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고재열 여행 감독 (어른의 여행클럽·트래블러스랩 총괄 감독) / 사진 제공 부여군청
젊은이들의 인기 여행지로 떠오르는 부여
삼국시대에 백제가 멸망하기 전 거북이 등껍질에 ‘백제는 보름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지금은 조금 다른 의미로, 여행지에 비유하자면 화려하고 꽉 찬 느낌의 경주가 보름달 같다면, 부여는 수수하지만 여백의 미가 있는 초승달 같다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황리단길로 경주가 다시 청춘 여행지로 부상했는데 그 맞수를 꼽으라면 단연 부여다.연인들의 인생 사진 명소 ‘성흥 산성 사랑 나무’
‘성흥 산성 사랑 나무’는 부여의 ‘노을 맛집’, ‘인생 사진’ 명소로 뜨는 곳이다.젊은 공예가들의 터전이 된 옛 백제 항구마을 ‘규암’
부여 읍내의 백마강 건너편에 있는 규암마을은 옛 백제의 무역항이었다. 백제가 멸망하고도 서해안의 물산이 백마강을 통해 들어올 때 규암마을 나루터가 집산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꽤 풍요로웠던 고장이다. 근현대까지 규암마을은 무역항의 풍요로움을 잃지 않았는데 마을 길을 걸으면 화려한 과거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다.* 적산가옥(敵産家屋)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고 물러나면서 국가에 귀속된 재산 가운데 일반에게 매각된 일본식 주택을 의미한다.
한때 대표적인 수학여행지였던 부여는 택시회사가 수영장을 운영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던 관광지였다. 규암마을과 읍내를 잇는 바지선에 버스를 실어나를 만큼 유동인구가 많았다. 전성기에는 극장과 백화점까지 있었던 규암마을에 요정이라 불리던 고급 술집도 60여 곳이었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백제의 시간을 걷다, 부소산성에서 궁남지까지
부여에서 백제의 시간을 느끼는 일정으로는 부소산성(낙화암), 정림사지, 궁남지를 순서대로 걷는 방식을 추천한다. 백제 멸망의 장소부터 백제의 화려한 순간까지 사비의 시간을 거꾸로 걸을 수 있다. 장소 간 거리도 1km 이내로 충분히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코스다. 박물관에 갇힌 백제가 아니라 세월의 풍파를 맞으며 견뎌낸 진짜 백제를 만날 수 있는 길이다.백제의 화려함을 만나고 백마강의 석양을 담다
백제를 상상만 하는 것으로 조금 부족하다 싶으면 백제문화단지에 가면 된다. 백제의 궁궐과 사찰을 재현한 곳이라 백제의 화려함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다. 백제문화단지에 복원된 능사 5층 목탑은 백제 시대에 불교가 얼마나 화려했는지 가늠하게 해준다. 문화재가 아니라 재현한 곳이니 이곳에서는 백제를 만끽하는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넓은 궁궐 마당에서 날렵한 처마 선을 살려 하늘을 넣어 찍으면 제법 좋은 사진이 나온다. 4월부터 11월까지 매주 금, 토, 일 저녁에 야간 개장을 하는데 석양 사진을 찍고 둘러보면 좋다.수월옥(충남 부여군 규암면 수북로 37)
빼어난 달이라는 의미의 ‘수월옥’은 진지한 무심함을 느낄 수 있는 카페다. 카페 주변에 속절없이 자라는 풀이 너저분해 건물이 잘 눈에 띄지 않는 자유분방함이 매력적인 곳이다. 과거 고급 술집(요정)으로 운영되어 온 건물의 외관과 내부 골조는 그대로 살리면서 현대적인 예술 감성을 더해 카페로 개조했다. ‘하마터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라는 ‘수월옥’에 대한 방문자들의 리뷰가 이해될 만큼 있는 듯 없는 듯하지만, 한번 들어오면 나가고 싶지 않는 마음이 드는 묘한 매력을 지닌 공간이다.수북로1945(충남 부여군 규암면 수북로41번길 11-50)
천연염색 공예가 김준현 씨와 한복 디자이너 최영숙 씨가 의기투합해 만든 ‘수북로1945’는 요즘 유행하는 식물 카페다. 76년 된 한옥을 개조하고 천이 아니라 정원을 꽃과 나무로 염색했다. 가드닝 전문가는 아니지만 부지런한 식물 집사여서 정원이 빠르게 꼴을 갖췄다. 식물을 실내로도 끌어들여서 하얀 캔버스를 풍경으로 멋진 실내 조경을 만들어냈다.서동한우(본점: 충남 부여군 부여읍 성왕로 256)
한우 숙성육의 본좌라 할 수 있는 ‘서동한우’는 고기를 맛있게 먹기 위한 깊은 고민과 노력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그동안 소고기는 마블링을 중심으로 등급을 매겼는데 서동한우는 이에 반기를 들고 숙성을 통해 맛을 높였다. 좋은 로스팅이 커피맛을 더하듯 숙성으로 소고기 맛을 풍부하게 한 것이다. 드라이에이징(건식 숙성)으로 지방 맛이 아니라 고기 냄새를 배가해 사람들의 입맛을 이끌었다. 그 마법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소고기를 부위별로만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숙성한 기간에 따라 가격을 달리하는데 어떤 소고기를 어떻게 정형해서 어떻게 구워야 맛있는지를 주인장이 직접 설명해준다.시골통닭(충남 부여군 부여읍 중앙로5번길 14-9)
부여중앙시장 입구에 있는 시골통닭은 가히 ‘닭의 이데아’로 꼽을 수 있는 곳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옛날 통닭 맛을 제대로 구현해주었는데 무엇보다 재료가 되는 닭이 신선하다. 튀김옷이나 기름에도 신경을 썼는데 일단 생각보다 닭이 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을 완벽하게 구현했다. 찌든 기름 냄새도 없고 눅눅함 없이 기분 좋게 구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