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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ch 2023 Vol.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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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준비하는 교육

진정한 생태교육 학교 텃밭에서 시작된다
텃밭이 미래 교실인 이유

텃밭을 일궈 농산물을 직접 재배해보는 생태교육은 고마운 식량을 직접 키워볼 수 있다는 사실에 정서교육에도 한몫하지만, 뜨거워진 지구 온도를 낮추는 활동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깊다. 몇몇 학교들은 '학교 텃밭' 운영을 통해 손에 흙을 묻혀가며 채소를 길러 수확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수확한 농산물로 장을 담그거나, 급식에도 제공해서 농업과 경제, 과학까지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학습효과를 누리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전문적으로 농업교육을 시행하고자 모인 '교육농협동조합'의 교사들은 농사 교육을 단순 체험이 아닌 일상에 젖어 들게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생태교육이 디지털 기기에 빠져 사는 아이들에게 축복과도 같은 성취 경험을 느끼게 해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과정보다도 오랜 시간과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교육임에도 교사들이 기꺼이 이 활동에 동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김지윤 교육 전문 기자·前 한겨례 함께하는 교육 기자


삶에 체화되는 농업교육

예전에는 아파트 놀이터마다 흙이나 모래가 깔려 있었다. 30~40년 전만 해도 비가 오면 동네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나가 땅 파며 놀거나 나뭇가지를 연필 삼아 땅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그러다 보면 땅속에서 개미도 나오고 지렁이도 나왔다. 가끔 날개 잃은 꿀벌도 찾았다. 낯선 벌레를 보며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고, 주변 흙으로 온갖 것을 다 만들어보며 자랐다. 아이들은 흙을 만지며 개미, 지렁이, 땅벌레 같은 것을 봤다. 자연스레 자신의 시선을 발아래로 낮춰 볼 줄 알았다. 그러다가 주변의 풀들이 눈에 들어오면 꽃과 풀을 친구 삼아 재료 삼아 한참을 놀았다. 한데 요즘은 아파트 놀이터에도 흙이나 모래가 없다. 도심 속 아이들은 어린 시절 흙 한 번 만질 일 없이 자란다. 지금 아이들에게 흙은 어쩌면 ‘더러운 것’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도 그렇게 생각할까.
“땅에 씨앗 심고 손으로 잎도 다듬어주고, 자기가 정성 들여 직접 기른 채소를 보면 아이들 눈빛이 달라지죠.”
모두가 국어, 영어, 수학을 외칠 때 이보다 중요한 것이 농업과 먹거리의 가치라고 강조하는 교사들이 있다. ‘학교 텃밭’을 통해 교육과정에서 생태 친화적 농업을 배우고, 농민의 삶을 경험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농업이 가진 교육적 가치를 알리고자 노력하는 교사들이 모인 ‘교육농협동조합’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접하는 텃밭 농사가 단순 체험에 그칠 것이 아니라 아이들 삶의 문화이자 일상으로 스며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학교 속 생태 텃밭이 기후 위기 시대에 생물다양성 교육을 위한 생생한 공간이자 ‘미래 교실’ 그 자체라는 이야기다.
서울시 ‘학교 장독대 사업’ 시범학교로 선정돼 장을 담근 서울잠현초등학교
서울천왕초등학교 교사들의 경우 해당 공간 확보를 위해 서울 구로구청에서 터를 빌려 텃밭으로 꾸몄다.
생태환경을 중시하고 서로를 아우르는 농촌 문화를 학교 울타리 안으로 가져온 텃밭 수업을 통해 다양한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 아이들이 직접 농부가 되어 작물을 수확하거나 자연을 소재로 시를 지어보는 것도 가능하다. 수확한 작물을 벼룩시장 같은 장터에 판매하는 경제 교육도 가능하다. 생산자와 소비자, 유통과 물류의 개념도 자연스레 알게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변화가 아이들의 삶에 체화되는 교육이기도 하다.

