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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ember 2022 Vol.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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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곱하기

방방곡곡 숨은 명소

전남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는 흔히 땅끝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여행지다. 토말비와 땅끝전망대가 세워진 사자봉을 비롯해 달마산 도솔암과 미황사, 고천암호 갈대밭 등은 모두 고즈넉한 11월의 분위기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여행지로 손꼽힌다. 저물어 가는 계절의 아쉬움을 달래기에 이보다 더 좋은 여행 테마가 또 있을까? 국토의 끝자락 해남으로 떠나는 여정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글/사진 우인재 여행작가 / 사진 제공 해남군청

우인재 작가는 10여 년간 출판사에서 여행 콘텐츠 기획 및 취재를 담당했다. 아시아나항공 기내 가이드북 로스앤젤레스 편을 비롯해 대한생명, 교보생명, 외환은행 등 보험·금융사 고객용 여행 가이드북을 기획 및 제작했다. 또 월간 「DOVE」, 「모터트렌드」 등의 매체를 비롯해 인천공항공사, 롯데백화점, 조달청, 롯데제이티비, LS전선 등 기업체 사보에 여행, 드라이브 원고를 기고했다. 현재 프리랜서 여행작가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
달마산 가을 풍경

땅끝, 수묵화처럼 담백한 풍경

우리나라 육지의 최남단 땅끝 해남. 도로 사정이 과거 어느 때보다 좋아졌다고는 해도 수도권을 기준으로 최소 다섯 시간 이상 소요되는 머나먼 길을 달려야 만날 수 있는 여행지이다. 하지만, 이런 피로감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내어주는 곳이 해남이기도 하다. 첫 번째 보상으로 사자봉에 오를 것을 추천한다. 소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온 노령산맥이 그 마지막 숨을 고르며 방점을 찍은 곳에 솟아오른 사자봉에 오르면, 옅은 안개 사이로 수묵화처럼 펼쳐진 다도해 섬들을 만날 수 있다. 사자봉은 해발 156m에 불과한 작은 언덕 같은 산이지만 남해안에서 손꼽을 정도로 뛰어난 전망을 자랑한다. 정상에 세워진 높이 40m의 땅끝전망대에서는 흑일도·백일도·보길도·노화도 등 다도해에 흩어져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을 조망할 수 있다. 화창한 날에는 멀리 제주도도 볼 수 있다. 한반도의 기운이 환상의 섬 제주로 건너가기 전 잠시 쉬어가며 갈음하는 땅끝의 조용한 바닷가에는 쏟아지는 늦가을의 햇살이 잔잔한 바닷물 위에 반사되어 생선 비늘처럼 반짝인다.
전망대 구경만으로는 조금 아쉽다면 땅끝 송호리와 주변 섬들을 연결하는 여객선이 출발하는 땅끝항을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과거 갈두항으로 불리던 땅끝항 바로 앞에는 맴섬이라 불리는 이 지역의 명물이 기다리고 있다. 두 개의 작은 섬이 짝을 이루고 있는 맴섬은 특정 기간에 섬과 섬 사이로 해가 떠오르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어 해당 시기만 되면 전국에서 사진가들이 몰려든다. 매년 2월과 10월에만 이 같은 장관을 경험할 수 있다.
농월정 땅끝항 형제바위

