에서 접할 수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방문할 가치가 충분한 명소로 추천받아 마땅하다.
세계 최대 규모 고인돌 군락지로 꼽히는 고창군 세계 최대 규모 고인돌 군락지로 꼽히는 고창군
고창으로 떠나는 식도락 여행

초가을 입맛 돋우는 풍성한 먹거리

  • 방금 뽑은 면으로 맛보는 메밀국수

    메밀꽃의 계절인 만큼 메밀로 만든 국수를 맛보아야 초가을 여정의 방점을 찍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메밀은 칼로리가 낮고 무기질이 풍부하며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효과가 있는 훌륭한 식재료이므로 건강에도 매우 이롭다. 고창버스터미널 인근에 있는 혜성메밀(063-563-3009)은 고창군이 인증한 모범음식점이면서 농촌우수농가로 지정된 곳이기도 해 믿고 먹을 수 있는 맛집이다. 주문하면 곧바로 메밀 반죽을 기계에 넣어 뽑은 면으로 음식을 만들기 때문에 보통의 메밀 요리 집보다 조금 오래 기다려야 하지만 그만큼 믿을 수 있는 먹거리로 보답한다. 물·비빔메밀국수, 들기름막국수, 메밀로 빚은 왕만두 등이 이 집의 대표 메뉴다.
  • 집밥이 그리울 때는 순두부 백반

    고창읍성은 고창 토박이 사이에 모양성(牟陽城)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지역이 백제 시대 모량부리라는 지명으로 불렸기 때문. 모양성이라는 이름을 상호로 활용한 모양성순두부(063-564-0337)는 거창한 메뉴를 내는 집은 아니지만 순두부, 청국장, 전골, 보쌈 등 집밥 생각나는 반찬과 정갈한 상차림, 그리고 말끔한 시설 덕분에 여행자들의 단골집으로 자리 잡았다. 고창군이 모범음식점으로 지정한 이 집의 대표 먹거리는 당연히 순두부. 빨간 순두부는 매콤한 육수를 더한 인기 메뉴로 꼽히며, 바지락 육수로 끓인 하얀 순두부도 맛있다. 고창식으로 만든 손두부인 모양성 두부도 맛보자. 두부와 버섯을 넣은 전골이나 고등어구이, 왕만두 등을 곁들여도 좋다.
  • 약재로도 쓰이는 영양 만점 풍천장어

    주진천(인천강)이 서해의 곰소만과 만나는 강 하구언에서 잡히는 장어를 흔히 ‘풍천장어(風川長魚)’라고 부른다. 여기서 풍천은 짠물과 민물이 만나는 구간(기수역)을 뜻하는데, 특히 주진천은 기수역(汽水域)이 10km에 이를 정도로 길다. 그 때문에 바다로 나가는 장어가 짠물에 적응하기 매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어 바로 이 강 하구언에서 잡히는 장어를 풍천장어라 지칭했다. 여기서 잡힌 장어는 육질이 좋고 맛이 유난히 좋을 뿐 아니라 예로부터 약재로 쓰일 정도로 영양 성분을 풍부히 함유한 식재료로 유명하다. 양념구이도 맛있지만 장어 본연의 맛을 즐기기에는 소금만 뿌려 담백하게 구운 소금구이가 제격이다. 선운사 주변과 읍내 곳곳에 풍천장어를 취급하는 전문 식당이 있는데 그중 우리풍천장어(063-563-8882), 석정풍천장어(063-564-0592)가 맛집으로 알려져 있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