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계묘년(癸卯年) 새해가 밝았다. 돌이켜보면 40년이란 세월을 이어가는 나의 교직 생활이다. 기나긴 시간 동안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함께해 주신 모든 분이 고맙기만 하다.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과 내가 가르친 학생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펼쳐지는 새해 아침이다.
그동안 내가 배운 선생님들은 100여 분 이상 되고, 가르친 학생들은 수만 명도 더 될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선생님이 나의 스승이 될 수는 없고,
그 많은 학생이 나의 제자가 될 수도 없는 일이다. 그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사제의 정은 각자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비록 처음에는 제도가 만들어준 물리적인 만남으로 시작되지만 서로에게 각별한 존경심과 애정이 쌓일 때
맺어지게된다. 제도적으로 배우고 가르쳤다고 해서 스승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제자는 스승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라야 하며, 스승은 그 제자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 이때 선택의 폭과 무게는 당연히 제자가 훨씬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내가 스승으로 모시는 분은 두세 분 정도다. 초등학생 시절, 그 척박한 산골에 초인처럼 오신 20대 총각 선생님이 계신다. 1960년대의 그곳은 전교생 60여
명에 복식학급이었으니 무엇보다도 중학교 입학시험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자식처럼 생활과 학업을 돌보아 주셨다.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결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만약 중학교 시험에 붙지 못했다면 나는 그곳 산골에서 평생 지게꾼이 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 한 분의 스승은 나를 문학의 길로 이끄셨다. 선생님은 고매한 인품으로 제자들의 아픈 부분을 돌보시며 필요한 것을 챙겨주셨다. 자신감을 잃고 문학을 포기한 나를
불러 문인의 길을 걷게 하셨다. 청년 시절 작가를 꿈꾸었지만 주변에 그 누구도 나의 문학적 역량을 인정해 주지 않았다.
그러한 여건에서 오직 선생님만이 나의 글이야말로 미래를 열어갈 열정이 밴 작품이라며 격려와 함께 추천을 해주셨다. 한 줄기 생명수 같은 다독임이었다.
오직 노력과 정성으로 최선을 다 할 뿐이다. 그런 스승을 모시는 지금의 삶이 행복하다.
문학의 길에서 만난 스승도 있다. 비록 나이는 나보다 적지만 무한정 신뢰를 보내며 나를 성장시킨 분이다. 스승이 되는 길에 학문과 인격이
중요하지 나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몸은 부모로부터 받았지만 지식과 정신은 스승으로부터 배우고 물려받았다. 내가 이 정도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은 분명 선생님들의 가르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스승님은 모두 운명의 방향을 돌려놓을 만큼 큰 영향을 주신 분들이다.
나의 제자는 얼마쯤이나 될까. 나를 스승으로 생각하는 학생이 있기는 할까. 부끄럽지만 가끔 궁금할 때도 있다. 그래도 고등학교에서 33년,
대학에서 10년 이상을, 평생 가르치는 일만 했는데, 나름대로는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쏟아 많은 작가도 길러냈는데, 하고 위안을 해보기도 한다.
돌이켜보면 단 하루라도 가르치는 일 외에는 해본 적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아직도 나의 인품은 넉넉하지 못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힘은 미숙하며,
학문과 문학의 깊이 또한 출중하지 못하니 따르는 제자가 있기는 하겠는가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어찌하랴. 선택은 나의 몫이 아니니 말이다.
때로는 나 혼자만의 사랑일지라도 내가 가르친 그 수많은 학생이 내 마음속에 고스란히 남아 환한 미소로 손짓해 줄 때도 있다.
무학산에서 불어오는 아련한 그리움의 향기가 울컥 스쳐 지나간다. 좋은 스승으로 부름을 받을 수 있도록 새롭게 다짐해 보는 새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