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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바꿔요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오른 한글의 높아진 위상
자주 쓰는 외국어, 자랑스런 우리말로 바꿔보자

1884년 출간돼 11세기 중반부터 현재까지 영어권에서 사용되어온 단어 60만여 개를 수록하고 있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사전으로 손꼽힌다. 이 사전에 ‘애교(aegyo)’, ‘대박(daebak)’, ‘먹방(mukbang)’을 비롯한 한국어 낱말 26개가 올랐다. 방탄소년단(BTS), 영화 「기생충」, 배우 윤여정, 드라마 「오징어 게임」 등 세계 문화계를 휩쓸고 있는 우리 콘텐츠의 영향력이 반영된 것이다. 다만 한국식 영어(콩글리시)로 소개된 ‘스킨십(skinship)’과 ‘화이팅(fighting)’이라는 단어 대신에 ‘피부 교감’과 ‘힘내자’, ‘아리아리’가 올랐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습관처럼 쓰는 외국어 대신 세계인들이 먼저 알아보고 존중하는 우리말로 바꿔 써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호에서는 ‘스타트업’, '키워드’, ‘화이팅’, ‘플래카드’ 등 자주 사용하는 외국어를 대체할 말들을 알아본다.

이승훈 동아일보 어문연구팀 차장

스타트업 => 새싹기업

“일회용 마스크 폐기물을 재활용해 옷걸이나 학용품을 만드는 프랑스 스타트업 ‘플락스틸’의 사업 모델은 팬데믹을 맞은 시대의 자화상을 반영한 사업 기회로 읽힐 만합니다.” -디비알(2021. 10. 1.)

‘스타트업(startup)’ 하면 성공을 꿈꾸며 스타트업에 뛰어든 청춘들의 시작(start)과 성장(up)을 떠올릴 분도 계실 것 같다. 스타트업은 혁신적 기술과 아이디어를 보유한,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창업 기업을 이르는 말이다. 상장 전 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신생 기업은 유니콘처럼 상상 속에서나 있을 수 있다고 해 유니콘 기업, 100억 달러 이상은 데카콘(decacorn), 1,000억 달러 이상은 헥토콘(hectorcorn)이라 한다. 국립국어원은 스타트업을 ‘새싹기업’, ‘창업 초기 기업’으로 다듬었는데 새싹기업은 파릇파릇한 새싹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느낌을 주는 듯하다. 유니콘 기업은 ‘거대 신생 기업’으로 다듬었다. 초기 창업자를 선별해 3개월 안팎의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보육하는 기관인 ‘액셀러레이터’는 ‘새싹기업 육성기관’으로 쓰면 쉬울 듯하다.

키워드 => 열쇠 말, 핵심어 / 키맨 => 중추인물, 중심인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가 8일 국회에서 행한 첫 소신 표명 연설에 담긴 키워드가 주목받고 있다. 연설문에 녹아 있는 키워드가 향후의 정책 방향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특히 기시다 총리의 이번 연설에서 두 전직 총리와 확연하게 구분되는 키워드는 성장과 분배로 나타났다.” -문화일보(2021. 10. 9.)

‘데이터를 검색할 때, 특정한 내용이 들어 있는 정보를 찾기 위하여 사용하는 단어나 기호’를 말하는 ‘키워드(keyword)’는 사전에 올라 있는 말이지만, 기시다 총리의 연설에 쓰인 키워드는 ‘핵심어’나 ‘열쇠 말’로 썼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문학을 꿰뚫는 열쇠 말은 ‘정체성’이다.”(서울신문), “한국에서 한 번이라도 돈 벌 궁리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떠올릴 3가지 열쇠 말, 아파트, 주식, 로또에 대한 최신 뉴스를 한 꼭지씩 살펴보자.”(아시아경제)라는 기사문처럼 ‘키워드’를 ‘열쇠 말’로 바꿔 쓰면 이해하기 쉽다. 최근엔 키맨(keyman)이라는 말도 많이 쓴다. ‘경찰, 대장동 의혹 키맨 휴대폰 확보’(한국일보), ‘검찰, 외교부에 대장동 키맨 여권 무효 요청’(연합뉴스TV) 등 기사에 쓰인 ‘키맨’은 무슨 뜻일까? ‘기업과 같은 조직에서 문제 해결 과정이나 의사 결정 과정을 거칠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수준의 힘을 가진 사람’으로 우리말샘은 풀이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2006년 ‘키맨’을 대신할 우리말로 ‘중추인물’을 제시했는데, ‘핵심 인물’, ‘중심 인물’, ‘(기업 등의) 간부’ 등을 적절히 골라 써도 좋을 법하다.

화이팅! => 아리아리!, 아자아자!

“표준국어대사전에 없는 말 가운데 사람들이 많이 쓰는 감탄사, 화이팅. 카카오톡 트위터 같은 대화창에서는 ‘화이링’, ‘홧팅’, ‘퐈이팅’ 따위로 많이 쓰는 이 말이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올랐다.”
-동아일보 (2021.10.6)

‘아리아리’나 ‘아자’, ‘아자아자’, ‘힘내자’가 올랐더라면 더 기뻤을 텐데···. 화이팅의 규범 표기는 ‘파이팅’인데 사람들은 화이팅을 더 많이 쓴다. 사전에는 ‘운동 경기에서, 선수들끼리 잘 싸우자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 또는 응원하는 사람이 선수에게 잘 싸우라는 뜻으로 외치는 소리’라고 풀이해 놓았다. 일본어 ‘화이토(ファイト, fight)’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투지(鬪志)’라는 뜻의 ‘파이팅 스피리트(fighting spirit)’가 줄어든 말이라는 설이 현재 맞서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힘내자’, 한국체육기자연맹은 ‘아자아자’나 ‘으랏차차’, 한글문화연대는 ‘아리아리’로 바꿔 쓰자고 한다. ‘아리아리’는 ‘길이 없으면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길을 내자’는 뜻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공식 응원 구호로 채택되기도 했다.

플래카드 => 펼침막, 현수막 / 피켓 => 손팻말

플래카드 들고 반파키스탄 시위하는 아프간 여성들”
-뉴스1(2021. 9. 9.)

“‘플래카드’ 충돌… 모든 상임위 ‘감사 중지’ 진통”
-뉴스1(2021. 10. 1.)

‘긴 천에 표어 따위를 적어 양쪽을 장대에 매어 높이 들거나 길 위에 달아 놓은 표지물’인 ‘플래카드’도 사람들은 ‘프랑카드’, ‘프랜카드’, ‘플랭카드’로 다양하게 말한다. 국립국어원은 ‘현수막’으로 다듬어 쓸 것을 권하지만 (예전엔 세로로 길게 드리운 것만 현수막이라 했지만 이젠 가로로 펼친 것도 현수막이라고 한다) 우리말샘에 나오는 ‘펼침막’이 더 쉽지 않을까. 예시로 든 ‘뉴스1’의 기사 속 사진과 국회 충돌 영상을 보니 ‘플래카드’라고 표기했지만 현수막도 아니고, 펼침막도 아니었다. 영어로는 ‘피켓(picket)’이 더 정확한 표현으로, 피켓은 ‘어떤 주장을 알리기 위하여 그 내용을 적어서 들고 다니는 자루 달린 널빤지’를 가리킨다. 물론 이 단어 역시 ‘손팻말’이라는 우리말을 쓰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전세계인에게 한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것은 우리의 작은 선택에서 시작될 수 있다. 케이 로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