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우인재 여행작가 / 사진 제공 해남군청
땅끝, 수묵화처럼 담백한 풍경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 땅끝 해남. 도로 사정이 과거 어느 때보다 좋아졌다고는 해도 수도권을 기준으로 최소 다섯 시간 이상 소요되는 머나먼 길을 달려야 만날 수 있는 여행지이다. 하지만, 이런 피로감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내어주는 곳이 해남이기도 하다. 첫 번째 보상으로 사자봉에 오를 것을 추천한다. 소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노령산맥이 그 마지막 숨을 고르며 방점을 찍은 곳에 솟아오른 사자봉에 오르면, 옅은 안개 사이로 수묵화처럼 펼쳐진 다도해 섬들을 만날 수 있다. 사자봉은 해발 156m에 불과한 작은 언덕 같은 산이지만 남해안에서 손꼽을 정도로 뛰어난 전망을 자랑한다. 정상에 세워진 높이 40m의 땅끝전망대에서는 흑일도·백일도·보길도·노화도 등 다도해에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을 조망할 수 있다. 화창한 날에는 멀리 제주도도 볼 수 있다. 한반도의 기운이 환상의 섬 제주로 건너가기 전 잠시 쉬어가며 갈음하는 땅끝의 조용한 바닷가에는 쏟아지는 늦가을의 햇살이 잔잔한 바닷물 위에 반사되어 생선 비늘처럼 반짝인다.달마산 절경이 품은 도솔암과 미황사를 만나다
해남은 이웃한 강진과 함께 남도 답사 일번지로 꼽히는 유구한 역사의 고장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문화유적으로는 두륜산 대흥사, 달마산 미황사와 도솔암, 고산윤선도유적지 등이 있다. 그중 미황사의 암자인 도솔암은 그 자태가 빼어난 달마산 능선에 걸쳐있는 비경으로 인해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해남 최고의 명소다. 송곳처럼 뾰족한 봉우리에 매달린 도솔암은 그 이국적인 풍경 덕에 제법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 등장했다.두륜산 자락, 남도의 으뜸가는 명찰
해남군 북쪽의 두륜산에는 미황사와 견줄 수 있는 명찰 대흥사가 있다.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으로 1만 년 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이라고 했던 두륜산은 「정감록」에도 큰 변란을 피해 숨어들 수 있는 땅인 ‘십승지(十勝地)’의 하나로 언급된 영험한 산이다. 바로 이 두륜산 기슭에 안긴 천년고찰, 대흥사는 땅끝을 대표하는 고찰이자 국보급 문화재를 수두룩하게 지니고 있는 남도의 으뜸가는 명찰이다. 고풍스러운 건물들, 자연과 조화를 이룬 절의 배치가 산뜻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진다.늦가을의 정취와 낭만 가득 안고 달리다
땅끝 해남으로 떠나는 여정은 고천암호 갈대와 억새를 돌아보는 호반 드라이브로 완성된다.풍요의 계절에 맛보는 남도 한정식
남도 음식의 대명사는 역시 한정식이 아니겠는가. 제철 식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해 만든 다양한 종류의 나물과 반찬, 생선, 육류 등은 상 위에 그릇을 놓을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푸짐한 상차림으로 유명하다. 남도의 다른 고장들처럼 해남 역시 깊어가는 가을에 여행자의 식욕을 자극하는 정갈하고 맛있는 한정식을 대표 먹거리로 내세우고 있다. 보통 20여 가지에서 많으면 30가지 이상의 반찬이 한 상 가득 차려져 나오는 한정식은 곡창지대와 바다를 끼고 있는 풍요의 땅 남도의 풍부한 물산을 자랑하는 맛의 잔치라고 할 수 있다. 땅끝기와집(061-534-2322), 한성정(061-536-1060), 전라도한정식(061-535-3814) 등 해남읍내와 땅끝마을 일원에 한정식 전문점이 자리 잡고 있다.다양한 레시피로 맛보는 닭코스 요리
닭코스 요리는 다른 지역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해남 요리의 결정판이다. 1970년대 닭백숙을 팔던 식당에서 시작된 닭코스 요리는 한 마리의 닭을 맛있게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 제대로 키운 촌닭을 사용하는 이 먹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한 닭요리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가슴살을 저며낸 육회, 붉은 양념으로 볶아낸 닭 불고기, 오븐에 구운 바삭한 닭구이, 한약재를 넣고 푹 삶은 보양 백숙, 깔끔한 닭죽 등 다섯 가지 요리가 차례대로 상 위에 올라온다. 이처럼 다채로운 요리가 코스로 서빙되는 광경은 백숙이나 치킨, 찜닭 등 한정된 메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해물밭에 노는 닭(061-533-5311), 수정가든(061-532-0540), 정든집(061-533-1199)에서 맛볼 수 있다.보리쌈밥과 산채정식
보리쌈밥은 해남에서 나는 식재료에 어머니의 손맛을 더해 풍미를 살린 정겨운 음식이다. 다양한 종류의 나물, 돼지불고기, 된장국 등 그리운 집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상차림이 입맛을 돋운다. 취향에 따라 나물을 선택해 넣고, 양념장 혹은 고추장에 참기름을 넣고 비벼 먹는 과정은 보리 비빔밥과 별반 다를 게 없으나 여기에 쌈이 더해져 초록빛 자연의 기운을 전해준다. 산채정식은 이름 그대로 산에서 나는 다양한 채소와 약초로 만드는 건강 밥상이다. 두륜산, 달마산, 금강골, 만대산 등 명산에 둘러싸인 해남은 예부터 산나물이 유명했다. 계절에 따라 참취, 곰취, 참나물, 두릅, 누리대 등 신선한 산나물을 맛볼 수 있다. 보리밥과 산채정식을 취급하는 음식점은 두륜산 대흥사 일원에 밀집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