밥상에서 배우는 삶의 지식

먹거리는 언제나 아이들의 주요 관심사다.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환경·기후 문제나 유전자변형식품 등이 당장 오늘 점심 밥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알게 되면서 ‘우리 아이 먹거리’는 공부보다 더 중요한 이슈가 됐다.
부모 세대만 해도 ‘할머니 댁 장독대’ 풍경에 익숙하지만, 아파트촌에서 태어나 살아가는 요즘 ‘아파트 키즈(kids)’는 장독대가 뭔지도 잘 모른다. 마트 진열대에 놓인 사각 플라스틱 포장 속 완성된 고추장, 이미 포장된 쌀 포대의 모습에만 익숙하다.
하지만 영양교사를 비롯한 교육 전문가들은 “식재료가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아이들이 직접 눈여겨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콩이 메주가 되는 과정, 메주가 장이 되는 단계, 상추와 깻잎이 자라는 모습 등을 교육 현장에서 직접 보면 편식습관을 바로잡기에도 좋다”라고 말한다. 기후변화 등 환경 교육까지 한 번에 가능한 것이 바로 ‘텃밭 교육’이라는 것이다. 5년여 전, 서울 아파트촌에 위치한 서울잠현초등학교를 취재한 적이 있다. 이 학교는 아이들과 직접 장을 담그는 학교로 유명했다. 학교 한편에 자리 잡은 장독대에는 ‘잠현뜰’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당시 서울시 ‘학교 장독대 사업’ 시범학교로 지정된 서울잠현초는 항아리와 메주, 소금 등의 구입 비용을 지원받아 학교에 장독대를 만들었다. 고추장, 된장, 간장 등 다양한 장류는 1년 동안 발효·숙성 기간을 거쳐 깊은 맛이 나는 ‘잠현뜰 장’으로 거듭났다. 직접 장을 담가보고 텃밭을 가꿔본 아이들은 “떡볶이에 들어가는 고추장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수고와 노력이 들어가는 줄 몰랐다. 직접 만든 장을 먹고 싶어 고추와 상추 등 채소도 더 많이 먹게 됐다”라고 말했다. 사실 아이들 먹거리와 급식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 입장에서 학교 장독대 사업은 번거롭기도 한 일이었다. 급식에 사용하는 식재료는 무엇보다 안전성이 보장되고, 식중독 등 위험성이 없어야 한다. 그 때문에 ‘학교에서 직접 담근 장’을 실제 급식과 먹거리 교육에 활용하려면 맛은 물론 안전이 최우선이어야 했다. 그래서 당시 이 학교 학부모들은 ‘장 전문가’에게 자문도 받았다. 생태 텃밭과 더불어 학교 장독대는 환경 교육뿐 아니라 과학 지식도 얻을 수 있는 살아 있는 교육 현장이었다. 다 함께 급식실에 모여 장을 담글 때 염도 맞추기, 장 가르기, 장의 발효와 숙성 원리 등을 함께 교육하니 아이들도 신기해했다. 아이들은 “고추장은 맵고, 된장은 색깔이 이상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콩이 차차 장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니 재미있었다”라고 말하거나 “염도에 따라 장맛이 변할 수 있고, 발효 과정을 거치는 게 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땀 흘려 담그고, 노심초사 기르고 가꾸는 과정에서 생명 존중까지도 배우는 모습이었다.

꼬마 농부 위한 치유 텃밭

이러한 교육 효과들이 알려지며 2021년에는 서울시에서 ‘꼬마 농부’를 위한 치유 텃밭을 일구기도 했다. 강동구 상일동 치유농업센터 일원에서 상추와 무 등 친환경 농작물을 직접 가꾸고 수확까지 해볼 수 있는 텃밭을 운영한 것이다. 선정된 단체에는 종자와 모종을 각 2종씩 제공하고 단체별로 기간 중 2~3회 텃밭 전담 강사의 채소 재배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당시 서울특별시농업기술센터 조상태 소장은 “도심에서 자란 아이들이 텃밭 활동을 통해 농업을 체험하고 정서 순화의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친환경 치유 텃밭을 운영하게 됐다. 많은 어린이가 우리 농업을 친숙하게 느끼고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텃밭으로 옮겨온 교실

앞서 언급한, 농촌과 학교의 협력 관계를 돈독히 만드는 교육농협동조합도 텃밭을 미래 세대를 위한 교실로 만드는 모임이다. 우리 농업을 공부하고 배움을 나누는 교사와 농부, 활동가들이 함께 만들었다. 이들은 “농업을 통해 민주시민으로서 지녀야 할 지식과 가치를 배울 수 있다”라고 말한다. 학교에 음악실, 도서실, 컴퓨터실, 운동장 등 다양한 공간이 필수적으로 있는 것처럼 교육농협동조합 교사들은 서로 힘을 합해 학교 텃밭이나 텃논을 만든다.
교육농협동조합 구성원들은 생명의 원천인 땅, 그곳에서 일하는 농부, 그리고 농촌에 관해 함께 모여 이야기한다. 미래 세대에게 농업을 가르치는 것이야말로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드는 길 중 하나라고 여긴다. 어쩌면 교육의 본질이 ‘한 인간이 평생을 잘 살아내는 것’이라면, 농업 역시 ‘생존’의 영역이기에 농업 교육도 학교에서 가르쳐야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농업에 관한 교육을 통해 민주시민성을 키울 수 있다는 이야기다.
교육농협동조합 교사들은 콧구멍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혀 고통스러워하는 바다거북, 작은 빙하에 간신히 올라선 북극곰 같은 감상적인 환경 교육보다는 실질적 생태교육을 겸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구 생물들이 고통스러워하니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자’라는 관점보다는 생명과 생명사이의 연결성, 선순환의 중요성 등을 알려 미래 세대가 공동체성을 키울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생명 순환의 원리, ‘함께 살이’의 감수성, ‘나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는 이타성 기르기 등은 텃밭과 텃논을 통해 가르칠 수 있다. 텃밭을 일구며 자연스레 협동하고, 날씨와 환경을 관찰하게 된다. 내가 아닌 다른 생명과의 만남이 일어나는 텃밭에서 아이들은 움직이고, 키우고, 한 끼 먹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흙과 풀로 이뤄진, 학교 울타리 속 텃밭이 미래 교실인 이유다.
내 입으로 들어오는 먹거리의 탄생과 소멸을 노력과 시간을 들여 지켜본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아이들에게는 큰 배움거리다. 학교 텃밭에 흩뿌려지는 비바람 속에서도, 오늘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성장하는 작물들을 보며 아이들의 마음도 하루가 다르게 커갈 수 있다. 작은 스마트폰의 네모난 화면 속에서 유튜브 쇼츠(자극적으로 편집한 짧은 영상) 등만 반복적으로 터치하던 학생들은, 손에 흙을 묻혀보고 풀냄새를 맡아보며 살아 있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아이들의 세계는 한 층 더 풍요로워진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