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정라희 / 사진 김성진
글 정라희 / 사진 김성진
인생은 우연의 연속이다.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던 청년 시절, 그의 열정에 불을 지핀 것은 법관을 향한 야망이 아닌 국어순화운동이었다.
그가 캠퍼스에 첫발을 디딘 때가 1967년, 당시만 해도 한국어에는 일본어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 지성이 모인 서울대학교 법대에서 매일 공부하던 법전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 형법에서는 ‘此限(차한)에 不在(부재)한다’는 말이 자주 나왔습니다. 쉬운 한자인데도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죠. 사전에도 뜻이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그러하지 아니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중요한 뜻을 담은 것도
아닌데 쓸데없이 어려운 표현으로 법에 대한 거리감만 키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즈음 서울대학교에서는 국어운동이 한창이었습니다.
전교 단위로도, 문리대에도 국어운동회가 있는데 법대에는 없었어요.
그래서 저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1학년 때부터 국어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렇게 대학 생활을 국어운동에 모두 쏟은 남영신 선생. 졸업 후에는 다른 진로를 모색하려고 했으나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다시 국어운동의 길을 걷기로 했다.
“처음에는 생계를 위해 취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시절에 시도했다가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순수한 우리말을 정리하는 일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는 해방된 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였기에,
사회 전반에서 일본의 흔적을 걷어내려는 의지가 강했다.
이런 움직임은 언어 영역에서 더욱 강하게 드러났다. 언어를
바꾸는 일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남영신 선생은 “그 시절
국어순화는 자주 쓰는 일본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일이었다” 라고 회고했다.
문제는 정작 같은 뜻을 지닌 우리말이 얼마나 있는지 알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요즘과 달리 그 시절 사전에는 한자어가
대부분이었고, 그마저도 일본인이 자주 쓰는 한자어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책에서 찾을 수 없으니 발품을 팔았다. 옛 소설과 시를 살핀 것은 물론이고, 활이나 놋그릇 등을 만들던
장인들의 구술 기록까지 뒤졌다. 판소리에서 자주 쓰는 ‘얼쑤’나 ‘지화자’ 같은 추임새도 하나하나 정리했다.
“예전에는 ‘추임새’라는 단어도 사전에 없었습니다. 이렇게
발굴한 단어들은 여느 사전처럼 가나다순으로 정리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 단어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사람들이 거의
알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우리말을 판소리, 집, 옷 등 분류 항목을 만들어 정리했습니다. 예를 들어 판소리 용어를 알고
싶으면 판소리 부문에서 찾을 수 있게 한 거지요.”
그렇게 나온 책이 1987년에 처음 선보인 「우리말 분류사전」 이었다.
당시 「우리말 분류사전」은 선풍적 인기를 끌었고, 언론에서도 남영신 선생의 활약에 큰 관심을 보였다.
1992년에는 한글날 기념식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1993년에는 정보통신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한 시인은 ‘토박이말을 쓰고 싶어도 낱말을 찾기 어려웠는데 사전이 나와서 좋다’라고 말해주었죠.
그런 열렬한 반응을 보면서 그동안 제 노력이 헛된 일이 아니었다는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우리말 분류사전’이라는 영역을 개척한 남영신 선생은 이후로도 사전을 끊임없이 개정하는 한편, 사전 외에도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
「안 써서 사라져가는 아름다운 우리말」 등 다양한 책을 정리하며 바른 말글을 전파하는 데 정성을 기울였다. 2017년에는 한 낱말의 쓰임새를 두루 살펴볼수
있는 「보리 국어 바로쓰기 사전」을 펴냈고, 2021년에는 이 내용을 초등학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을 곁들인 「보리 초등 국어 바로쓰기 사전」으로 엮었다.
남영신 선생의 국어운동은 우리말 발굴과 사전 편찬에 머무르지 않았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지만, 대한민국은 ‘국어기본법’이 있는 나라다. 2005년 1월 27일에 제정된 ‘국어기본법’은 국어 사용을 촉진하고 국어 발전과 보전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제정된 국어 관련 법률이다.
남영신 선생은 ‘국어기본법’ 도입에도 적극적으로 나선 주역이다.
“국가 차원에서 바른 말글의 규범을 정의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무원들이 규정에 맞게 국어를 쓰고 각종 공문서나 교과서가 거기에 부합한다면 사회 전반에 바른 말글을 쓰는 문화가 정착할 거라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2000년대 초반부터 ‘국어기본법’ 제정을 위해 다방면으로 움직였습니다.”
관련 부처를 설득하고, 교수들을 모아 국어 간담회를 열며
국회 입법 활동을 이어갔다. 한편에서는 자유국가에서 국어를 법으로 정의하는 일에 반대 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남영신 선생은 오랜 기간 민간 차원에서 국어순화 노력을 이어왔기에 누구보다 법의 필요성을 체감했다. 덕분에 현재 우리나라
각 정부 부처에는 국어책임관이 있으며, 정부 기관의
공문서는 ‘국어기본법’에 근거해 작성하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어 교육을 하는 세종학당도 이 ‘국어기본법’에 근거해 세워졌다.
최근 K-팝의 인기에 힘입어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세종학당을
중심으로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체계도 탄탄하게 갖춰지는 추세다.
“옛날에는 외국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면 한인교회로 가야 했어요.
수요가 거의 없으니 제대로 된 교재도 없었죠. 하지만 세종학당이 생기면서 다양한 한국어 교재가 개발 되었습니다.”
바른 말글 운동에 일생을 쏟은 그이지만, 언어란 사회와 함께
흐르고 변화하는 것이기에 일일이 채점하듯 신조어나 외국어를 걸러내는 일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할 수 있는 한,
표준어와 맞춤법에 맞는 최선의 말을 쓰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소신은 있다.
글자인 한글과 말과 글을 아우르는 개념인 한국어는 엄연히 다른 것이라고 콕 짚어주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별생각 없이 쓰던 말과 글을 다시 한번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