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태어난 김에 세계일주’, 줄여서 ‘태계일주’는 최고 시청률 5%를 넘기며 방송가에 화제가
되고 있다. 2023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태계일주’는 대상, 올해의 예능 프로그램상,
베스트 커플상을 비롯해 무려 7개 부문을 석권했다. 여행 콘텐츠로는 이례적인 성과를
낸 데는 ‘날것’을 강조한 콘텐츠의 신선함과 드론을 활용한 영상미가 바탕이 됐지만,
코로나19 이후 폭발한 여행 수요도 무시할 수 없다.
여행은 다양한 이유로 존재한다. 직장인에겐 번아웃과 매너리즘의 도피처가, 연인에게는
사랑을 확인하는 파라다이스가 된다. 가족에게는 공동체적 유대를 확인하는 기억의 장소가,
절친들에겐 우정의 무대가 된다. 도시 사람은 도시의 소음과 섬광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골
사람은 현란한 조명과 놀거리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의 시점도 같지 않다. 때론
낯선 삶을 살아가는 현지인이 되고 싶고, 때론 그저 관찰자만으로도 만족한다. ‘꽃보다 청춘’,
‘정글의 법칙’,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윤식당’, ‘뭉쳐야 뜬다’ 등 다양한 여행 예능
프로그램은 이 같은 욕구를 충족시키며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언제나 떠날 수 있을 것 같던 여행은, 코로나19로 한동안 우리 곁을 떠나갔다. 다시 세상이
열리자 그간 하지 못한 여행 욕구가 폭발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로
나간 한국인은 2,272만 명으로 코로나19가 한창이던 2021년(122만 명)보다 18.6배 늘었다.
이 같은 증가 속도라면 올해는 역대 최대였던 2019년(2,871만 명)도 넘어설 가능성이 크다.
1인당 여행 씀씀이는 더욱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해 1인당 여행 지출은 1,099달러*로, 역대
최대 관광객을 기록했던 2019년(1,019달러)을 넘어섰다.
최근 한국인이 많이 가는 관광지는 일본이다. 코로나19로 막혔던 하늘길이 열리고, 엔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일본을 찾는 관광객이 증가했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의 통계를 보면 지난해 방일 한국 관광객은 696만 명으로 전체 방일
관광객의 27.8%를 차지하며 1위 국가에 올랐다.
이외에도 태국, 호주, 인도네시아 등이 비용대비 만족도가 높은 국가로 조사돼 앞으로 더욱
관광객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해외여행 경험이 늘어날수록 다양한 국가의
방문을 원하는 만큼 앞으로 새로운 관광지의 등장도 기대해 볼 만하다.
초유의 인플레이션은 해외여행 수요를 더욱 늘렸다. 국내 물가가 급증하면서
‘가성비’와 ‘가심비’를 충족하는 합리적 선택이 됐기 때문이다. 제주관광공사의
‘2022년 제주특별자치도 방문 관광객 실태 조사’를 보면 2022년 제주를 방문한
내국인 관광객의 1인당 소비 지출은 약 67만 원*으로 2019년 47만 원과 비교해
43% 증가했다. 같은 가격이라면 이국적 풍경과 색다른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해외여행을 고르게 된다.
한국인의 해외여행 사랑은 여행 인플루언서들에게 기회가 되고 있다. ‘태계일주’에서
기안84와 동행한 빠니보틀은 유튜브 스타 여행 크리에이터다. 구독자 약 200만 명을
보유한 그는 인기를 바탕으로 공중파와 OTT까지 진출했다. 또 다른 스타 여행 유튜버인
원지, 곽튜브와 함께 ‘지구마불 세계여행2’에도 출연하고 있다. ‘지구마불 세계여행2’
역시 지난해 상반기 ENA 예능 최고 시청률을 경신한 콘텐츠다. 올해도 공중파와 OTT는
‘나나투어 with 세븐틴’, ‘니돈내산 독박투어’, ‘텐트 밖은 유럽’, ‘요술램프’ 등 여러 여행
예능을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를 앞세워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해외여행 붐은 한국 경제에 부담을 주기도 한다. 해외여행객이 워낙 많다
보니 한국은 만성 관광 수지 적자국이다. 지난해에도 약 98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강제 금지’ 됐던 2020년 약 32억 달러* 적자보다 약 3배
증가한 수치다. 무엇보다 우려스러운 것은 국내 소비 감소다. 사람들이 해외로
빠져나간 만큼 국내 소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 경제통계 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소비 지출은 1분기 8.8%에서 2분기 4.2%, 3분기 2.6%로 점점 낮아졌다.
반면 국내 거주자의 해외 소비를 의미하는 국외 소비 지출은 지난해 1분기 85.9%,
2분기 85.1%, 3분기 80.8%로 모두 80%를 상회했다.
이 같은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외국인이 한국을 찾도록 유도해야 한다.
한류의 영향으로 방한 관광객 수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한국을 더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 2,000만 해외 관광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숙제다.
* 한국관광 데이터랩 자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