달마산 절경이 품은 도솔암과 미황사를 만나다

해남은 이웃한 강진과 함께 남도 답사 일번지로 꼽히는 유구한 역사의 고장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문화유적으로는 두륜산 대흥사, 달마산 미황사와 도솔암, 고산윤선도유적지 등이 있다. 그중 미황사의 암자인 도솔암은 그 자태가 빼어난 달마산 능선에 걸쳐있는 비경으로 인해 절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해남 최고의 명소다. 송곳처럼 뾰족한 봉우리에 매달린 도솔암은 그 이국적인 풍경 덕에 제법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 등장했다.
땅끝에서 도솔암을 품고 있는 달마산까지는 자동차로 불과 30여 분 거리. 미황사 뒤편 등산로를 이용해 올라도 되지만 송지면 마봉리에서 산자락을 타고 이어지는 임도를 이용하면 어렵지 않게 암자까지 갈 수 있다. 도솔암 안내 이정표가 세워진 간이 주차장까지 자동차로 오른 뒤 작은 봉우리를 몇 개만 넘으면 20여 분 만에 도솔암에 닿을 수 있다. 암자를 찾아가는 능선길 위에 펼쳐지는 송곳 같은 바위 봉우리와 바다 풍경은 비경 중의 비경이라는 표현도 부족할 만큼 놀라운 장관을 선사한다. 조선 성종 임금 때의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그 땅의 끝 편에 도솔암이 있고, 그 암자가 향한 형세가 곶(串)을 얻어 장관이 따를 만한 짝이 없다’라는 말로 도솔암 주변의 절경을 묘사했다. 오래 전 중국 남송에서 건너온 어느 고관이 달마산의 수려한 산세에 반해 화폭에 담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다. 아마도 옛사람들은 이 아찔하고도 수려한 절벽 위에 암자를 세우면 부처님의 자비가 땅끝 너머 바다까지 널리 퍼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달마산 자락에 있는 또 하나의 절집인 미황사는 통일신라 때 창건된 고찰로, 한 때 20여 채가 넘는 전각을 보유했던 거찰이었다고 한다. 현재 보물 제947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제외하고는 옛 건물이 대부분 사라져 아쉽지만, 대웅전 처마의 퇴색한 단청은 미황사의 유구한 역사를 짐작게 한다. 커다란 팔작지붕은 절집 뒤편에 병풍처럼 펼쳐진 달마산처럼 웅장하며 배흘림기둥을 받치고 있는 초석에는 거북이와 게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땅끝 맴섬 해돋이 땅끝 맴섬 해돋이
대흥사 가을풍경 대흥사 가을풍경

두륜산 자락, 남도의 으뜸가는 명찰

해남군 북쪽의 두륜산에는 미황사와 견줄 수 있는 명찰 대흥사가 있다. 서산대사가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으로 1만 년 동안 훼손되지 않는 땅’이라고 했던 두륜산은 「정감록」에도 큰 변란을 피해 숨어들 수 있는 땅인 ‘십승지(十勝地)’의 하나로 언급된 영험한 산이다. 바로 이 두륜산 기슭에 안긴 천년고찰, 대흥사는 땅끝을 대표하는 고찰이자 국보급 문화재를 수두룩하게 지니고 있는 남도의 으뜸가는 명찰이다. 고풍스러운 건물들, 자연과 조화를 이룬 절의 배치가 산뜻하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대흥사는 크게 남원과 북원 두 구역으로 구분된다. 여기서 남원에 해당하는 표충사와 대광명전 일원은 후대에 조성된 구역이며, 표충사는 절에서 흔히 보기 어려운 유교 형식의 사당으로 서산대사를 비롯해 사명당, 뇌묵당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침계루를 지나 북원으로 진입하면 정면에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명부전과, 응진전, 산신각 등의 전각이 배치되어 있다. 응진전 앞 삼층석탑(보물 제320호)은 대흥사가 보유한 가장 오래된 유물로 알려져 있다. 경내 건물에 걸린 현판의 글씨도 눈여겨보아야 한다. 표충사는 정조 임금, 대웅보전과 천불전, 침계루는 원교 이광사, 백설당 지붕 밑 무량수각은 추사 김정희, 가허루는 호남의 명필 창암 이삼만의 글씨라고 한다. 그야말로 당대 명필들의 글씨를 한자리에 모아 놓은 격이다.
한편 대흥사 입구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관인 유선관이 자리 잡고 있다. 동백나무, 노송나무, 삼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룬 두륜산 중턱에 있는 유선관은 100년 전에 지어 올린 한옥으로 대흥사를 찾아온 신도나 수도승들을 위한 객사 역할을 했다고 한다. 창호지를 바른 문살과 툇마루는 정겨운 시골집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기고 있는데 이러한 예스러운 모습이 영화 ‘장군의 아들’, ‘서편제’에 등장했다.
달마산 도솔암 달마산 도솔암
대흥사와 초의선사 대흥사와 초의선사

