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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이후 삶의 즐거움

생생지락(生生之樂)

“산촌에서 농사도 짓고 글도 짓습니다”

김세관 수필가
생생지락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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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관 작가는 스스로 ‘글 농사꾼’이라고 칭한다. 귀촌 10년 차인 그는 산촌의 작은 집에서 밭농사보다 글 농사를 더 열심히 짓고 있다. 귀촌 후 벌써 두 권의 수필집과 두 권의 3인 작품집을 출간한 김세관 작가. 그는 오늘도 산촌에서 아름다운 인생 2막을 써 내려가고 있다.

글 이성미 l 사진 성민하

글 쓰는 교사, 퇴직 후 산촌에 정착하다

이른 아침, 김세관 작가는 문밖으로 나선다. 봄을 맞아 바깥 풍경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다. 새로 돋아난 글감들을 발견하고는 가까이 다가가 허리를 숙인다. 어떤 글감은 바로 따서 쓰고, 또 어떤 것은 더 자랄 때까지 지켜본다. 김세관 작가는 2014년 2월 퇴직한 이후 2016년부터 충남 공주시 정안면의 한 시골 마을에서 생활하고 있다. 벌써 10년이 되었으니 반(半)농사꾼이라 불려도 무방하지만, 그는 고개를 젓는다. 작물보다 글을 더 많이 수확하기 때문이다.
김세관 작가는 37년간 중고등학교에서 토목과 환경을 가르치는 교육자인 동시에 문인으로 살아왔다. 글 쓴 경력을 따지면 50년이 훌쩍 넘는다.
50여 년 전, 지금은 사라진 5년제 고등전문학교에서 학교 신문과 교지를 만들고 서울시립대학교 신문에 투고하며 글 쓰는 재미에 푹 빠졌다. 이후 교사가 된 그는 천안농업고등학교(現 천안제일고등학교)에 발령받은 해 한국문인협회 천안지부에 입회하고, 1990년 3월 『수필문학』으로 등단했다. 서산에서 활동할 때는 5년간 문학회 월례 모임에 빠짐없이 출석할 만큼 문학에 열정적이었다. 그는 한국문인협회 천안지부장을 역임했고, 2000년 창립한 천안수필문학회 초대 회장을 맡아 6년간 애정을 쏟기도 했다.
전업 작가의 삶을 부러워하던 김세관 작가는 퇴직 후 글 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귀촌을 결심했다.
“퇴직하자마자 임시 직장에서 일하며 2년 동안 열심히 땅을 보러 다녔습니다. 평생 교사로 일한 제게 넓은 땅을 살 만큼의 여력은 없었어요. 다만 교직 생활을 하며 20년 넘게 한국교직원공제회 장기저축급여를 불입한 덕분에 600평 정도를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땅을 만나 그 위에 작은 거처를 마련하고, 제 아호를 따 ‘청도산방’이라는 택호도 달았습니다. 이제 생각하니 제가 귀촌할 수 있었던 건 한국교직원공제회 덕분이 아닐까 싶어요.”

생생지락02
생생지락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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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촌 안에서 풍요로워지는 삶

