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글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장
중학교에, 고등학교에 갈수록 상황은 더 악화했다. “와, 못생겼다.” 춤과 노래 실력이 좋아도 소용없었다. 무대 아래서 터져 나오는 그 한마디면 끝이었다.
시선은 언제나 ‘예쁜’ 아이들의 차지였다. 상황은 스물일곱, 회사원이 되어서도 다르지 않았다.
노골적인 성희롱이 난무하지만 대꾸하기조차 힘들다.
그런데도 여전히 대중의 환호와 박수가 그리운 그녀. 그래서 그녀는 마스크를 썼다.
밤이면 인터넷 방송 BJ ‘마스크걸’이 된다. 타고난 몸매와 춤 솜씨에 높아져 가는 인기와 함께 별풍선이 터졌다.
시청자들은 그녀의 마스크 속 민낯을 궁금해한다. 과연 마스크를 벗을 수 있을까.
이를 외모지상주의라 비난하지만, 현실에서 외모는 경쟁력의 일부이다.
런던 정경대 교수였던 캐서린 하킴 박사는 이를 ‘에로틱 캐피털(Erotic Capital)’이라고 정의했다.
우리말로 하면 ‘미적 자본’ 정도 된다. 하킴 교수는
“외모가 뛰어난 사람은 평균 외모의 사람보다 10%~15%
돈을 더 버는 것으로 조사됐다”라고 밝혔다. 외모가 학력처럼 실질적으로 개인의 자본 형성에 영향을 준다는
말이다.
그는 「에로틱 캐피털」이라는 논문을 통해 자본주의에서는 여러 자본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돈이나 땅 같은 ‘경제적 자본’, 문학과 예술에 대한 지식인 ‘문화적 자본’, 인맥인 ‘사회적 자본’, 그리고 외모인 ‘미적 자본(에로틱
캐피털)’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적 자본은 개인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자본이지만, 학계는 지금껏 일부러 무시해 왔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면서
역설적으로 이런 무시가 미적 자본의 공급을 줄여 가치를 더 높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모미는 마침내 성형수술을 결행한다. 모미의 절친이 되는
‘춘애’도 마찬가지. 외모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들은 기술을 빌렸고, 이는 두 사람이 서로를 공감하는 계기가
된다.
성형 전과 후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 미적 자본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그러니 미적 자본을 획득하려는 수요도 갈수록 커진다. 덕분에 한국의 성형 산업도
호황이다. 성형수술로 부자연스러운 얼굴을 갖게 된 이들을
일컫는 ‘성괴’, 의사의 손길을 거쳐 쌍둥이처럼 똑같은 얼굴을
갖게 됐다는 의미의 ‘의란성 쌍둥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보톡스나 필러 등의 주사 요법을 통한 ‘프티 성형’도 유행이다.
모미의 외모 지향은 결국 사달이 난다. 그녀의 팬, 핸섬스님과
만나지만 그 만남은 그녀 인생을 완전히 뒤바꿔 놓는다.
그냥 못생기기만 했던 평범한 여성이 하룻밤 새 살인자가
된 것이다. 모미는 또 성형수술을 단행하지만, 이번에는 단지
미적 자본 때문만이 아니다. 자신을 숨겨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가면 속에 숨은 은둔 생활이 시작된다. 모미는 자신이
드러날까 두렵다. 몸이 아파도 신분 조회가 될까 봐 병원에 가지 못한다. 어디 모미뿐일까.
세상에는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이 무서운 사람들이 있다.
이런 심리는 성공한 사람 중에도 보인다. 자신의 성공이
실력이나 노력이 아닌 운으로 얻어졌다고 생각하며, 언젠가 제
실력이 들통날 것을 두려워하는 심리 현상을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이라고 부른다. 심리학자 폴린 클랜스와
수전 임스가 1978년 처음 사용한 용어다. 이들에 따르면 가면증후군은 성공한 여성들에게 많이 보였다고 한다. 성공한
여성들은 자신이 운으로 성공했다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윗사람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신의
매력을 이용하는 등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기 위해 과도하게 노력하고 자신을
혹사하면서, 그 결과 신경과민과 대인공포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심리학자 해럴드 힐먼은 가면 증후군을 앓는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과도하게 신경을 쏟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극 중에는 3명의 김모미가 나온다. 성형수술 이전의 김모미(이한별), 성형수술 이후의 김모미(나나), 그리고 수감된 이후의
김모미(고현정)다. 외모로 서로를 평가하는 현실에서
잘못된 욕망과 선택으로 점차 뒤틀려가는 캐릭터들을 보노라면 현실의 우리와 얼마나 다른가 생각해 보게 한다. “살면서
많은 분이 마스크를 쓸 때가 있잖아요. 마스크를 벗을 용기가 언제쯤 생기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에요”라고 말한
배우 고현정의 말은 그래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