늦가을의 정취와 낭만 가득 안고 달리다

땅끝 해남으로 떠나는 여정은 고천암호 갈대와 억새를 돌아보는 호반 드라이브로 완성된다.
고천암호는 해남 서쪽 바닷가를 메워 만든 인공호수다. 물이 빠지면서 갯벌이었던 곳은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너른 간척지로 변모했고 그 척박한 땅 위에 갈대가 숲을 이루게 되었다. 갈대밭은 너비 3km, 둘레 14km로 총 50여만 평이 넘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이처럼 넓은 간척지에 펼쳐진 갈대밭이다 보니 순천만이나 금강하구의 신성리 갈대밭과 달리 자동차로 달릴 수 있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며 지평선 가득 펼쳐진 갈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여행지일 것이다. 이러한 이국적인 풍경 덕분에 드라마 ‘추노’를 비롯해 영화 ‘청풍명월’, ‘살인의 추억’ 등의 작품들이 고천암호 갈대밭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고 한다.
갈대밭이 둘러싸고 있는 고천암호는 겨울을 한반도에서 나는 철새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철새들은 해 질 무렵 기적 같은 장관을 눈앞에 펼쳐 보인다. 날이 저물고 하늘이 황혼으로 붉게 물들면 일제히 날아오른 가창오리들이 하늘 위에 거대한 그림을 그리는 것. 바다를 막아 조성한 거대한 담수호는 가창오리들의 군무를 사진에 담기 위해 찾아온 사진가들의 소리 없는 열정으로 가득 채워진다. 가을에 찾아오기 시작한 철새들은 계절이 바뀌는 이듬해 봄을 앞두고 또다시 북쪽으로 돌아간다.
고천암호 가창오리 군무 고천암호 가창오리 군무
고천암호 갈대밭 고천암호 갈대밭
해남으로 떠나는 식도락 여행

가을 끝자락 입맛 돋우는 남도 미식기행

  • 풍요의 계절에 맛보는 남도 한정식

    남도 음식의 대명사는 역시 한정식이 아니겠는가. 제철 식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해 만든 다양한 종류의 나물과 반찬, 생선, 육류 등은 상 위에 그릇을 놓을 공간이 부족할 정도로 푸짐한 상차림으로 유명하다. 남도의 다른 고장들처럼 해남 역시 깊어가는 가을에 여행자의 식욕을 자극하는 정갈하고 맛있는 한정식을 대표 먹거리로 내세우고 있다. 보통 20여 가지에서 많으면 30가지 이상의 반찬이 한 상 가득 차려져 나오는 한정식은 곡창지대와 바다를 끼고 있는 풍요의 땅 남도의 풍부한 물산을 자랑하는 맛의 잔치라고 할 수 있다. 땅끝기와집(061-534-2322), 한성정(061-536-1060), 전라도한정식(061-535-3814) 등 해남읍내와 땅끝마을 일원에 한정식 전문점이 자리 잡고 있다.
  • 다양한 레시피로 맛보는 닭코스 요리

    닭코스 요리는 다른 지역에서는 맛보기 어려운 해남 요리의 결정판이다. 1970년대 닭백숙을 팔던 식당에서 시작된 닭코스 요리는 한 마리의 닭을 맛있게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 제대로 키운 촌닭을 사용하는 이 먹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한 닭요리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가슴살을 저며낸 육회, 붉은 양념으로 볶아낸 닭 불고기, 오븐에 구운 바삭한 닭구이, 한약재를 넣고 푹 삶은 보양 백숙, 깔끔한 닭죽 등 다섯 가지 요리가 차례대로 상 위에 올라온다. 이처럼 다채로운 요리가 코스로 서빙되는 광경은 백숙이나 치킨, 찜닭 등 한정된 메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해물밭에 노는 닭(061-533-5311), 수정가든(061-532-0540), 정든집(061-533-1199)에서 맛볼 수 있다.
  • 보리쌈밥과 산채정식

    보리쌈밥은 해남에서 나는 식재료에 어머니의 손맛을 더해 풍미를 살린 정겨운 음식이다. 다양한 종류의 나물, 돼지불고기, 된장국 등 그리운 집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상차림이 입맛을 돋운다. 취향에 따라 나물을 선택해 넣고, 양념장 혹은 고추장에 참기름을 넣고 비벼 먹는 과정은 보리 비빔밥과 별반 다를 게 없으나 여기에 쌈이 더해져 초록빛 자연의 기운을 전해준다. 산채정식은 이름 그대로 산에서 나는 다양한 채소와 약초로 만드는 건강 밥상이다. 두륜산, 달마산, 금강골, 만대산 등 명산에 둘러싸인 해남은 예부터 산나물이 유명했다. 계절에 따라 참취, 곰취, 참나물, 두릅, 누리대 등 신선한 산나물을 맛볼 수 있다. 보리밥과 산채정식을 취급하는 음식점은 두륜산 대흥사 일원에 밀집해 있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