2022년, 김세관 작가가 출간한 수필집 『山村의 소확행』은 귀촌 이후 자연에서 겪은 생생한 경험담을 소개한다. 산촌 생활이라고 특별한 것은 없다.
귀촌의 삶은 부지런해야 한다. 사람 사는 모습을 유지하려면 봄부터 초가을까지는 하루 한두 시간씩 제초 작업을 비롯한 여러 일에 매달린다. 한여름에는 땡볕을 피하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난다. 그 과정에서 얻는 재미도 크다. 특히 직접 가꾼 수확물로 식탁을 차리는 기쁨과 자연에서 느끼는 경외감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오이 줄기가 제 키만큼 자라 열매를 맺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어느 날 아침 살펴보니 밑동이 똑 부러져 있는 거예요. 고라니 짓이겠지요. 안타까운 나머지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없다고 여기면서도 상처에 붙이는 밴드로 감아주었습니다. 다음날 잎이 시들었겠거니 생각하고 텃밭에 나갔는데, 이게 웬일입니까? 정말 상처가 아문 것처럼 서 있었습니다. 이후 제대로 열매까지 맺었고요. 참으로 감동적인 경험이라 글로 옮겼습니다.”
고마운 일도 많다. 머위, 두릅, 달래, 고사리 등 고급 산채는 심지 않아도 저절로 자란다. 이전 땅 주인이 심어둔 밤나무에서는 매년 튼실한 알밤이 쏟아져 나와 수매장에 납품을 꽤 하고도 겨우내 주식이 되다시피 한다. 그 과정에서 글감이 쏟아져 나오고, 퇴직 후 삶도 더욱 풍요로워졌다. 단순히 귀촌만 생각했다면 지금의 삶을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귀촌을 풍요롭게 한 건 바로 글이라는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쁘게 살다가 은퇴하면 무료함이나 권태를 느끼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열심히 사람을 만나라’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성격에 따라서는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누군가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퇴직 후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 저는 ‘외로움을 즐길 방법을 찾아라’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텃밭을 가꾸거나 독서, 글쓰기 등 혼자 할 수 있는 취미를 찾는 것도 좋고요. ‘글은 고독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저는 귀촌해 소일거리를 찾은 덕분에 오히려 많은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김세관 작가는 귀촌 후 현재까지 두 권의 수필집과 두 권의 3인 작품집을 출간했다. 『대전흥사단 50년사』, 『충남예총 60년사』 집필에도 참여했으며, 문화원의 구술 채록 사업에 참여해 20여 편의 스토리텔링 원고를 집필했다. 특히 2018년 출간한 『내일도 홈런』은 한화이글스 팬으로서 순수한 애정을 담은 야구 수필집으로, 팬들로부터 공감과 지지를 받았다. 또 다른 수필집 『山村의 소확행』은 귀촌을 꿈꾸는 이들에게 유용한 안내서가 되어준다.

생생지락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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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살다가 은퇴하면 무료함이나 권태를 느끼는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열심히 사람을 만나라’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성격에 따라서는 그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누군가 은퇴를 앞두고 있거나 퇴직 후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면 저는 ‘외로움을 즐길 방법을 찾아라’라고 조언하고 싶습니다.”
산촌에서 글 짓는 농사꾼으로 살아갈 것

지금까지 글을 써오며 김세관 작가에게 삶의 지표가 되어준 것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가르침이다. 그는 학창 시절, 철학자이자 흥사단아카데미 설립에 앞장섰던 고(故) 안병욱 교수의 강연을 듣고, 도산의 사상에 깊이 감명받아 흥사단 활동을 시작했다. 흥사단은 1913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세운 단체로, 현재까지도 인재 양성을 위해 힘쓰며 다양한 시민운동을 펼치고 있다. 김세관 작가가 교사의 길을 선택한 데에도 안 교수와 흥사단의 영향이 컸다.
“도산 선생은 독립운동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교육자로서의 의미도 크다는 주장이 있을 만큼 ‘교육이 나라를 구한다’는 신념으로 청년 교육에 매진했습니다. 저에게 교육은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평생 실천해야 할 사명이었습니다.”
그가 퇴직 후에도 글쓰기를 이어가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도산 선생이 교육을 통해 사람을 길렀듯, 글을 통해 자신의 경험과 가치를 전하고자 한다.
“무언가를 크게 이루고자 하는 욕심은 없어요. 다만 산촌에 머물며 계속 글을 쓰며 정진하고 싶습니다. 올해는 새로 수필집을 낼 계획이고요. 또 80대 중반이 되면 자서전도 한번 써보고 싶습니다. 제 능력껏 최선을 다해 살아왔으니 가족과 지인들에게는 읽을 만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지요. 요즘은 시력이 예전 같지 않아 긴 시간 글을 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힘이 닿는 한 산촌에서 글 짓는 농사꾼으로 성실히 살아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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