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먼저인가, 노후가 먼저인가’
자녀 자립을 이끄는 부모의 역할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다. 자녀 양육비는 물론이고 교육비, 대학 등록금, 결혼 자금까지 아끼지 않고 모든 것을 내어 놓았다.
더불어 미래 투자로 ‘자식 보험’을 기대하듯 자녀의 자립을 위한 가장 안정된 방법인 스펙 쌓기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사회는 빠르게 변했다.
저출산, 고물가, 취업 경쟁의 여파로 자식이 스스로 자리 잡는 것조차 쉽지 않을뿐더러 고령화 사회에 노후 생존까지 챙겨야 한다.
더욱 빠르게 변모하는 사회에서 자녀의 삶과 부모의 인생을 따로, 또 같이 잘 운영해갈 수 있는 지혜가 무엇인지에 대해 함께 짚어보자.
글 박재원 부모교육 전문가
‘학벌’보다 ‘경험’이 우선인 시대
사교육비가 나름 효율적인 투자였던 시절이 있었다. 부모가 교육비로 투자한 것 이상을 자녀가 평생 살아가면서 뽑아낼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녀의 대학입시에 집중하는 이유는 다분히 현실적이었다.
학벌 자체가 아니라, 20대 사회생활의 출발이 안정적이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또 한 번 들어간 직장에서 오래 버티면 그 혜택이 평생 가는 일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벌 효과’가 자녀 삶의 질에 결정적이었던 시절이 분명히 있었다.
문제는 ‘사회적 격변기를 지나고 있는 지금은 어떤가, 앞으로는 어떨 것인가’에 있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변화의 흐름은 감지됐다.
2015년 연세대학교 졸업식장에 찬물을 끼얹은 플래카드가 붙었다. ‘연대 나오면 모(뭐)하냐 백순데’. ‘2014 취업 전쟁 보고서’라는 부제가 달린 주간조선 표지 제목은 ‘서울대마저’였다.
좋은 학벌이 100% 취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현실을 어느 정도 인지하면서도 여전히 초·중·고 학생들은 대학입시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대학의 허들을 뛰어넘었다면, 직업 세계에 무사히 안착해야 하는데 이 또한 예전 같지 않은 모양새다. 먼저 대기업의 채용이 달라졌다.
장기적인 저성장기에 접어들면서 기업들은 신입사원 정기 공채를 줄이고 바로 현장에 투입해서 성과를 낼 수 있는 경력사원 채용에 비중을 두고 있다.
한 번에 많이 뽑는 방식이 아닌 필요할 때마다 선발하는 방식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사회생활 경쟁력은 ‘자신감’과 ‘개척정신’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아닌, 사회생활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결정되는 시대가 됐다. 당연히 부모들도 이제는 자녀들의 사회생활 경쟁력을 위해 투자 패턴을 바꾸는 것이 옳다.
하지만 사회의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취업난이 심화되는 현실에서 자녀의 미래에 대한 부모들의 불안감은 하늘을 찌른다. 조금이라도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학부모들의 ‘학벌 집착’은 여전하다.
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교수의 얘기가 경종을 울린다.
‘대학수학능력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나가기 위해 우리 젊은 세대에게 부족한 기대 역량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스스로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인생의 길을 찾고, 그 길의 시작점을 찾기 위해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당연히 만나게 될 어려움이나 실패에 절망하지 않고 작은 것부터 하나씩 극복해나가는 과정에서 얻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더 큰 문제에 도전할 수 있게 하는 개척정신이다.’ (출처 논문: 「2015 개정 교육과
정과 연계한 입학전형 발전 방안 연구」 2018. 2 서울대학교 입학본부)
학벌을 쟁취하느라 오로지 시험을 잘 보는 데만 관심을 기울인 결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개척정신’을 잃는다면 과연 옳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입시에 성공하고 인생에 실패하지 않기 위한 부모들의 균형을 갖춘 교육이 필요하다.
자녀의 자립심을 키우는 부모의 역할
학벌에서 자립심으로의 대전환이 절실하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자각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성적이라는 비교가치에만 매몰된 학창 시절의 결과는 ‘니트족’
*이고 ‘공시족’
*이기 십상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해야 하는데 시험공부 밖에 자신 있는 것이 없다면 끝까지 시험공부에 매달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금부터라도 자녀의 관심사에 주의를 기울이자.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자녀의 모든 관심사는 직업을 결정하게 해주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시대 변화를 빠르게 인지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더불어 사회적 격변기에, 핵가족 상황에서의 부모역할은 자녀가 정하는 것이다. 자녀의 타고난 기질과 관심에 집중하면서 다듬어지는 재능을 지켜보고 격려하는 역할이면 충분하다.
또한 부모 역시 자신의 관심사를 추구하면서 고령화 사회에 맞게 ‘노후에도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심하고 찾아보는 데 집중하자.
새로운 도전에 집중하는 자체가 자식에게는 본보기이자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니트족(NEET :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무직 상태이면서 취업을 위한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도, 혹은 공부하고 있지도 않는 이들을 일컫는 신조어
*공시족 공무원이 되기 위해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 또는 그런 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