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황인희 역사칼럼니스트
대학교 졸업 후 줄곧 출판계에서 일하다가 월간 「샘터」 편집장을 끝으로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다수의 저서를 저술했고, 현재 역사 칼럼니스트, 인문여행작가로서 집필과 강의에 전념하고 있다.
글 황인희 역사칼럼니스트
대학교 졸업 후 줄곧 출판계에서 일하다가 월간 「샘터」 편집장을 끝으로 프리랜서로 활동 중이다. 다수의 저서를 저술했고, 현재 역사 칼럼니스트, 인문여행작가로서 집필과 강의에 전념하고 있다.
「직지심경」이라고도 부르는 「직지심체요절」을 아시나요?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책으로 고려시대인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발행된 불교 서적입니다.
오랫동안 유럽에서는 1455년 전후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가 인쇄한 「구텐베르크의 성경」이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책이라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직지심체요절」은 그보다 무려 70여 년 앞선 1377년에 제작된 금속활자 책이지요.
하지만 「직지심체요절」은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에 있습니다. 1890년대 프랑스
외교관이 「직지심체요절」을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나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직지심체요절」을 찾아냈고,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직지심경의 대모’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병인양요 때 빼앗긴 책 중에는 조선 왕실의 의궤도 있었습니다. 의궤(儀軌)는 조선 시대 왕실이나 국가에서 치른 큰 행사를 그림과 문자로 기록한 책이지요.
이런 귀중한 도서를 찾기 위한 나의 여정은 1955년 프랑스 유학을 떠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여자로는 내가 첫 프랑스 유학생이었지요.
유학길에 오르는 나에게 스승이신 이병도 선생님은 여러 차례 당부하셨습니다.
“프랑스에 가면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외규장각 의궤의 행방을 찾아보아라.”
“예, 그와 관련한 공부를 마치는 대로 우리 보물을 찾는 데 온 힘을 쏟겠습니다.”
나는 프랑스 유학 생활 내내 ‘외규장각 도서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어떻게 그 책들에 합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고심을 하다가 외규장각 도서들을 찾기 위해 1967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사서가 되었습니다.
조선 왕실 의궤를 찾는 데 더 몰두하던 나는 1972년 우연히 「직지심체요절」을 먼저 발견했습니다.
‘앗! 이건 「직지심체요절」 아닌가? 역사적으로 의미와 가치가 큰 이 책부터 먼저 세상에 알려야겠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구텐베르크의 책보다 더 먼저 만들어진 금속활자 인쇄본 입니다.
한국의 옛 왕조인 고려 시대에 처음 만들어진 것이지요.”라고 말했지만, 사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구텐베르크보다 앞선 금속활자가 어디 있다고.
그게 사실이라면 증거를 가져와 봐요, 증거를.”이라며 내 말을 무시했습니다.
나는 「직지심체요절」이 최초의 금속활자 책임을 스스로 밝혀야 했습니다.
‘「직지심체요절」에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했다는 내용이 있으니 청주 흥덕사라는 절이 진짜 있었는지 밝혀내면 되겠다.’
그 무렵 마침 청주시에서 택지 공사를 하던 중 절터를 발견했는데 거기서 발굴된 유물들을 조사한 결과 그 절터가 흥덕사 터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이것 보세요. 한국 청주에 흥덕사라는 고려시대 절이 있었고, 거기서 1377년에 「직지심체요절」을 인쇄했다지 않습니까?”
당시 우리나라 언론에 ‘「직지심체요절」 발견’이라는 기사가 실리자 처음에 내 말을
무시하던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는 오히려 내게 화를 냈습니다.
“아니, 당신은 도서관 직원이면서 도서관 측과 아무런 상의도 안 하고, 절차도 거치지 않고 그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리고 당신이 ‘발견’했다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조선시대에 외교관이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가 프랑스로 「직지심체요절」을 가져올 때부터 그 책이 금속활자로 만든 가장 오래된 책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 한국관에 전시될 때도 ‘금속활자로 인쇄된 가장 오래된
책’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도서관은 그 가치를 알고 귀중본으로 관리해
왔는데요.”
1975년 프랑스 국립도서관 베르사유 별관 창고에서 조선 왕실 의궤를 내가 발견하자
그들은 더욱 나를 눈엣가시로 여겼습니다. 예전에 프랑스가 약탈한 것을 내가 세상에다 알린 꼴이 되었으니까요.
“사표를 내세요. 우리 프랑스의 명예를 더럽히는 당신 같은 사람을 더 이상 우리 직원으로 일하게 할 수 없습니다.”
결국 나는 사표를 냈지만 의궤에 관한 연구까지 그만둘 수는 없었습니다.
직원이 아닌 열람자 자격으로 도서관에 10여 년 동안 날마다 드나들며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도서관 관계자가 책을 치워버릴까 두려워 밥도 먹지 않고 연구했지요. 그때 도서관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내게 ‘파란 책만 들여다보는 여자’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의궤의 표지가 파란색이었기 때문입니다.
10여 년의 연구 끝에 마침내 나는 외규장각 의궤 191종 297권을 발굴했습니다.
이 의궤는 대대적인 복원 작업을 거쳐 1978년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이후 나는 외규장각
의궤 반환 운동을 펼쳤고, 김영삼 대통령과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정상회담을
통해 반환 합의에 이르게 했지요. 완전 반환이 아니라 영구 대여 방식이었지만
내 일생을 「직지심체요절」과 외규장각 의궤에 바친 결과 우리 역사의 찬란함을 알릴 수 있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