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에도 교육 봉사를 놓치 않겠다는 다짐
“위잉~” 드론을 바닥에 내려놓고 조종기 버튼을 누른다. 드론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날아오르더니 방향과 높낮이를 자유자재로 바꾼다.
사람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도 하고, 장애물을 넘기도 한다. 흥분을 감출 수 없다는 듯 아이의 발꿈치가 들썩거린다.
붙잡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하다. 조금 전까지 강당에 벌러덩 드러눕던 개구쟁이는 온데간데없다. 장난꾸러기도,
소심한 아이도 드론을 조종할 때만큼은 모두가 프로 못지않다. 아이가 저마다 솜씨를 뽐낼 때, 묵묵히 뒤에서 환경을 만들어주고 지도해 주는 어른도 있다.
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시니어 자원봉사단 김해충 회원이다.
김해충 회원은 1977년 9월 서울 도곡초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해 2019년 8월 서울 잠일초등학교에서 퇴직했다.
교직에 있는 동안 김해충 회원이 특히 관심을 둔 것은 미래 교육이었다. 서울특별시교육청 장학사와 장학관으로 일할 때도 그는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나아가 세계를 리드할 수 있는 창의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힘썼다. 또 한편으로는 “퇴직 후에도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나는 데 보탬이 되겠노라” 다짐했다.
그 바람에 날개를 달아준 것이 바로 드론이었다.
“퇴직 무렵 친구를 통해 드론을 처음 접했어요. 친구가 취미로 드론 축구를 했거든요. 신선했죠.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드론 산업이 중요한 역할을 해낼 겁니다.
실제로 지금도 항공우주, 운송, 군수 등 여러 분야에서 드론이 활용되고 있고요. 그래서 저도 드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잠일초등학교 교장일 때 운동장에서
드론을 띄우면 학생들이 엄청나게 좋아했어요. 그 모습을 보며 ‘우리 아이들에게도 꼭 가르쳐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퇴직 후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에서
드론 교육을 받고 관련 국가자격증을 취득하며 역량을 쌓았습니다.”
취미로 삼는 것과 전문가로 활동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훨씬 뛰어난 실력과 내공을 갖춰야 한다.
그러나 김해충 회원은 백내장 수술을 받으면서 초점을 맞추기 힘들었던 탓에 전문가 수준으로 드론을 조종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특히 드론이 안정적으로 궤도를 돌게 하는 일이 힘들었다. 하지만 김해충 회원은 포기하지 않았고, 네 번의 시도 끝에 자격증 취득에 성공했다.
그러고는 바라던 대로 드론은 그를 ‘교육’과 ‘봉사’라는 목적지에 안착시켜주었다.
단순한 놀이가 아닌 인성 교육이자 창의 교육
교직에 있을 때부터 굿네이버스 교육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봉사에 뜻을 두었던 김해충 회원도 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시니어 자원봉사단에
입단해 본격적으로 교육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물론 학교 밖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처음 드론 조종법을 가르치기 시작했을 때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특히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아 힘들었죠. 하지만 그런 어려움은 교직에서
충분히 겪어봤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또 제게는 드론이 있었습니다. 드론 조종에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집중력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궤도를 벗어나거든요. 그래서 집중력이 약한 아이도 드론을 조종하면서 능력이 개선되는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드론 축구는 선수들이 각자 공격과 방어를 맡아 협동하며 즐기는 게임입니다. 협동심을 길러주기에 좋죠. 즉 드론 수업은 단순히 놀이가
아닌 인성 교육이자 창의 교육입니다.”
공들여 준비한 수업에 한 뼘씩 커가는 아이들
드론 교육의 효과는 드론 축구를 할 때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드론 축구란 말 그대로 공중에서 드론으로 축구 경기를 하는 것이다.
선수들은 지름 40cm, 무게 1kg가량의 드론 볼을 조종해 도넛 모양의 상대 골문에 넣어 점수를 얻는다. 아이들이 쓰는 유소년 경기용
드론 볼은 그보다 조금 더 작다. 경기가 시작되면 아이들은 실제 축구 경기처럼 각자의 포지션에 맞춰 공격과 수비를 펼친다. 여러
대의 드론이 서로 견제하고 엉기면서 공중에서 각축전을 벌인다. 드론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 머리를 감싸 쥐는 아이, 골을 넣고는
폴짝 뛰며 세리머니를 하는 아이, 나이도 성별도 다르지만 경기할 때만큼은 다 같은 선수다. 서로 격려하고 또 협동하며 아이들의 마음은
찰나에도 한 뼘씩 자란다.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것이 좋은 김해충 회원은 굿네이버스 방화2종합사회복지관을 비롯해 은평청소년미래진로센터,
성북청소년센터 등에서도 아이들에게 드론 축구를 가르치고 있다.
