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성미 / 사진 김수
글 이성미 / 사진 김수
1443년, 세종은 우리말을 표현할 문자가 없어 자신의 마음을 글로 전할 수 없었던 백성들을 불쌍히 여겨 한글을 창제(創製)했다.
그로부터 580년이 흘렀다. 한글 덕분에 우리는 언어와 문자를 자유롭게 쓰며 살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시 통(通)하지 않고 있다. “심심(甚深)한 사과를 전한다”라는 말에 “왜 사과를 심심하게(무미하고 따분하게) 하느냐?”
따지고, 금일(今日)을 금요일(金曜日)로 받아들인다. 오해는
다툼이 되고, 혐오로 이어진다. 단순 해프닝이 아니다. 문해력 차이에서 비롯된 사회 현상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나랏말싸미 문해력이 달아 서로 사맛디 아니하다.
한양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및 대학원 러닝사이언스학과 리터러시 전공 교수인 조병영 교수는 “사람과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소통하기 위해선 문해력을 길러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미국에서 15년 동안 문해력과 언어, 문화 관련 분야를 교육 및 연구한 조 교수는 2020년 한국으로 돌아와 문해력 교육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다.
그렇다면 문해력이란 무엇일까? 조병영 교수는 문해력을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문해력(文解力)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글자 그대로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글을 읽고 쓰는 능력’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방점을 찍고 싶은 부분은 ‘쓰다’ 입니다. 단순히
읽고 ‘그렇구나’ 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쓰고(write) 또 쓸(use) 줄 알아야 합니다. 읽고,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활용할 줄 알아야 비로소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문해력은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다. 배움, 즉 경험을 통해 길러진다. 여기서 경험이란 읽어본 경험, 공감하고 소통해 본 경험을 말한다. 그러나 “나만 잘하면 된다”라는 성과 중심의
사회 분위기는 상대를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의지를 꺾어 놓았다. 책을 읽으면서도 “이러한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하고 상대를 이해해야 하는데, 현대사회의 사람들은 읽지 않고 읽어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선 읽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종이에 적힌 글자를
읽는 과정을 거치며, 아이들은 텍스트를 나누고 다시 연결하고 분석하고 의미를 이해하는 경험을 한다. 따라서 정보 습득,
독해력 향상 등에 집중하기 이전에 우선 텍스트를 읽는 경험을 하게 해야 한다.
둘째, 읽은 것을 활용해야 한다. 문장과 단어를 정확하고 유창하게 읽은 다음에는 의미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배우는 과정으로 넘어가야 한다. 후자가 빠진 교육은 의미가 없다. 따라서 읽었다면, 그것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질문하고 이야기하게 해야 한다.
셋째, 독서의 즐거움을 알아야 한다. 어른이 되어 책을 멀리하는 것은 읽을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일 수 있다. 공부 때문이 아니라 읽는 즐거움 자체가 이유가 되도록 해야 한다. 앞서 이야기했듯 학습 효과에만 집중하지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글을 즐겁게 읽도록 기회를 준다면, 어른이 되어서도 책을 가까이하며 꾸준히 문해력을 키울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문해력을 길러주길 당부하는 이유는 부익부 빈익빈(富益富 貧益貧)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배움의 격차도
점점 벌어지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책을 즐겨 읽고 세상과 소통하던 아이는 저절로 다양한 어휘를 습득하고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는 법을 터득한다. 또 작은 성공의 경험이 쌓여 점점 배우기를 즐긴다. 반면, 이를 멀리하던 아이는 점점 세상과 단절된다. 디지털 세상 속 편향된 알고리즘에 갇히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따라서 가정, 학교, 사회가 아이들이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함께 도와야 한다.
“문해력의 격차가 마음의 격차를 만들고 마음의 격차는 기회의 격차, 학업 성취의 격차를 만듭니다. 따라서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는 즐겁게 책 읽는 경험과 사회 경험을 하게 해주고, 학교에서는 체계적으로 능력을 기를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또 개인은 평생에 걸쳐 읽고, 이해하고, 경험하려고
노력해야 할 테고요. 결국 문해력은 우리가 평생 해야 할 숙제인 셈이죠.”
학교의 역할도 중요하다. 어떤 교과든 다루는 내용만 다를뿐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고, 데이터를 다루고, 다양한 기호를 해석하는 것은 같다. 따라서 문해력도 교과의 구분 없이
누구나 관심을 두어야 한다.
“각 과목에서 사용하는 어휘들은 단순히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알아야 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우리 학생들이 세상을 살아가며 쓸 언어의 재료죠. 재료가 풍부한 학생들은 그만큼
많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고요. 따라서 과목에 상관없이 수업 시작하기 전 5분~10분 만이라도 오늘 교과서에 등장할 주요 어휘의 정확한 의미를 짚어보거나 실제 활용 사례들을
탐구해 본다면 분명 좋은 문해력 교육이 될 것입니다.”
나아가 문해력을 구심점으로 삼고 다양한 융합 교육을 시도해
본다면, 학교가 교육 공동체로서 더 굳건해질 수도 있다.
교과 간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한 명의 교사가 여러 과목을
가르치는 초등학교가 융합 교육을 시도하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힐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교사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를 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선생님들이 교실 안에서 하고 싶은 교육을 마음껏 해낼 수
있도록 사회가 지원 시스템과 문화를 마련해주면 좋겠습니다.
교육에서는 선생님들이 전문가시니까요.”
조병영 교수가 문해력 교육과 연구 끝에서 가장 발견하고
싶은 단어는 ‘행복’이다. 잘 읽고 잘 쓰는 사람, 그로 인해 행복한 사람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문해력이 사회를 좀 더
명랑하게 만들면 좋겠다. 그날을 위해 조병영 교수도 앞으로 사람과 세상을 읽고 이해하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