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성미 l 사진 문동일 l 영상 이철민
글 이성미 l 사진 문동일 l 영상 이철민
“연구자로서, 교육자로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았습니다. 덕분에 제가 쓴 논문들이 각종 학회와
저널에서 우수 논문으로 선정되었고,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도 여러 번 얻었습니다. 영광스러운
결과지요. 하지만 대한민국 스승상은 의미가 남다릅니다. 인간 김희수가 받을 수 있는 생애 가장 큰
영예같아요.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 학생들이 제 강의를 아껴주고 함께 연구해 준 덕분에 받는
상일 테니까요. 너무나 감사하며, 기쁘고 행복합니다.”
김희수 교수는 대한민국 스승상 수상 소식을 듣고 ‘인간 김희수’의 삶이 헛되지 않음을 실감했다.
돌이켜보면 ‘교육, 연구, 봉사’라는 세 축이 맞물려 달려온 삶이었다.
김희수 교수는 부산대학교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학교에서 분자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와이즈만과학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원포드 병원(Warneford Hospital) 분자신경정신과를 거쳐 1999년부터 부산대학교 생물학과 교수로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부산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장, 한국유전학회 회장, 한국연구재단 생명과학단 단장도 역임했다.
그 과정에서 김희수 교수는 무수히 많은 ‘최초’의 기록을 남겼다.
그는 국내 최초의 영장류학자로도 유명하다. 과거 우리나라는 개, 고양이, 쥐 등의 동물에 관한
연구는 활발히 이루어졌지만, 인간과 가까운 영장류 연구는 미비했다. 야생 원숭이가 사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영장류를 쉽게 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선배 박사로부터 “대한민국 생명과학 발전을 위해서는 누군가 영장류 연구를 해야 할 것”이라는 말을 들은 김 교수는 선뜻 “제가 해 보겠습니다”하고 나섰다. 이후 일본 교토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김희수 교수는 영장류 연구로 한국인 최초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인간과 영장류에 대한 관심은 그를 이동성유전인자* 연구의 길로 이끈 계기가 되었다. 과거 이동성유전인자는 인간 유전체의 45%를 차지하는 데도 학계에서는 ‘쓸모없이 버려지는 유전자’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김희수 교수는 “과연 우리 몸에 쓸모없는 것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품었고,
집중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마침내 이동성유전인자가 생물진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하는 조절인자이자 생물종
다양성을 형성하는 핵심 구성 요소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김희수 교수는 한국인의 이동성유전인자를 세계 최초로 규명하며 세계적 석학 반열에 올랐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동성유전인자와 류머티즘성 관절염, 다발성경화증, 조현병, 당뇨병, 암 등 질병과의
연관성과 대처 방안을 연구하기도 했다. 난치병에 대한 인류의 과제를 직접 풀어보고자 한 것이다.
*이동성유전인자: 유전체 내에서 이동할 수 있는 일종의 유전 물질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처음 시작한 이동성유전인자 연구는 귀국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한편으로는 축적한 지식을
부산대학교 제자들에게 부지런히 전파하며 많은 국민에게 이동성유전인자와 생명과학의 중요성을 알리는 일을
해나갔다. 그가 이렇게 지식을 나누는 데 주저함이 없는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상생’은 옥스퍼드대학교 연구원 시절 교수들에게 배운 덕목입니다. 옥스퍼드대학교 교수들은 항상 제자들과
같은 눈높이에서 소통하고 연구했으며, 대학의 전문 지식과 정보를 교양 지식으로 바꿔 과학 영재와 일반인에게
전파하며 과학 교육의 대중화를 이끌었죠. 그들에게서 참된 지식인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때 ‘훗날
한국에 돌아간다면 나 역시 지역사회에 이바지하겠다’는 마음을 품었죠.”
김희수 교수는 마음속 오랜 꿈을 실천으로 옮겼다. 2015년 대국민 평생교육 무료 서비스인 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K-MOOC)가 오픈하자 생명과학 분야로는 처음으로 ‘생명의 프린키피아’를 선보였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생명현상의 원리를 쉽게 풀어나간 강좌다. 이 강의는 27개 강좌 중 20대 미만의
수강률이 가장 높은 인기 강좌로 선정되었으며, 생명과학 분야 최초로 명품 강좌로 꼽혔다. 또 대학 공개 강의
서비스(KOCW)에도 유전체학 강의를 올려 누구나 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했다. EBS 교육 다큐멘터리,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서도 시민과 대학생, 과학 영재를 대상으로 꾸준히 교육 활동을 펼쳐왔다. 『유전학』, 『진화학』,
『유전체학』 등 전공 서적과 일반인과 어린이를 위한 교양서 『생명의 프린키피아』, 동화책 『침팬지는 낚시꾼』
등을 편찬하기도 했다.
김희수 교수는 부산시민들의 선생님이기도 하다. 부산대학교에서 ‘알쓸자이(알고 보면 쓸모 있는 자연과학 이야기)’
프로그램을 기획해 이동성유전인자를 비롯한 바이러스와 감염병, 해양생물 등 13개 주제의 강연을 선보이며 지역
시민들과 소통했다. 2022년 부산대학교와 경북대학교 자연과학대학이 연합해 개최한 ‘노벨상 해설 강연회’에서도
김 교수는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스반테 페보(Svante Pääbo)의 연구 업적과 성과에 대한 해설 강연을 맡아
진행하며, 학생들이 노벨상이 갖는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했다.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어르신이 ‘대학에서 하는 강의를 들었다’라며 자랑스러워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일반인을 위한 강좌를 마련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대학의 전문 지식과 정보를 교양
지식으로 다듬어 시민들에게 전달할 계획입니다. 그래야만 지역사회가 발전하고 인간과 생명에 대한 관심도
커질 거라고 믿습니다.”
교육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묻자, 김희수 교수는 ‘횃불’이라고 답한다. 가장 먼저 나아가 길을 밝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국내 최초 영장류학 박사, 세계 최초 한국인 이동성유전인자 규명과 연구, 국내 최초
생명과학 분야 온라인 공개강좌 서비스 개시 등 교육·연구·봉사자이자 개척자로서의 삶을 살아온 그의 행보와
딱 들어맞는 믿음이다.
봉사를 통해 자신이 받은 온기를 되돌려주고 싶다는 마음도 여전히 뜨겁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국제로타리클럽 장학금으로 일본 교토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고, 이후 세계 석학들과 연구도 계속할
수 있었다. 자신이 받은 혜택을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되돌려주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교육, 연구, 콘텐츠 개발 등의 활동은 결국 ‘인간과 환경을 모두 이롭게 한다’라는 뜻과 맞물려 있습니다. 저는
생명과학자이기에 그 답을 생물종 다양성 연구에서 찾고 있으며, 이러한 활동이 질병 없는 세상을 만들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으로 이어지리라 믿습니다. 연구·교육하는 분야와 장소는 서로 달라도 지역사회와 인류에 관심을 두고,
자신이 공헌할 수 있는 바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대학교수, 선생님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스승상
수상은 ‘더 열심히 하자’는 마음을 다지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김희수 교수의 시선은 노벨상으로 향하고 있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관심이 후학들에게 이어지고, 함께
이뤄온 연구 성과가 기반이 되어 그의 꿈대로 대한민국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길 기대한다.