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진아
글 윤진아
‘팔’, ‘알’ 같은 소리를 낼 때마다 교실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발음이 어려워 몇 번이고 되물으며 따라 하는 아이들이
그저 대견하다는 한국교육센터 고성용 센터장과 한글학교
조인숙 교사는 순수한 학생들이야말로 삶의 기쁨이라고 말한다.
“여기선 전교생의 인사가 ‘안녕하세요!’입니다. 한국에 가보는 게 소원인 아이들은 우리를 ‘천사’라고 해요. 선생님을 보면
멀리서도 한달음에 달려와 안기며 반가워하죠. 우리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가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한시도 허투루 보낼 수 없더군요.”
82년 역사를 자랑하는 태국 치앙마이 공립 호프라중등학교에
한국교육센터가 생겼다. 부부가 치앙마이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2011년. 한국에서 30년 넘게 교편을 잡았던 부부는
나란히 교감으로 은퇴하고 태국으로 이주했다. 이후 현지 여러
학교와 인연을 맺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하는 한편, 한국어 수업 개설을 위해 노력해 왔다.
“전직 교사이다 보니 치앙마이에서도 학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어요. 우리나라가 막 발전할 때의 모습과 닮아 있었죠.
장학금과 체육복을 전달하며 인연을 쌓던 중 공립 호프라중등학교가
우리의 진심을 받아줘 2018년 한국어 수업 개설에
이어 올 2월 한국교육센터를 열었습니다.”
그는 스물일곱 청운의 꿈을 안고 교단에 설 때의 초심을 생생히
기억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첩첩산중 산골에서 자랐다.
보리밥으로 끼니를 때우고 소나무 껍질이나 칡, 찔레꽃을
구해 먹던 지독한 가난이었다. 부모님은 아침에 일을 나갔다가 잠들 때나 오셨기에 한 달에 한 번 얼굴 보기도 어려웠다.
“초등학교 4학년 소풍 때로 기억해요. 담임 선생님께서 따로
부르시더니 소풍 가면 맛있는 것 사 먹으라며 5환을 손에 쥐여주셨죠.
늘 힘없고 비실비실했던 제게 먼저 손 내밀어주신
선생님의 진심에 58년이 지난 지금도 눈물이 나요. 나도 크면
선생님이 되어 어려운 학생들을 돕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한 것 같아요.”
교직에 있는 내내 모든 학교에서 어떤 이유를 붙여서라도 각종
장학금을 만들어 가난한 학생들이 배움의 끈을 놓지 않게
도왔다. 치열했던 삶의 전환점마다 그가 택한 것은 번번이
모험이었다. 30년 넘게 교육자로서의 신념을 실천해 온 그는
목마름이 식지 않아서일까, 아직 꿈을 좇는 소년 같았다.
“치앙마이의 한 시골 마을에서 ‘부나’라는 이름의 학생을 만났어요.
가난했지만 전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 수재였죠.
현실에 치여 꿈을 버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장학금을 전달했어요.
덕분에 부나는 치앙마이대학교 사범대학에 진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지금은 고등학교 교사가 되어
제2, 제3의 부나에게 지혜와 용기를 전하고 있지요. 부나는
저를 ‘파파’, 아내를 ‘마마’라고 부르며 가족처럼 끈끈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글 민요가 마을 놀이터 속으로 파고들고, 주민들도 자연스럽게
한국 문화를 이야기한다. 한국교육센터가 길을 낸 덕분이다.
현지 주민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보물 같은 공간인 한국교육센터는
교실 한 칸을 센터로 꾸미고 한국어 수업을 넘어
한국 드라마와 영화 관람도 가능하도록 빔프로젝터와 음향시설도
설치했다. 작은 규모의 공연을 할 수 있는 무대도
마련했고, 한편에는 지인들이 한국에서 보내준 한국 문화 관련 물품도 전시했다.
“학년 말에는 한국 학교에서처럼 학교 축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전통 춤을 추며 ‘아리랑’을 부르고, 한국 요리도 나눠
먹고, K-팝 음악과 댄스를 즐기는 시간이죠. 축제에는 치앙마이 의회 부의장과 교육청 부교육감도 참석하는 등 호응도가
높아요. 한국을 향한 관심이 폭발적인 태국에서 우리 센터가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지요.”
치앙마이 공립 호프라중등학교에는 510명의 학생이 재학 중인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아이가 많다.
정규수업은 오전에 끝난다. 덕분에 한국교육센터의 일과는
늘 분주하다. 한국에 대한 높은 관심만큼 학생들이 한국교육센터에 찾아와 질문을 많이 한다. 문답을 이어가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시간이 날 때마다 교육 자료를 만들고,
현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한국어 발음을 쉽게 익힐
수 있도록 기호로 정리하는 연구도 이어진다. 교육자 집안에서
자라나 자연스럽게 교육의 길을 걸은 조인숙 교사는 ‘좌고우면(左顧右眄) 하지 말고 학생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라’던
부모님의 가르침을 한국을 넘어 멀리 이국에서도 실천 중이다. 퇴직 후 꿈은 접었어도, 새로운 열정을 품은 그녀의 심장은
여전히 교실을 향하고 있다. 낯선 땅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꿈을 품고 사니 ‘날마다 청춘’이란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인간 정신을 꾸준히 실천해
온 부부는 ‘한국국제학교’라는 다음 꿈을 위해 바지런히
또 길을 나서고 있다.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 예기치 못한
변수도 생겼지만 멈추지 않고 길을 낼 계획이다. 후원자를
물색하고 복잡한 행정 절차를 해결해 나가며 학교를 건립한
다음엔 ‘한국문화센터’를 열어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폭넓게
알리고 싶다.
“젊을 때 최선을 다해 살았어요. 일평생 성실히 쌓은 결과물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마음으로 살아갑니다. 남들처럼 은퇴
후 세계 여행 등 여가를 즐기며 편히 살 수도 있겠지만, 이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하잖아요.
교육자들의 헌신으로 아이들의 꿈이 이루어지고 더 나은 세상이 열릴 겁니다.”
한국교육센터 운영자와 이용자의 꿈은 언제나 같다. 그 어떤
시설보다 밝고 크고 편한 공간이 바로 이곳이 되길! 그리고
꿈을 키우며 신나게 소통하는 교실에서 더 많은 아이가 한
뼘 더 성장하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비상(飛翔)하길 바란다.
지금껏 열지 않았던 문을 용기 있게 두드리며 부부가 채워갈
열정과 애정의 밀도만큼 치앙마이 아이들의 꿈 이야기도 나날이 풍성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