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이코노미’는 우리나라가 아직 선진국에 도달하지 않은 과거로부터 시작된 ‘매우 어둡고 혼란스러운 경제 상황’을 일컫는 말로, ‘제로 금리’, ‘제로 물가 상승률’, ‘제로 출산율’ 등 모든 것이 ‘제로(0)’로 향하는 경제상황을 의미한다.
세계 최저 출산율로 위축되는 경제, 늘어나는 정부 부채와 재정 건전성 악화로 인한 국가 신용등급 강등 가능성, 경제성장률은 하락하고 취업 기회를 잃어버린 ‘코로나19 세대’가 부른 가계의 빈곤화 등이 우리 경제를 ‘제로 이코노미’로 이끌고 있다.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이 언급되는 현시점에서 제로 이코노미화 가능성을 진단해본다.
글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
조영무 연구위원은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미국 콜로라도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으로서 지난 20년 동안 국내외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을 분석해왔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국토교통부, 외교부 등 여러 정부 부처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KBS, MBC, SBS, YTN 등 주요 방송사의 뉴스, 대담, 토론에서 자주 볼 수 있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와 기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제로 이코노미」라는 책을 발간했다.
코로나19로 체감하는 제로 이코노미
0%대 경제성장률, 0%대 물가 상승률, 0%대 금리의 경제는 저체온증에 빠진 경제라 할 수 있다.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으니 물건을 사려는 수요가 적어 물가는 오르지 않고 투자하려는 수요도 줄어 금리도 낮은 수준에 머물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로 옆 나라 일본의 경제를 통해 경제가 저체온증에 빠지면 얼마나 어렵고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게 되는지를 지켜봤다. 이런 상황에서 출산율마저 0%대로 떨어진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인구가 줄어 미래를 담보하기 더욱 어려워진다. 이러한 ‘제로 이코노미’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우리 경제에서 현실화되었다.
2020년 한국 경제성장률은 -0.9%로 역성장했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에 이미 0.4%로 낮아졌고, 2020년에도 0.5%에 머물렀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0.5%까지 낮췄고, 은행 정기예금 금리 등 시중 금리 대부분이 0%대로 떨어졌다.
계속 낮아지던 합계출산율은 0.8명대가 되었다. 남자와 여자, 부부 한 쌍이 낳는 아이가 평생 0.8명에 불과하다는 의미로 한 세대가 지날 때마다 인구가 반 이상 줄어들 것이 예상된다.
회복되는 경제? 제로 이코노미는 현재 진행형
다행히 2021년을 지나면서 한국 경제는 제로 이코노미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인다. 수출이 호조세를 나타내고 소비가 회복되면서 2021년 경제성장률은 4% 전후에 달할 전망이다. 석유 등 국제 원자재 가격이 다시 오르고 음식료품 등 먹거리 가격이 오르면서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대에 달한다. 한국은행은 금리 인상을 시작했고, 앞으로도 계속 올리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경제는 이제 제로 이코노미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걸까? 장기적으로 보면 한국 경제의 제로 이코노미화 추세는 여전히 진행 중인 것으로 보인다. 도리어 일부 측면에서는 코로나19가 제로 이코노미화를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도 있다.
내년 우리 경제는 수출 증가세가 둔화함과 동시에 소비 역시 충분히 회복되지 않으면서 경제성장률이 2%대로 낮아질 전망이다. IMF 등 많은 국내외 기관은 이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점차 낮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현재는 인플레가 걱정거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급 측면의 가격 상승 요인이 진정되면 물가상승률도 다시 하락세를 나타낼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인 보복 소비를 거치고 나면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는 가운데 수요가 계속 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향후 한국은행이 금리를 많이, 지속적으로 올리기도 어려울 전망이다. 경제가 금리 인상의 충격과 부담을 감내하기 어렵다면 가계부채 증가, 자산 가격 상승만을 이유로 계속 금리를 올리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남길 상흔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은 점차 완화되고 있지만, 코로나19가 우리 경제에 오랫동안 남길 상흔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 많은 가계와 기업을 돕기 위해 엄청난 돈이 풀렸고 이런 돈은 대부분 빚이다.
빚을 갚아나가야 하는 과정에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인 충격은 어느정도 예상되는 시나리오이다. 돈을 마련하는 가계는 소비를, 기업은 투자와 고용을 줄이면서 경제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지만, 정책 당국에서는 상환 시기를 미뤄주는 납부 유예 조치 등 충격 완화 정책들을 내놓고 있고, 금융기관들은 저금리로 기업이나 가계에 생계자원을 지원하며 충격을 완화할 방법들이 제안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디레버리징(Deleveraging)
*으로 인해 경제가 부진에 빠질 가능성은 높지만, 정부 당국, 금융, 기업의 역할 수행에 따라 이후 경제 위기는 예상보다 속도가 늦춰질 수도 있다.
* 디레버리징(Deleveraging):
가계나 기업 등 개별 경제주체의 대차대조표에서 부채의 비중을 낮추는 것을 의미한다.
부실기업, 구직 청년에게 가혹한 시대
한편,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충격에도 불구하고 기업 대출 연체율과 부도율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정책 당국의 금융 지원 때문이다. 문제는 코로나19가 끝나갈수록 어려워진 기업을 계속 이런 식으로 돕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의구심과 우려가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코로나19 와중에 업황이 좋았던 반도체 등의 수출, 제조, 대규모 기업의 실적이 크게 개선됨에 따라 전반적인 기업들의 상황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수많은 중소 기업들이 사실상 큰 타격을 입었다. 코로나19가 진정되고 기업 금융 지원이 약화할 때 부실기업 또는 취약기업은 더욱 위험해질 수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청년 실업이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취업에 어려움을 겪던 20대 중후반 청년 세대는 코로나19로 인한 고용 충격 속에서 실업이 장기화되고 있다. 문제는 청년 세대의 경제적 어려움이 심화하고 경제적 안정을 찾는 시기가 늦어질수록 이들이 결혼, 출산 등을 미루면서 이미 1가구당 0.84명(2020년 통계청 기준)으로 낮아진 출산율이 더욱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구가 줄어도 AI, 로봇 등이 생산을 대신해줄 것이므로 걱정할 필요 없다는 주장도 있지만 문제는 이렇게 만든 물건을 사줄 사람이 줄면 결국 수요 부족으로 경기가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코로나19가 남길 경제적 상흔이 우리 경제의 제로 이코노미화를 가속화하지 않도록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