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경희 l 사진 성민하
글 이경희 l 사진 성민하
박건호 선생은 역사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당시로선 보기 드문 고등학교 졸업자였고, 덕분에 집 안 곳곳에는 『한국사』 전집,
『왕비열전』 등의 책이 늘 널려 있었다. 소년은 사진, 도판, 한자가 뒤섞여 있는
역사책을 보며 역사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갔다.
그에게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진학은 꽤 낭만적인 선택이었다. 공부 잘하는 시골
아이들이 출세를 위해 법대나 경영대에 가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에, 단지 역사가 좋다는
이유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사학과에 진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떠난 답사 여행에서 운명처럼 빗살무늬토기 파편을
발견했다. 아주 작은 조각이었지만 그에게는 ‘수집’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
비밀 통로 같은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수집에 눈을 뜨게 되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고등학교 국사 교사가 된 후부터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뭔가를
보여주기 위한 자료 수집을 시작했어요. 아이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수업에
놀랍도록 집중했고, 박물관에 온 것 같다고 얘기하는 애들도 많았어요. 제가 역사를
가르친 아이들 중에는 역사학과에 진학하는 학생도 유독 많았습니다.”
박건호 선생의 당시 수집 기준은 ‘수업 시간에 활용할 수 있는가’였다고 말하며 미소 지었다.
수집은 생물과도 같다. 일단 시작하면 그 가짓수와 종류가 늘면서 일종의 생태계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보는 눈이 없어 가짜를 사기도 했지만 시간이 쌓이면서
안목이 생겼고 운 좋게 귀한 자료를 구하기도 했다.
“해방 직후에 뿌려진 ‘찬탁 반탁 전단지’를 5만 원에 구입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걸
판 분이 나중에 개인적으로 연락을 해왔습니다. 전단지가 80장 정도 들어 있는 파일이
있는데 일괄 구매를 하면 어떻겠냐고요. 5만 원짜리 전단지는 일종의 미끼 상품이었던
거죠. 그러면서 200만 원을 부르더라고요. 당시 그 돈이면 한두 달 치 월급이었거든요.
제가 구매하지 않으면 이게 다 낱장으로 뿔뿔이 흩어져 팔릴 것 같았기 때문에
고민 끝에 전부 산 기억이 있습니다.”
박건호 선생의 수집품 중 일부
목극등이 지나간 경로를 표기한 지도인 ‘임진목호정계시소모’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 파편(왼쪽)과 조선총독부 철거시 나온 파편(오른쪽)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의 수집품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갔다. 수집품을 보고 싶다고 청하자
그는 집 안 곳곳에서 보물찾기를 하듯 다양한 크기의 상자와 원통을 찾아들고 왔다.
손가락 마디만 한 빗살무늬토기 조각, 아기 꽃신, 일본을 방문한 수신사 행렬 그림,
‘임진목호정계시소모’라는 제목의 18세기 지도, 1948~1949년에 나온 방학 학습장,
‘까치호랑이’ 민화 등 종류와 시기 모두 다양하다. 눈빛을 반짝이며 수집품에 담긴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주는데, 오래된 그림과 물건이 품은 시대상과 사정이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듣는 내내 입이 쩍 벌어졌다.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 파편은 인류 역사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고,
조상들의 심미안과 수려한 솜씨가 탄복을 자아내는 아기 꽃신은 지금 판매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세련되고 아름답다. 일본을 방문한 조선 수신사 행렬을 소개하며, 굳이 실내용
안경을 쓴 채 말을 탄 수신사 김기수의 모습에서 “문명개화하고 있던 일본에 기죽지
않으려는 조선인의 자존심”을 엿볼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그 시대의 안경을 보여주니 말
그대로 ‘산 역사’ 공부가 따로 없다. 경매에 나타난 순간 단번에 범상치 않은 지도라고 느낀
‘임진목호정계시소모’는 당시 조선과 청나라가 간도 귀속을 둘러싸고 분쟁이 일어났던
시기의 지도로 추측된다며, 1712년 백두산정계비 건립 당시 청나라 대표였던 목극등(穆克登)이
조사한 백두산 일대 지리와 그들이 지나간 경로를 담고 있다. 이 지도는 목극등에게 받은
원본을 조선 정부가 따로 제작한 모사본일 가능성이 높다고 박건호 선생은 설명했다.
예산군 오가면의 『범죄인 명부』가 품은 의미 역시 더없이 깊다. 박건호 선생이 발굴한
이 명부를 통해 당시 예산군에서 3.1 운동에 참여했다 형벌을 받았던 이들이 새롭게
밝혀졌으며, 그중 11명이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방학 학습장 세 권도 격변하는 우리 근현대사를 여실히 보여주는 물건이다.
“이 세 권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묘한 이데올로기가 들어 있어요. 1948년 8월 15일에는
대한민국 정부, 같은 해 9월 19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세워졌죠. 그러면서
학습장에 등장하는 조선교육연합회가 대한교육연합회로 바뀌었고, 일상에서 흔히 쓰던
‘조선’, ‘동무’, ‘인민’ 이런 단어가 전부 퇴출됐습니다. 동무도 북한에서 쓰는 용어라고 해서
‘어깨동무’ 정도 외에는 대부분 퇴출됐는데, 이는 빨간색도 마찬가지였어요. 일제강점기
때 초등학교 운동회는 홍백전이었는데 해방 이후 청백전으로 바뀌어요. 이런 사상이
반영된 단어는 멀리 있지도, 거창하지도 않습니다. 아주 구체적으로 일상에 들어와
있는 걸 우리가 잘 모를 뿐이죠.”
‘역사’와 ‘수집’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통찰하는 열쇠가 된다.
그에게 ‘역사’와 ‘수집’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현재와 미래를
통찰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역사를 통해 그 시대, 그 조건에서 사람들이 어떤
길을 걸어왔고, 그 결과가 어땠는지 알기 때문에, 우리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때 주체적으로 생각할 힘이 생기는 거예요. 역사는 그런 지혜를 얻는 방법으로
기능해야 합니다.”
‘역사 컬렉터’를 자처하면서 박건호 선생의 개인사는 많이 바뀌었다. 본격적인
수집가의 길을 걸으면서 『컬렉터, 역사를 수집하다』, 『역사 컬렉터, 탐정이 되다』라는 책을 펴냈고,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사편찬위원회 등에 수집품을 기증하거나
매도해 국가 유산 목록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또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정보기록학과 객원교수로서 ‘한국 기록 관리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2020년 8월
광복절 특집으로 출연한 예능 ‘유 퀴즈 온 더 블록’ 덕분에 강연 요청이 쇄도했다.
옛 자료에 담긴 역사 이야기를 많은 이와 공유하는 소중한 시간을 계속 이어온 것이다.
“모든 컬렉터에게는 자신의 수집품으로 박물관을 세우는 꿈이 있습니다. 지금은
현실적인 이유로 박물관 대신 책을 펴내는 것으로 바꾸었지만 꾸준히 책을 출간하고
강연을 통해 대중과 만나고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역사 이야기를 많은 분과 나누고
싶어요. 사소하게 보이는 자료는 있어도 사소한 사람, 사소한 역사는 없으니까요.”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에서 역사 자료를 수집하고, 역사에 감춰진 이야기를 발굴하는
사람으로 인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써 내려가고 있는 박건호 선생. 그에게 역사
자료 수집이란, 거대한 역사적 담론과 민초의 이야기를 더 세밀하게 만나는
과정임에 틀림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