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K 매거진(더케이매거진)

생각의 뿌리 > 멘토 인사이드 
멘토에게 들어보는 삶의 가치와 지혜에 대한 이야기

멘토 인사이드

건축이 곧 교육이며
우리의 미래입니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김광현 명예교수
멘토인사이드01
홀로 존재하는 건축은 없다. 창을 통해 자연과 연결되고, 문을 통해 사회와 연결된다. 처마는 비바람을 피해 온 생명을 맞이한다. 건축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사람과 연결된다. 건축을 바꾸고, 나아가 사회를 바꿀 주체도 오직 사람이다. 그 변화의 시작은 교육에 있다. “건축은 교육이고, 인류의 마지막 공동 언어이며, 미래”라고 이야기하는 김광현 교수를 만났다.

글 이성미 l 사진 성민하

건축 교육도, 학교 건축도 바뀌어야 한다

매일 아침, 우리는 건축물에서 일어나 또 다른 건축물로 향한다. 학교, 병원, 회사, 관공서 등 크고 작은 건축물은 우리 삶과 밀착해 있다. 그러나 정작 학교에서는 건축을 가르치지 않아 우리는 가장 가까운 존재인 건축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 서울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 건축학과에서 42년간 학생을 가르치고, 서울대학교 건축의장연구실에서 200여 명의 제자를 배출한 건축계의 스승 김광현 교수는 ‘건축이 곧 교육’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학창 시절 『Architecture is Education』이라는 제목의 책을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세월이 흘러 최근에야 그 책 제목을 곱씹게 되더군요. 『Architecture is Education』, 직역하면 ‘건축은 교육이다’입니다. 우리가 건축을 생각할 때 가장 가깝게 ‘집’을 떠올리는 것은 집이라는 건축에 함축된 우리 삶을 생각하는 것이죠. 같은 맥락으로 시야를 넓히면 건축을 통해 도시, 사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가장 필요한 교육이라 할 수 있죠. 하지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정규교육 과정에서는 건축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건축과 관련한 내용이 있어도 ‘왜’, ‘어떻게’라는 물음 없이 설명뿐입니다. 건축이 어떤 것이며, 어떻게 지어지는지, 건축으로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나아가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건축 교육을 통해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생애 가장 중요한 시기를 학교에서 보내면서도 우리는 “학교 건축물은 어떠해야 하는가?”라고 고민하지 않는다. 30년 전 초등학교에 다닌 부모와 현재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교실’ 하면 같은 공간을 떠올린다.
김광현 교수는 “학교 건축이 변하기 위해선 ‘학교는 이래야 한다’라고 규격화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당부한다. 대신 학교의 주인인 각자가 물어야 한다. “교육이란 무엇이며,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선 어떤 공간이 필요한가?”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얼 하고 싶을까?” “학교 안에 머무는 아이들 눈에는 무엇이 보일까?” 이러한 물음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 좋은 학교를 만드는 시작점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멘토인사이드02
멘토인사이드02_1 전주교구 천호부활성당
모두를 위한, 공동성을 담은 건축

우리는 건축물을 통해 지은 사람(건축주)과 머무는 사람이 추구하는 바를 읽어낼 수 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세계의 도시 속 유명 건축을 보면 그 나라 공동체의 문화를 짐작할 수 있다.
김광현 교수는 이에 대해 “건축은 인간의 마지막 공동 언어이자 사람을 공동체로 묶는 마지막 힘”이라고 정의한다. 세계적 건축가 루이스 칸(Louis Isadore Kahn)이 이야기한 ‘건축의 공동성(共同性, Commonness)’과도 맞닿아 있는 정의다. 사회적 가치는 한 사람에게만 해당하지 않고 민족, 인종, 나이, 성별, 학력 등에 상관없이 공통의 속성으로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동성을 이해하기 위해 김광현 교수가 설계한 ‘전주교구 천호부활성당’을 예로 들어보자. 성당이라는 건축물에는 사제와 평신도가 모여있다. 그들은 종교 공동체이며, 성당은 공동체를 담은 건축이다. 하지만 성당은 성직자와 평신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사회적 공간으로서 모든 이를 품으며, 많은 사람이 성당에서 심신의 편안함을 느낀다. 이처럼 건축은 사람과 사람, 신과 인간을 잇는 종교 건축물의 역할과 찾아오는 모든 이에게 경외감을 갖게 하는 공동성을 모두 담고 있다. 그것을 건축으로 풀어내면 공동성을 담은 건축, 모두의 건축이 된다.

멘토인사이드03
멘토인사이드03_1우리가 건축을 생각할 때 가장 가깝게 ‘집’을 떠올리는 것은 집이라는 건축에 함축된 우리 삶을 생각하는 것이죠. 같은 맥락으로 시야를 넓히면 건축을 통해 도시, 사회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누구나 건축가가 될 수 있다

좋은 건축가가 할 일은 머물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를 충족하고, 나아가 건축으로 모든 사회 구성원에게 어떤 혜택을 줄 것인가를 제안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마지막 공동 언어를 지키는 일이 될 수 있다.
“과거 미술은 공동의 언어에 가까웠습니다. 인류의 염원이 담긴 장신구를 비롯해 수많은 예술품이 남아 있죠. 하지만 현대로 올수록 작가의 개인적 언어로 바뀌고 있습니다. 음악도 마찬가지고요. 그에 비해 건축은 여전히 공동의 언어로 남아 있습니다. 건축은 개인이 짓고 싶은 대로만 지을 수 없어요. 사회와 어우러져야 합니다. 그 공동의 언어를 잊어버리면 공동체는 갈등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건축’이라는 공동의 언어를 사용할 줄 아는 건축가가 되는 것이다. 직접 제 손으로 도면을 그리고, 기둥을 세우라는 게 아니다. 모두를 위한 건축물,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건축이 생겨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나와 가장 가깝고 작은 건축물부터 직접 바꿔나 갈 수도 있다. 학교도 그중 하나다. 학생, 교사라는 공동체를 위한 건축이면서, 마을을 배려하고, 사회의 일부로 녹아 있는 공동의 건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으로 더 나은 모두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한다.
“2022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프란시스 케레(Francis Kéré)는 서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습니다. 독일에서 유학하고 건축가가 된 그는 고향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다며 자신이 배운 건축 지식으로 지역의 진흙, 나무, 벽돌 등의 재료를 동원해 학교를 지었죠. 그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건축 기술도 알려주었습니다.
그 결과물이 간도(Gando) 초등학교입니다. 그가 만든 것은 학교 건물이었지만, 그것은 나아가 그 공동체의 미래였습니다. 모든 법과 제도의 목적은 공공복리 증진, 그러니까 모든 사람에게 기쁨을 주기 위함이죠.
건축이 존재하는 원천도 같습니다. 모든 이에게 기쁨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의 미래를 짓고, 기쁨을 만드는 것, 그것이 건축의 본질입니다.
무엇을 짓는다는 것은 결국 미래를 짓는 것입니다. 좋은 건물은 후대에까지 보전되니 말입니다. 경복궁 같은 문화재도 우리 손으로 짓지 않았지만 그 혜택을 지금의 우리가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교육을 잘 담아내는 학교 건축,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집, 나아가 다음 세대에까지 길이 보전해 줄 수 있는 좋은 건축물이 더 많이 지어지면 좋겠습니다.”
한 번 지은 건축물은 수명이 길다. 좋은 건물도, 나쁜 건물도 최소 수십 년을 한자리에 머문다. 기나긴 건축의 생이 더 찬란하고 건강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보자. 그러면 건축은 분명 자신의 건강함을 우리 사회와 미래에 고루 나눠줄 것이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