또 놀라운 것은 드론 교육에 사용하는 장비를 모두 김해충 회원이 사비를 털어 준비한다는 점이다.
“드론 수업에 드론 볼 5개, 배터리 25개를 준비해 와요. 드론 한 대 날릴 때 배터리를 5개 정도 쓰거든요. 드론 볼은 각 10만 원이 넘고, 배터리는
1만 원이니 꽤 큰 돈이 들었죠.
하지만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낄 수 없었어요. 배터리 하나에 겨우 5분 정도만 드론을 작동시킬 수 있거든요. 충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아이들이 드론을
원하는 만큼 만질 수 없죠. 드론이 부족해도 오래 기다려야 할 테고요. 기다리는 시간이 길고 지루하면 누가 수업에 오고 싶겠어요. 그러니 제가고민하고 보완해야죠.”
수업을 준비하는 데에는 시간과 노동력도 필요하다. 배터리 하나를 완충하는 데 40~50분이 걸리는데, 무려 25개를 충전해야 한다.
당연히 배터리 충전하는 데만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또 수업 초반에는 조종이 미숙한 아이들이 드론 볼을 잘 떨어뜨렸다.
깨지고 부서진 드론을 집에 가져와 고치는 것도 김해충 회원의 몫.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준비해 가도 수업은 금방 끝난다.
누군가는 허무를 느낄 수 있지만, 김해충 회원은 모든 교육이 그렇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랜 시간 고민하고 연구한 결과물을 짧은 시간에
응축해 보여주는 일, 그 수고를 그는 40년 넘게 해왔다.
봉사를 통해 재발견한 진정한 가르침의 행복
김해충 회원도 드론을 통해 아이들과 함께 성장한다. 처음 드론의 세계로 그를 이끈 드론 축구 모임 ‘위드드론’과 서울시50플러스센터 드론 축구 모임에서
선수로 뛰면서 김해충 회원은 ‘드론 축구 전도사’라는 꿈을 키우고 있다.
“2025년 전북 전주시에서 월드컵드론축구대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드론 축구는 우리나라가 종주국이고, 전주가 메카죠. 대회를 대비하며 저도 열심히 홍보하고 있어요.
선수로서 실력도 키우고 있고요. 드론 촬영과 영상편집 기법도 계속 공부하고 있어요. 또 서울새활용플라자에 협동조합을 세워 조합원들과 드론에 관해 공부하고 연수도
합니다. 여가에는 식물 재배, 약초 관리에 관한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교직에 있을 때부터 식물 재배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덕분에 퇴직 후 현직에 있을 때만큼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김해충 회원은 시니어 자원봉사단으로서도 계속 활동할 계획이다. 코로나19로 여전히 봉사 현장이 크게 위축되어 있다. 그러나 교육은 멈출 수 없다.
김해충 회원은 퇴직 교직원들에게 교육 봉사 활동을 적극 추천한다.
“교장과 장학사, 장학관 등을 거치며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현실화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러한 노력이 제대로 실행되었는지,
교육 현장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직접 확인하기는 어려웠어요.
일부 통계가 말해주지만, 교사와 학생의 생생한 반응을 들을 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퇴직 후 드론과 체육 수업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직접 가르치고 그 결과를
지켜보면서, 저는 진짜 교사로 다시 태어난 기분입니다.
물론 손 가는 일도, 개척해야 할 일도 많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은 오히려 초임 교사 시절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촉매제가 되어줍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뿌듯함도 크게 느끼고요. 많은 퇴직 교직원이 이런 기쁨을 알면 좋겠어요.”
학교 안에서 교육 외 업무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써야 했던 것과 달리, 퇴직 후에는 오로지 교육에만 집중할 수 있다. 오롯이 아이만 생각할 수 있다. 오랫동안
쌓아온 교육 역량을 바탕으로 자신의 철학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일, 그것이 교육 봉사다.
하늘을 날아오르는 순간 어디든 갈 수 있는 드론처럼, 교실 밖으로 나온 김해충 회원은 세상 어디로든 교육을 위해 갈 수 있다. 2023년에는 김해충 회원과 굿네이버스
미래재단 시니어 자원봉사단의 비행거리가 더욱더 길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